[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중국 대학생들의 ‘내무 생활’
중국 대학생들은 캠퍼스 안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것 같다. 베이징 대학의 아름다운 웨이밍후(未名湖)를 비롯하여 칭화대, 상하이의 화동사범대, 난징 사범대 등 대부분의 대학들은 크건 작건 간에 인공 호수나 아담한 연못 등이 있다. 이곳에서 낚시를 하는 ‘백수’ 아저씨들도 종종 보인다.
벚꽃이 만개한 캠퍼스 호숫가의 밤은 절경, 그 자체다. 호숫가 벤치, 잔디, 운동장 등에서 들려오는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활기차다. 남학생이 자전거 뒤에 여자 친구를 태우고 지나간다. 남학생의 두 다리를 베개 삼아 편안히 누워있는 여학생도 있다. 어떤 커플은 벤치 옆에 서서 부둥켜안고 도무지 떨어질 줄을 모른다.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캠퍼스가 아니라 마치 ‘연애 동산’ 같은 느낌을 준다. 이들의 기숙사 생활을 한 번 들여다보자.
중국 대학은 아무리 작은 대학이라도 보통 2만 명 정도는 된다. 그리고 2~3개의 캠퍼스를 가지고 있다. 모든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생활을 한다. 집이 지척에 있어도 집에서 잠을 잘 수 없다. 매 주 5일 간은 기숙사에서 보내야 한다. 가끔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을 텐데, 사적인 공간은 전혀 없다. 금요일 오후에나 집에 갈 수 있다. 대학 자체가 먹고 자고 공부도 하면서 운동이나 산책을 하는 집이자 공원인 셈이다.
보통 기숙사는 한 방에 6명이 거주하며, 개인에게 제공된 일층 또는 이층 침대에서 잠을 잔다. 겨우 몸을 누일 수 있는 침대 하나와 작은 책상이 개인 공간이다. 이른바 ‘내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출입구 당직실에 ‘아주머니 사감’들이 밤새 이들을 지키고 있다. 잠시도 일탈(逸脫)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곳에서 졸업할 때까지 문자 그대로 같은 방 친구들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한다. 좁은 공간에서 4년을 같이 뒹구는 이들의 관계는 참으로 끈끈하다. 학우이자 곧 ‘전우’인 것이다. 모처럼 햇볕이 좋은 날은 이불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담벼락에다, 운동장 축구 골대 위에다, 나무 덤불 위에다 이불을 널어놓는다.
아침 여섯 시가 되면 기상을 알리는 음악이 귓전을 때린다. 모두들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창밖으로 내려다보니 거대한 학생들의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기숙사를 나와 운동장으로 향한다. 구령에 맞춰 단체로 체조를 한다. 본관 높은 계단 위에서 ‘근엄하신 총장님’이 제 때 모여서 제대로 체조를 하고 있는 지 확인한다. 체조를 마치고 나서 식당에 잠시 들른다. 아침 7시 20분부터 30분까지는 자율학습 시간이다.
아침 식사는 삶은 계란, 죽, 만두, 빵 등으로 대충 때운다. 작은 비닐봉지에 싸들고 가서 교실에서 먹기도 한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교실에서 만두나 죽을 먹으면서 강의를 듣는 것을 용인하는 분위기다. 그러다보니 교실 곳곳에 쓰레기가 널려 있다. 일부 대학에서는 궁여지책으로 입구에 이렇게 써 놓았다.
‘교실에 음식물 반입 엄금(?禁把食物?入?室內)’
아침 첫째 시간은 8시에 시작한다. 12시부터 2시까지가 점심시간이다. 학생 식당도 제법 크다. 메뉴도 학생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일층과 이층 식당의 메뉴를 얼핏 헤아려보니 50가지가 족히 넘는다. 밥 먹는 것도 전쟁이다. 점심식사 시간이라야 한 시간 남짓 주어진다. 이 시간에 2만 명이 두 개의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보통 수업이 없는 오후 시간에 서너 명씩 무리를 지어 학교 밖 ‘공중 샤워장’으로 향한다. 기숙사에 샤워 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요금은 우리 돈 1000원 정도이다. 탕은 없고 샤워만 할 수 있다고 한다. 어떤 대학은 대학 안에 샤워장을 운영한다. 학교 안에서 운영하는 곳은 우리 돈으로 500원 안팎이다. 몇 푼 아끼려고 마을 할머니, 아주머니들도 학교 안 샤워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저녁을 먹고 나서도 대략 7시 반부터 9시까지 교실에 가서 의무적으로 자습을 해야 한다. 금요일 오후나, 토요일 아침에 자유롭게 외출한다. 물론 평일 오후에도 시내에 쇼핑하러 나갈 수는 있다. 그러나 시간이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말이 돼야 비로소 긴장을 풀 수 있다.
일요일 오후에는 ‘정치사상’ 학습 시간이 있다.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중요한 학습 과정이다. 외출한 학생들이 이 시간을 맞추기 위해 허겁지겁 학교 문 안으로 들어선다. 일주일이 참으로 숨 가쁘게 돌아간다.
지난 4월2일부터 4일까지 청명절 연휴를 보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평일 수업을 앞당겨하고 사흘간 연휴가 주어진 것이다. 북적대던 학교가 한산하다. 대부분 외출하거나 집으로 돌아간다. 기차로 30여 시간 이상 가야하는 길림성, 흑룡강성, 내몽고, 남쪽의 해남도 등지에서 온 학생들은 퀴퀴한 냄새가 나는 비좁은 기숙사에서 할 일없이 빈둥댄다. 이들에게는 연휴가 오히려 적막감만 심어줄 뿐 별로 반갑지 않을 지도 모른다.
길림성 쑹화(松花) 시에서 ‘유학’ 온 시커먼 얼굴의 왕지우환(王久桓)은 겨울 방학이 돼야 집으로 돌아간다. 기차로 집까지 가려면 35시간이나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 년에 고작 한 번 부모님을 만난다.
황새처럼 긴 다리에 시원스런 용모를 한 자칭 ‘얼짱’, 원옌(問燕)은 집이 학교에서 그다지 멀지 않다. 그러나 여름방학에도 집에 안 갈 모양이다.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벌어야 한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속담이 자신의 좌우명이란다. 섬뜩한 생각이 든다. 이 말 속에서 원옌 학생의 고단한 삶이 묻어난다. 대부분 농민의 자녀인 이들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이 학생의 꿈은 대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내무 생활’하랴, 공부하랴, 학비 벌랴, 이래저래 고군분투하는 학생들이 가끔 애처롭다. 새장 안에 갇혀 있는 ‘청춘’들이 언젠가는 날개를 활짝 펴고 창공을 비상(飛翔)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