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이야기] 되새겨 보는 중국인의 특성
‘DMZ 사진작가’로 잘 알려진 최병관(65) 선생이 수년 전 “중국인은 흙탕물 같아서 도무지 그 속내를 알 수가 없어”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 그는 한 번도 중국을 가 본적이 없다. 단지 주변에서 듣고 본 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일 것이다.
2011년 가을의 얘기다. 열흘 가까이 이어진 시끌벅적했던 중국의 국경절 연휴도 끝났다. 스포츠 전문 채널에서는, 9월 24일에 끝난 한국과 중국과의 농구 준결승전 경기를 쾌재를 부르듯, 연휴 기간에 재탕 삼탕 방영하였다. 경기에서 패하여 가뜩이나 침울한 허재 감독을 분노하게 했던 중국기자들의 오만불손한 인터뷰를 떠올릴 때면 입맛이 쓰다.
“중국의 국가가 울려 퍼지고 있는 데 왜 한국 선수들이 산만하게 움직이며 정중하게 예의를 표하지 않는가?”
인터뷰에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흥분하여 자리를 박차고 나간 허 감독을 향해 ‘싸가지 없는’ 젊은 기자들은 일제히 야유를 퍼 부었다.
국경절 연휴를 맞아 관영방송들은 신해혁명 관련 내용을 특집드라마 또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다루었다. 손문의 삼민주의를 부각시켜 ‘중화민족’의 대동단결을 꾀하였다. 아편전쟁 이후 줄곧 ‘서양 강도’에 당한 치욕의 역사를 극복하고 오늘의 ‘중화대국’을 건설했다는 이른 바 애국주의를 고취시키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었다.
중국 기자들의 몰상식함과 광적인 애국주의 물결을 보면서 불현듯 ‘중국인’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중국인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일찍이 미국의 선교사 아더 핸더슨 스미스 (Arthur Henderson Smith, 1845∼1932)는 <중국인의 특성(Chinese Charcteristics)>을 저술하여 중국인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 책은 그가 27세 되던 해인 1872년에 중국에 들어와 22년 동안의 행적을 기록한 것으로서 1894년에 출간되었다. 그는 아마도 이 저작을 통해 중국인의 ‘불편한 심기’를 건드린 최초의 인물이 아닌가 싶다.
이 작품은 1896년에 일본에서도 <지나인 기질(支那人 氣質)>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소개됐으며,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널리 읽혀지고 있다. 루쉰은 이 책을 임종 전까지 품에 지니고 다녔으며 중국인 정신개조 운동의 지침서로 삼았다.
스미스는 <중국인의 특성>을 총 27장에 걸쳐 서술하였는데, 마지막 27장 총 결론 부분을 제외하면 그 특성을 26가지로 열거한 셈이다. 일부 중복되거나 상호 모순된 항목을 제외하면 다음과 같이 20 여 가지로 줄일 수 있겠다.
인내심, 강인한 생명력, 근검절약, 부지런함, 예의 바름, 효도, 선행심, 지나친 체면치레, 시간관념 결핍, 정확성 결여, 오해를 잘하는 천성, 빙 둘러 말하기, 완고함, 무딘 신경, 외국인 멸시, 공공심의 결여, 수구적 태도, 쾌적함과 편리함을 강구하지 않음, 서로 시기하고 의심함, 성실과 신용의 결여 등
스미스의 ‘편견’에 중국인들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오늘날 대다수의 중국 지식인들은 그의 관점을 소위 ‘서양 강도 국가’에서 파견된 선교사로서의 오만함과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이라 비판한다. 그러나 비록 한 세기가 더 지난 시점의 기록이지만, 다양한 계층의 중국인을 접촉하고 있는 입장에서 되새겨보니 공감하는 바가 없지 않다.
지금은 오래 돼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지만 2008년 경 허난성 정저우(鄭州)시 한인회장을 역임했던 얼굴이 통통한 페인트회사 사장의 말이 다시금 생생하게 기억된다.
“중국인은 배에 칼을 맞아 창자가 줄줄 흘러나오고 유혈이 낭자한데도 창자를 태연히 뱃속에 다시 집어넣으며 때를 기다린다. 한국인은 배에 칼을 들이대기도 전에 칼을 살짝 보여주기만 하면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놓으며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이 일화는 과장된 면이 있지만, 스미스가 지적하듯 중국인의 무한한 인내심과 강인한 생명력의 극치를 보여주는 예라 할 것이다.
한국 사람은 격정적이고 인정에 쉽게 이끌리며, 남의 말을 잘 믿는 경향이 있다. 중국 낯선 땅에서 외롭다 보니 “하오 펑이어우(好朋友!)”, “따꺼(大哥!)”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다가오는 중국인에게 쉽게 마음을 줘 버린다.
중국 땅에서 전 재산을 탕진하고 ‘국제 노숙자’가 된 중소기업 사장들의 통곡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이들은 한중수교와 더불어 앞 다투어 피 같은 돈을 싸들고 ‘신천지’를 향해 부나방처럼 뛰어들었다. 결과는 참으로 처참하다. 흙탕물 속에 잠복하고 있는 ‘적’을 모르고 뛰어들었으니 백전백패라면 지나칠까.
9월에 남경시 모처후(莫愁湖) 공원 연꽃 밭에서 ‘진흙탕 속 고기잡기(渾水摸魚)’ 축제가 열렸다. 중국인들은 ‘혼수모어’라는 이 표현을 즐겨 쓴다.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有錢能使鬼推磨)‘는 속담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미 마음에 새겨야 할 생활 철학이 돼버렸다. 중절모를 지그시 눌러쓴 59세의 학교 운전기사 왕 씨는 공항에 도착할 때 까지 내내 한탄조로 열변을 토한다.
“중국인들 사이에 예전의 의리, 인정, 순수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모두가 오직 ‘돈’을 향해 질주할 뿐이다. 부부 간에도, 남녀 간에도 돈이 없는 애정은 생각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황량한 대륙에 ‘아이칭(愛情)’은 사라지고 오직 ‘첸칭(錢情)’ 만이 난무한다. 중국인을 대하면서 이해타산, 부정확, 무례, 신용 결여, 책임전가, ‘흐지부지’ 등 부정적 요인만 각인되는 것은 왜일까. 중국인 특유의 너그러움, 여유, 인정미는 다 어디로 사라졌는가. 중국 광야를 떠돌던 김구 선생이 <백범 일지>에서 찬미한 ‘위대한 국민성’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20대 중반의 나이로 군대를 이끌고 이 땅에 들어와 패역무도한 짓을 일삼았던 위안스카이의 모습과 허재 감독을 대하는 ‘싸가지 없는’ 젊은 중국 기자들의 모습이 아른거리면서 왈칵 울분이 치솟는다. 갈수록 도지는 중국인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을 언제나 훨훨 떨쳐버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