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중국식 ‘길 건너기’와 ‘목욕하기’
[아시아엔=강성현 교육학 박사, <차이위안평전> 번역 등] ‘중국식 길 건너기’(中?式過馬路)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사람이나 오토바이, 자전거 할 것 없이 빨간 신호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중국식 무질서’를 풍자한 것이다. 파란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다 비명횡사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지난해 9월 선양시는 ‘중국식 길 건너기와의 전쟁’을 선포했을 정도다. 지각 있는 중국인들 사이에 개탄과 자성의 소리가 날로 높아간다.
중국에서 횡단보도에서 파란 신호등을 보고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건넜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파란 불이 켜지고 나서 천천히 건너려고 하면 어느 새 오토바이·택시·승용차들이 그 앞을 번개같이 지나간다. 영국신사처럼 파란불에 점잖게 건너가려고 했다가는 그 자리에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한다. 이러다 보니 잔뜩 긴장한 채로 빨간불이든, 파란불이든 차량의 물결이 적을 때 잽싸게 길을 건너야 한다. ‘가자미’ 눈을 하고 좌우를 살피며 ‘노련하게’ 길을 건너는 외국인은 틀림없이 중국에서 꽤 오래 생활한 사람들이다.
중국에선 ‘무질서’를 즐겨야 살아갈 수 있다. 새치기, 침 뱉기, 큰소리로 떠들기, 길가에서 어린 아이 대소변 뉘기 등은 여전히 흔한 모습이다. 시내버스나 기차 안에 보면 “창밖으로 물건을 버리지 마세요”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거리에서도 “침을 함부로 뱉지 마세요”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인다.
가장 머리가 아프고 혼란스러운 곳은 아무래도 기차역을 따라갈 수 없다. 대도시의 기차역은 서울역의 열배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눈 뜨고 코 베가는 곳이 바로 기차역이다. 이곳에서는 한시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다. ‘소매치기 조심!’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기차역 창구에서 많은 사람들이 표를 사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얌체들이 사람 사이를 비집고 창구 앞에 불쑥 나타난다. 몹시 급하니 양해를 바란다는 듯 ‘똥 마려운 표정’을 하면서 새치기를 한다. 버스를 탈 때도, 마트에서 야채를 저울에 달 때도 동작 빠른 사람이 제일이다. ‘중국식 줄서기’는 다름 아닌 ‘새치기’인 셈이다.
‘중국식 대화하기’는 곧 ‘고함지르기’라고 할 수 있다. 시장 바닥에서 배추값을 좀 깎으려고 하면, 배추장수 아줌마의 목소리는 기차 화통을 삶아 잡수셨는지 이내 격앙된다. “너한테 안 팔아!”, 매섭게 쏘아보며 배추를 도로 던져 버린다. 곧 바로 살살 구슬리자 다시 잔잔하게 입가에 웃음을 짓는다. 칭얼대는 손자에게 할머니가 고함을 치며 궁둥이를 힘껏 내리치자, 어린 손자가 “왜 때려!”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어디가나 ‘고함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대중목욕탕 풍경도 가관이다. 탕 속에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는데 7~8명 가량의 무리가 목욕탕 문을 거세게 밀치고 들어온다. 그리고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탕 속으로 돌진한다. 마치 냇가에서 멱을 감듯, 타월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탕 속에서 한바탕 신나게 ‘샤워’를 한다. 그 순간 질겁하고 입으로 육두문자를 내뱉으면서 도망치듯 탕 밖으로 나와 버렸다. 이후로 대중목욕탕에 발길을 끊었다. 대도시의 꽤 비싼 목욕탕에서도 이런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이른 바 ‘중국식 목욕하기’다.
한국에서 맨손으로 산천어 잡기 체험을 하는 것처럼, ‘진흙탕에서 물고기 잡기’도 중국인들이 즐겨하는 놀이문화 중 하나이다. 맑은 물에 훤히 보이는 산천어를 잡기도 쉽지 않은데, 보이지도 않는 흙탕물을 손으로 더듬어서 물고기를 잘도 잡아낸다. 그야말로 ‘암중모색’(暗中摸索)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국인들의 투명하지 못한 단면을 읽어낼 수 있다.
오전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서명을 하고 나서 오후에 더 큰 이익거리가 있으면 바로 그 계약을 파기해버리는 ‘냉혹함’도 이러한 습성에서 연유하는 것 같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인 중소기업 사장들은 이같은 쓰라린 일들을 한두번 정도는 겪어 봤으리라. 중국에 세 들어 사는 한국인 자영업자들도 맘 상하기는 마찬가지다. 계약기간이 남았는데도 장사가 잘 되는 것 같으면 수시로 시비를 건다. 걸핏하면 임대료를 올려달라고 생떼 쓰는 중국인 주인들과 번번이 마찰을 일으킨다. 결국은 점포 세를 올려주거나 아니면 분노를 머금고 가게를 그만두어야 한다.
법보다는 주먹과 고함이 가깝고, 사적 인연에 얽힌 비정상적인 ‘꽌시’(關係) 문화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는 합리적인 기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이곳에서 살아가려면 별다른 방법이 없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였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못된 습관을 욕하면서 은연중에 따라 배운다. 어느 새 맞고함 치기, 빨간불에 건너기, 새치기, 무단횡단 등에 익숙해진 자신을 발견하고 쓴 웃음을 짓는다.
다 사람 사는 곳인데 너무 부정적인 면만 파헤친 것 같다. 린위탕(林語堂)이 지적하였듯이, 중국인들은 원래 너그럽고 순박한 민족이다. 유머와 여유를 즐기며 천성이 낙천적이다. 근면·성실하고 시골마을은 여전히 인심이 후덕하다. 이들은 조상들이 물려준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은근과 끈기로 오늘날의 강성한 중국을 일구어내었다.
문득, 동네 수족관 금붕어가 생각난다. 작은 어항은 형형색색의 물고기 떼로 ‘어산어해’(魚山魚海)를 이룬다. 비좁은 공간에서 ‘예쁜’ 금붕어들이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쉰다. 어디가나 인산인해(人山人海) 가운데 각축하는 중국인의 모습 같다. 13억이 넘는 인구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다 보니 “나만 살고 보자”는 본능적인 이기심이 발동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중국서민들에게 까닭 모를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솟아나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