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이야기] 고도성장의 그늘, ‘만만디’들의 과로사
찬바람이 불면서 이곳 섬서성(陝西省)도 수은주가 영하로 뚝 떨어졌다. 뇌졸중(腦卒中)을 경고하는 포스터가 여기저기 나붙었다. 2012년 10월 28일 자, <중국 청년보>에 따르면 해마다 스트레스(?力, 야리)와 과로로 인한 ‘돌연사(猝死)’ 인구가 6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만만디’를 즐기며 매사에 거북이처럼 느려터진 중국이 과로사(過勞死) 1위 국가라고 하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어찌됐든 중국은 ‘경제대국’에 이어 ‘과로사 대국’이라는 또 하나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 개혁개방의 열매는 오이의 두 꼭지처럼 달고도 쓰다. 고도성장은 풍요와 더불어 중국인들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안겨 주었다. 다음은 <중국 청년보>에 소개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언제인지 모르게 도시 화이트칼라(白?) 사이에 ‘야리산따(‘?力山大, 과도한 스트레스)’라는 자조 섞인 말이 유행하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의 중국식 표기, ‘야리산따(‘??山大)’를 빗대 ‘스트레스’가 산처럼 쌓여있다는 의미이다. 이와 비슷한 유행어들이 난무한다.
“스트레스가 있으면 피로를 느끼고, 스트레스가 없으면 두려움을 느낀다.” “야근이 있으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야근이 없으면 스트레스가 더 쌓인다.”
관영 매체와 일부 저명한 기업이 공동으로 진행한 ‘2012년 화이트칼라 건강조사’ 결과는 자못 심각하다. 조사 대상은 베이징·상하이·광저우·청뚜·시안·창사·선양 등 7개 도시의 20대~60대 사무 노동자 1000명이며, 전화 응답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에 의하면 대상자들의 3분의 2가 자신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건강을 해치는 3대 요인으로 과도한 스트레스, 심각한 환경오염, 운동 부족 등을 꼽았다. 과로사가 빈발하는 3대 직업군은 IT, 금융, 언론기관 등인 것으로 분석됐다. 영국의 권위 있는 의학 잡지『The Lancet(柳?刀, 메스)』의 조사결과는 끔찍하다. 현재 중국인 10명 중 1명꼴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한다. 줄잡아 1억 3000명 가량이 뭔가에 쫓기듯 ‘심기’가 늘 불편하거나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묻지마 살인’, ‘묻지마 폭력’이 일어난다. 택시 기사와 승객 사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쇠창살’로 가로 막혀있다.
국가 행정대학 공공관리학원 후잉롄(胡?廉) 교수는, 의료비 부담, 노후 걱정, 내 집 마련 문제, 자녀 교육 등이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주요 원인이라고 말한다. 최근에는 젊은 부부들 간에 ‘싼누(三奴)’라는 신조어가 유행한다. ‘팡누(房奴)’, ‘처누(車奴)’, ‘하이즈누(孩子奴)’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의 ‘하우스 푸어’, ‘렌트 푸어’처럼, 집과 차를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육아에 시달리다 스트레스가 쌓이는 현실을 ‘싼누(三奴)’로 꼬집어 표현한 것이다.
대도시에서 별다른 근심 걱정 없이 생활하려면 한 달에 얼마나 필요할까? 베이징, 상하이 등 물가 수준이 가장 높은 곳에서는 최소 월 9000위안(약 160만원) 정도는 있어야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한 달을 지낼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실적으로 9000위안을 받기가 쉽지 않은 처지에서 이들의 ‘고통지수’는 점점 높아간다.
웨이난(渭南) 사범대학 자오아이리(趙愛莉, 48세) 외국어학원 부원장 겸 중한 문화교류센터 주임도 만날 때마다 스트레스가 많다고 하소연을 한다. 이 오지랖 넓은 ‘맹렬여성’을 옆에서 지켜보니 1인 8역 정도는 하는 것 같다. 영어 선생으로, 중한 문화교류센터 책임자로, 졸업반 논문 지도교수로, 교수들의 논문심사 책임자로, 청도에 ‘유학’ 보낸 외동아들 엄마로서, 병든 노모를 둔 장녀로서, 외과의사인 남편의 내조자로서, 가깝게 지내는 호주(濠洲) ‘할머니’ 취직(영어 강사) 알선 문제 등으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신의 정년인 55세에 이르기 전에 좀 더 ‘출세’해보고 싶은 욕구까지 가세하여 늘 피곤한 ‘몰골’이다.
스트레스는 화이트칼라에만 그치지 않는다. 아들·딸들을 도시로 보내 놓고 맘 졸이는 농민, 영세 자영업자, 도시 지하 쪽방에서 분투하는 농민공, 학자금 상환과 취업 걱정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대학생들, ‘고3 병’을 앓는 학생들, 기러기 아빠, 유치원까지 번진 조기 영어교육 열풍 등으로 13억 중국인 모두가 ‘스트레스의 덫’에 갇혀서 헤어날 줄 모른다. 스트레스와 근심에 짓눌린 중국의 현실은 한국의 현실을 너무나 닮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