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속물’ 제갈량의 아내는 추녀(醜女)

제갈량(諸葛亮, 181~234년) 이라는 인물은 나관중의 입담이 더해져 우리에게 매우 신묘막측한 인물로 다가온다. 또한, ‘촉상(蜀相)’이라는 시를 남긴 두보 등을 비롯한 소인묵객(騷人墨客) 들에 의해 사심(私心) 없는 인물, 군주를 받드는 충직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이러한 영향 탓인지 중국사람 못지않게 우리나라 사람들도 제갈량에 꽤 매료(魅了)돼 있다.

비디오로 제작된 대하 드라마 <삼국지>를 보면 ‘왕의 남자’에 나오는 이준기와 같은 ‘꽃미남’ 배우가 제갈량으로 변신해 명연기를 펼친다. 제갈량은 전란의 시대, 형주(荊州)의 초야에서 지내던 중 나이 29세 때 유비(劉備)의 ‘삼고초려(三顧草廬)’로 세상에 나왔다. 그는 지략과 담력을 겸비한 인물로 유비를 도와 촉한을 건국하는 대업을 이루었다. 그의 행적은 기이한 일과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그가 아내를 얻은 일화도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법하다.

제갈량은 재주와 지혜가 출중했을 뿐만 아니라 키가 크고 용모도 준수하였다고 한다. 그는 노랑머리에 비쩍 말랐으며, 거무튀튀하고 왜소한 여자를 아내로 택하였다. 그가 이런 여자를 배우자로 고른 것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웅호걸들은 미인을 얻기 위해 사력을 다 한다. 제갈량은 왜 하필 이런 여자를 택했을까?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려는 고상하고 순수한 동기에서 비롯됐을까? 제갈량이 아내를 선택한 과정에 대한 정확한 출처나 기록은 불분명하다. 단지 두 가지 ‘설(說)’이 전해진다.

한 가지 설은 지극히 단순하다. 그는 배우자감으로 단순히 얼굴, 신체 등 외적 요건 보다는 여러 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재원(才媛)을 더 좋아하였다는 견해다. 제갈량이 고른 ‘못난이(阿醜)’ 황(黃)씨는 여러 면에서 재주가 범상치 않았던 재원(才媛) 이었다.

또 한가지 설은 이렇다. 제갈량의 집안은 무척 가난하였다. 어릴 때 부친을 잃었고 당시 군벌 간 혼전 중인 상황에서 온갖 풍상을 겪었다. 그는 남창(南昌)에서 태수(太守)로 있던 숙부 제갈현(諸葛玄)의 보살핌 속에서 지냈다.

14세 되던 해 숙부가 관직에서 쫓겨나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몸을 의탁하였다. 제갈량도 숙부를 따라 나섰다. 17세 되던 해, 숙부마저 죽었다. 의지할 곳을 잃자 양양성(襄陽城) 서쪽 20리 밖 융중(隆中) 땅에 거처하였다. 비록 시골 땅에 기거하고 있었지만 국가의 흥망성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기회가 닿으면 정치 무대에 올라 공명을 떨치고 싶은 것이 그의 꿈이었다.

이러한 야망은 제갈량의 혼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혼사 뿐 아니라 형제 자매의 혼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야심가들이 그렇듯, 그도 이른 바 ‘정략결혼’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먼저, 누나와 남동생의 결혼에 발 벗고 나섰다. 누나를 양양 땅의 명망가인 방덕공(龐德公)의 아들에게 맺어 주었다. 방덕공은 한 눈에 제갈량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그를 ‘와룡(臥龍)’이라 불렀다. 이를 계기로 양양 및 형주 땅에서 활동할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 누나에 이어, 남동생 제갈균(諸葛均)을 남양(南陽) 지역 유지인 임(林)씨의 딸에게 장가보냈다.

그 자신 또한 웅지를 펼치기 위해 세력가의 도움과 지지가 절실히 필요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을 위해 그는 이 지역 권력자의 딸, 황(黃)씨를 택한 것이다. 황 씨는 명문가의 딸로서 야심에 가득찬 미남을 만났고, 제갈량은 빈털터리 가난뱅이였지만 세력가의 사위가 되었다. 장인 황승언(黃承彦)의 부인 채씨와 유표의 후처는 친 자매 관계였다. 제갈량은 ‘추녀’와 결혼을 함으로써 황씨 집안의 사위가 됨은 물론, 유표와도 인척이 돼 자연스레 황실과도 인연을 맺게 되었다. 서로 ‘윈 윈’한 셈이다.

<제갈량신전(新傳)>에 의하면, 제갈량을 첫 대면한 장인 황승언은 너무나 기뻐서 만면에 미소가 가득하였다고 한다. 제갈량의 앞길도 활짝 열리게 되었다. 이쯤 되면 속물도 보통 속물이 아니다. 그러나 그를 ‘속물’로만 폄하할 수 있을까. 형 제갈근(諸葛謹)이 있었지만, 부모가 없는 곤궁한 처지에서 형제자매를 고려해야 하는 그의 삶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긍정적으로 평가하자면, 제갈량은 책임감이 강하고, 목표의식이 뚜렷하며, 정치적 야망을 가진 인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신화 속에 가려졌던 제갈량의 진면목이 드러난 것이다.

<삼국지>에 의하면 제갈량은 이후 첩을 하나 들였다. ‘못난이’ 만으로는 삶의 재미가 없었던 모양이다. 제갈량이 못난이 아내를 둔 이유에 대해서는 이밖에도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아무튼 제갈량의 삶은 신비함으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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