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중국의 표준어 ‘보통화’는 만능인가?

함경도 사투리, 강릉 사투리가 억세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제주도 방언을 제외하곤 기본적으로 의사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지대물박(地大物博)’의 나라 중국의 경우,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도 보통화(표준어)를 사용하지 않고는 의사소통이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장쑤(江?)성 옌청(?城)시와 동타이(東台)시는 이웃 도시이다. 과거에 두 도시는 현(縣)급 행정단위였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위치한 두 도시 간에 보통화를 사용하지 않으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 난징, 난퉁(南通), 쑤저우(?州), 타이저우(泰州), 렌윈강(連運港) 등 성내 다른 도시들도 상호소통이 불가능한 전혀 다른 방언을 사용한다. 한족을 제외한 55개 소수 민족의 언어는 차치하고라도 장쑤성에만 최소 수십 개의 방언이 존재한다.?1개 현에 1개 방언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나라가 아닐 수 없다.

두 해 전 얘기다. 광저우(廣州)시 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광저우 일대의 TV 프로그램에 보통화를 사용할 것을 제안하자, 이에 반대하여 2010년 7월 하순 경 시민 2000여 명이 ‘광동어(Cantonese)를 사수하자’는 취지로 캠페인을 벌였다. 홍콩, 마카오 등지를 포함하여 광동어 사용 인구는 약 1억 명에 이른다.

광동성 출신 량치차오(梁?超, 1873~1929)가 광서제를 알현하여 변법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할 때 광서제가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눈살을 찌푸렸다고 하는 우스운 일화가 전해진다. 이 후 그는 베이징 출신 아내를 만나 그녀로부터 ‘표준어’를 익혀 이러한 어려움을 차츰 해소해 나갔다고 한다.

중국 정부가 지금처럼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보통화 사용을 적극 시행하기 이전, 중국 각 지방 사람들은 어떻게 의사소통을 했을까? 각 지역 모두 한자를 기반으로 하므로 문서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나, 타 지방 사람 간에 대화를 할 때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을 것이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필담(筆談)의 형식을 빌려서 소통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자기가 나서 자란 고향의 말은 누구에게나 정겹고 익숙한 법이다. 어린 학생들조차도 학교에서는 보통화를 사용하고 방과 후에는 자연스레 할머니, 할아버지와 방언으로 얘기를 주고 받는다. 이처럼 중앙 정부의 의지와 관계없이 방언 사용인구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시골의 시장 바닥에서 만난 노인네들은 십중팔구 보통화를 할 줄 모른다. 그래서 자신들의 말과 조금만 다르면 금새 “어느 지방 사람이냐”고 캐묻는다. 이러한 연유로 보통화가 강력히 시행되고 있는 지금도 다른 지방 사람을 만나서 대화하면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중원 지역이라 부르는 허난(河南)성 이북 지역에서 사용하는 방언은 비교적 보통화에 가깝다고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사투리가 가미된 보통화이기 때문에 귀를 쫑긋하고 듣지 않는 한 보통화인지 방언인지 구별이 어렵다. 허난성 상치우(商丘)가 고향인 왕위퉁(王宇?, 21) 학생은 보통화 발음인지 상치우 방언인지 구별이 안된다. 친구들도 사투리가 섞인 그의 ‘엉터리 보통화’를 들을 때마다 포복절도(抱腹絶倒)한다.

대학생들은 영어와 함께 보통화 자격증 취득에 열을 올린다. 취업 시 보통화 자격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대개 보통화 2급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관영 CCTV 아나운서들은 1급 자격증 소지자들이다. 이들의 말을 들으면 오르락내리락하는 억양이 마치 새가 노래하는 것 같다.

안휘성 마안산(馬鞍山) 시에서 만난 30대 중반의 한 남자도 보통화 발음이 엉망이었다. 그는 상하이를 오가면서 장사를 한다. 보통화 발음이 좋지 않은 이유를 물어보니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의무적으로 보통화를 사용하고 익혔으나, 학교 졸업 후에는 사용할 기회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고향인 마안산 사람들과 지방 사투리로 얘기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다고 한다. 그러던 그도, 상하인들과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를 쓰고 상하이 방언을 익히게 됐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상하이에서 다른 지방의 언어로 말하는 사람은 무시당하기 일쑤다.

니젠중(倪健中)의 <중국인도 다시 읽는 중국 사람이야기>에 의하면, 상하이 방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특권이자 축복이다. 관련 내용을 인용해 보자.

“유창한 상하이 말을 구사할 줄 아는 것은 황제가 친필로 써서 하사한 통행증과 같고, 지금의 크레디트 카드 같아서 여러 가지 우대를 받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상하이에서 물건을 살 때 꼭 상하이 말을 유창하게 하는 친구를 데리고 간다. 상하이 사람과 같이 갔을 때보다 심지어 8배나 비싸게 바가지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상하이 말은 배워둘 만하다.”

류홍주(劉紅珠, 62) 여사는 부동산 개발회사의 부 총경리(부사장급)이다. 이들 부부와 외동 딸 셋이서 자기들끼리 말할 때는 상하이 말을 사용한다. 이들이 주고받는 말은 유럽어인지 아랍어인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다. 무심결에 상하이 방언을 좀 배울 수 없겠느냐고 했더니 한 마디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류 여사는 원래 동북 출신이었다. 상하이에 갓 시집올 때만 해도 상하이 방언은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결혼 후 삼십 년 가까이 상하이에 살면서 ‘진정한 상하이 인’으로 살아남기 위해 상하이 방언을 익혔던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대도시든 중소도시든 중국의 어느 한 지방에서 생활하게 된다. 보통화만을 사용하여 대화는 가능할 지 모르나 진정한 의미에서 교류는 이뤄질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수많은 방언을 일일이 익힌다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볼 때, 보통화 이외에 상하이 방언, 광동어 등을 포함하여 각 성의 대표적 방언 한 개쯤은 구사할 수 있는 진정한 ‘지역 소통 전문가’를 길러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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