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이사, 한비 그리고 박원순

또 하나의 철권 통치자, 리비아의 ‘황제’ 카다피가 비명에 갔다. 황금 권총도 그를 보호해 주지 못했다. 그의 시체가 ‘정육점에 걸려 있었다’는 둥 뒷말이 무성하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권력을 좇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것 같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에 눈 먼 자들의 최후는 너무도 유사하다.

비천한 지위를 한탄하며 ‘뒷간의 쥐’ 신세에 머물러 있던 이사(李斯,서기 전 280~208 )도 예외는 아니었다.

야심을 좇아 결국은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그는 저자거리에서 허리가 잘려 죽었다.

이사는 ‘뒷간의 쥐’와 ‘곡간의 쥐’의 행태를 유심히 관찰하였다.

그는 변소에 사는 쥐와 쌀 창고에 사는 쥐들의 행태를 보고 출세와 권력을 향한 지름길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이 일화는 오늘날에도 세인의 입에 널리 오르내린다. <사기·이사열전>에 나오는 고사를 음미해 보자.

“어느 날 이사는 볼 일을 보러 뒷간엘 갔다. 그 곳에서 인분을 먹고 있던 쥐들은 이사를 보자 소스라치게 놀라 달아났다. 다른 날, 그가 곡식 창고를 열고 문 안에 들어섰다. 이 창고 안에도 커다란 쥐들이 모여 곡식을 훔쳐 먹고 있었다. 이 쥐들은 사람이나 개를 봐도 별로 놀라지 않고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태연히 곡식을 먹고 있었다.

이사는 사람이 기왕 세상에 나왔으면 뒷간의 쥐보다는 곡간의 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다.? 곡간의 쥐가 더 맛있는 것을 먹고 더 많은 것을 누리면서도 유유자적한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그 길로 관직을 사퇴하고 입신출세의 길을 찾아 떠난다.”

그는 조나라로 가서 한비(韓非, 서기 전 283~233)와 함께 순자(서기 전 313~238)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그에게서 국가경영과 통치술을 배웠다.

공부를 마치고 자신의 조국 초나라를 등지고 기회를 찾아 진나라로 떠난다. 왜 진나라로 가려 하는지 순자가 그에게 묻는다.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하려는 웅지를 품고 있다. 그 곳에서 꿈을 펼치고 싶다. 인생살이에 있어서 비천은 최대의 치욕이요, 빈곤보다 더한 비애는 없다”

이것이 그의 답이었다. 순자가 야심이 가득한 그에게 일침을 가하였다.

“극성(極盛)하면 급히 쇠락하는 것이 사물의 이치이다. 지나치게 번성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선웨밍(沈岳明), 리징츄(李敬秋)가 엮은 <중국 명인들의 수수께끼>(中國名人未解之迷)라는 책에도 두 쪽 남짓한 분량으로 이사의 삶을 반추하였다.

‘천고(千古)의 재상, 이사는 과연 충신인가, 간신인가’라는 제목이 그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사의 공과를 간략히 나열하였다. 그리고 그가 간신인지, 충신인지에 대한 평가는 유보한 채 독자의 상상에 내맡겼다. 과연 이사는 어떤 인물이었는가.

이사는 전국 시대 말기 인물이며, 초나라 상채(上蔡, 지금의 하남성 蔡西 남쪽 지방) 사람이다. 고향의 한 작은 마을에서 문서를 관리하는 말단 관원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의 공과는 극과 극을 이룬다. 이사는 진시황을 도와 육국을 통일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도량형과 문자를 통일하였다. 법률을 정비하고 전국을 36개 군으로 나누어 군현제를 실시하여 체제의 안정을 꾀하였다.

이러한 공로로 말미암아 일부에서는 ‘천고의 재상(千古一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한다.

공로 못지않게 그의 허물 또한 씻을 수 없이 크다.

진시황을 부추겨 유학자들을 생매장하고 관련 서적들을 불태웠다. 이른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조종한 장본인이다. 아울러 진시황의 마음을 사로잡은 한비를 모함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한비는 말은 어눌하지만 학문적 성취는 매우 탁월하였다. 한비의 <고분(孤憤)>, <세난(說難)>, <오두(五?)>등 주옥같은 저작들은 진나라에도 전해졌다.

그의 저술을 접한 진시황은 한비의 자질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렇게 탄식하였다.

“내 이 사람을 만나서 교제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我要是能見到此人, 和他交往, 死也无憾).”

진나라가 한나라를 공격하자 다급해진 한나라는 한비를 사신으로 보냈다.

진시황은 그를 보자 몹시 반가워하였으나, 어떻게 그를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앞날에 방해가 될 것을 우려한 이사는 진나라에 도움이 될 인물이 아니니 한비를 제거하라고 건의한다.

야심가나 음모가들이 그렇듯, 이사는 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간신 조고(趙高)와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함양의 저자거리에서 허리가 잘리는 ‘요참형(腰斬刑)’을 당하였다.

옥에서 나와 처형장으로 향하던 중 둘째 아들을 보고 그는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금의환향하여 너와 함께 황견(黃犬)을 데리고 토끼 사냥을 하려 하였는데…”

사마천은 이사를 구차하게 권력에 영합한 인물로 혹평하였다. 이사의 야망이나 권력에 대한 열망을 비난할 것이 못된다. 일찍이 스승 순자가 충고했듯, 과욕이 화를 부른 것이다.…

이전투구 끝에, 평생을 ‘권력에 맞서 싸웠다’는 박원순 시민운동가가 서울 시장이라는 권력을 쥐게 되었다.

권력의 속성 상 그의 앞날이 험난할 것은 뻔하다. ‘지나치게 벼슬이 높으면 위태롭다’는 것이 사물의 이치이다. 흔드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가 아집과 독선 그리고 권력에 취해, 여름 날의 생선처럼 쉽게 변질되지 않기만을 희구(希求)할 뿐이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