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직장인의 처세와 ‘따즈루오위’의 의미
‘대지약우(大智若愚)!’ 노자가 남긴『도덕경』에 보이는 글이다. 이 말은 ‘큰 지혜는 우둔함과 같다’로 풀이한다. 이 풀이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무엇이 큰 지혜인가. 진정한 의미에서 큰 지혜를 지닌 자는 자신의 예리함, 총명함을 감추는 법이다.
‘대지약우’란 고상한 문어적 표현으로서 우리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진다. 중국 사회에서 “따즈루오위!”라는 말은 생동감 넘치는 구어식 표현이다. 드라마에서도, 방송국 사회자들도, 출연자들도 이 경구를 즐겨 사용한다. 이 말은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들어 내지 않는 중국인들 사이에 널리 회자된다.
먹잇감을 앞에 둔 호랑이나 독수리는 결정적인 기회를 엿보면서 조는 척한다. 이빨이나 발톱 등 자신의 예리함을 숨긴다. 동물들도 이처럼 지혜를 발휘하면서 생존의 법칙을 터득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때로는 동물들보다 어리석은가 보다. 모두들 자신의 학벌과 경력을 뽐내고, 자신의 세 치 혀로 자신의 총명을 드러내기에 여념이 없다. 근래에 보니 우리나라의 유명 정치가나 학자, 운동선수, 방송인들이 지나치게 탐욕을 부리거나 세치 혀를 마구 드러내다가 낙마하였다. 과욕을 부리거나 작은 재주나 총명을 함부로 드러내는 것은 화를 불러들이는 것과 같다. 화(禍)와 마(魔)가 문 앞에 엎드려 있음을 이들은 잠시 망각한 것 같다.
성경 잠언(箴言)에 ‘어리석은 자는 분노를 다 드러내어도 슬기로운 자는 분노를 억제하느니라.’ 라고 하였다. 우리 속담에도 ‘어리버리해도 당수 팔단’이란 말이 있다. 겉으로 보기엔 어수룩한 척하지만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보신과 실속’ 두 가지를 다 누리는 ‘처세의 달인’들이다. 중국에 살다보니 어수룩한 척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속이 꽉 찬 사람들이다. 알아도 모르는 척, 있어도 없는 척하면서 세태를 관망한다. 난세를 살아가면서 미꾸라지처럼 얄팍한 처세로는 금방 들통이 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익힌 듯하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마찬가지다. 주변을 둘러보면 지혜가 부족한 유사한 몇 부류의 인간형이 존재한다.
첫 번째 부류는 나약한 사슴같은 존재들이다. 좌절과 모욕, 슬픈 일을 겪으면 쉽게 절망한다. “나는 깨끗한데, 세상이 모두 썩었다”고 한탄하며 강가를 어슬렁거린다. 어떤 사람은 처자식도 팽개치고 ‘한강’ 철교를 배회한다. 이런 사람들은 각박한 세상에서 참으로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이다.
두 번째 부류는?’들이받기형’이다. 이른바 ‘투사형’ 인간들이다. 상사의 조그만 자극이나 모욕에도 사지가 마비될 정도로 온 몸을 부르르 떤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면 앞뒤 재지 않는다. 한 순간에 얼굴빛이 변한다. 상급자가 감정을 건드리는 말 몇 마디를 던지면 참지 못하고 바로 들이받는다. 심한 경우는 모욕을 준 상사에게 돌진해서 주먹으로 ‘옥수수’를 날리거나 ‘하키 스틱’을 휘두른다. 결코 지어내서 한 얘기가 아니다. 참을 인(忍) 자가 세 개 쯤은 필요한 사람들이다.
세 번 째 부류는 뒤에서 흉보는 형이다. 입맛에 맛는 사람들과 함께 ‘포장마차’에 가서 세치 혀로 밤새도록 상사를 두들겨 팬다. 나약한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모습이다. 옛말에 ‘없는 데서는 임금님 욕도 한다’고 하였다. 적당한 곳에 가서 열심히 ‘오징어’를 씹어가며 상사를 허물을 들춰내다보면 어느덧 스트레스가 풀린다. 이런 사람들은 잘 먹고 떠들어서 위장은 비교적 튼튼한 편이다.
네 번째 부류는 ‘초인적 인내심’을 가진 형이다. 이들은 모욕을 당해도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다. 숨이 터질 것 같은 극도의 굴욕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초인에 버금갈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억제한다. 표정하나 바뀌지 않는다. 머리에 똥물을 끼얹어도 참을 사람들이다. 그러나 몸 속의 장기(臟器)는 이내 지쳐버리고 만다. 잘 참고 있다가 집에 돌아가서 애꿎은 아내에게 화풀이를 한다. 이들은 근심 걱정과 술, 담배에 절어 만성 위장병을 끼고 산다.
마지막 부류는 아부형이다. 어찌보면 ‘무뇌(無腦)형’ 인간들이다. 충직한 사냥개 노릇을 한다. 상사의 구두라도 핥을 사람들이다. 오직 상사를 위해 태어난 인간들인 것 같다. 밤이고 낮이고 윗사람의 심기를 살핀다. 아무리 못된 상사라도 ‘당신께서…’를 반복하며 절대 욕을 하지 않는다. 윗사람의 성격 파악은 물론이고 취미, 때로는 종교까지도 같이 한다. 윗사람이 절에 가면 절까지, 교회가면 교회까지 따라 다닌다. 출세 앞에서는 종교나 신념은 안중에도 없다. 오직 윗사람을 신봉하는 ‘상사교(上司敎)’를 믿을 뿐이다.
여기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 부류 중에서 아부형은 논할 것이 못된다. 이들은 나름대로 ‘간악한’ 생존술을 터득한 자들이다. 이들에게는 해 줄 말이 별로 없다. 그대로 살다 죽게 내버려두면 된다. 다만 나머지 네 부류 모두에게는 굽힐 줄도 알고, 펼 줄도 아는 능수능란함(能屈能伸)이 필요하다.
부귀영화에 집착한 결과는 때론 잔혹하다. 꿈같이 헛된 부귀영화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난세에서 당당하게 천수를 누리려면 행, 불행의 결과까지도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이 요구된다. 멘토란 말은 흔하지만, 진정한 멘토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우리의 영원한 멘토, 노자가 던진 ‘대지약우’에 담긴 뜻을 매일 매일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