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이야기] ‘독성 캡슐’, 13억 인민은 절규한다
한국에서 ‘소비자 고발’ 등과 같은 프로그램이 국민들의 광범위한 호응을 얻고 있다. 돼지고기, 쇠고기, 생선 등 먹을거리부터 가습기, 불량 오토바이, 재생침대, 저질 윤활유 그리고 중고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부정과 비리, 비위생적인 측면 등을 파헤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관영 매체들이 앞장서서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있다.
국영 CCTV와 신화사 통신이 공업용 폐가죽으로 약품용 캡슐을 제조하는 공장과 해당 제약회사에 대해 보름 가까이 ‘융단 폭격’을 가하였다. 특히 뉴스 전문 채널 13번에서는 이른바 ‘유독성 캡슐(毒膠囊)’ 사건을 매 시간 톱뉴스로 다뤘다. 가짜 식용유 사건 등으로 가뜩이나 민감해 있는 중국 국민들은 또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천석꾼 천 가지 걱정, 만석꾼 만 가지 걱정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세계의 만석꾼’ 대열에 들어선 정부 당국자의 시름도 날마다 더해 가는 것 같다. 국가 식품? 의약품 감독국에서 9개 제조공장과 13개 의약품용 캡슐 제품에 대해 생산 및 판매 금지조치를 내렸다.
정부가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자 제조업자, 제약업자 및 유통업자들이 현장을 은폐하기 위해 폐가죽 퇴적장에 고의로 불을 지르거나 이미 생산된 제품을 은닉하기에 이르렀다. 시안(西安)의 한적한 야산 부근 보리밭에서 의약품으로 사용하려던 빈 캡슐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땅을 파 보니 흙더미 속에서도 몇 차 분량의 남색, 연녹색, 짙은 녹색의 캡슐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독성 캡슐을 생산하는 쉐양(學洋) 제조공장의 빈 터에는 잘게 파쇄된 가죽 조각이 산처럼 쌓여 있다. 거대한 퇴적장을 보니 한 때 서울시의 대표적 흉물이었던 난지도(蘭芝島)가 떠오른다.
공업용 피혁 원료는 약용 캡슐로 다시 태어나기까지 몇 단계를 거친다. 먼저 더럽고 지독한 냄새가 나는 가죽 조각을 생석회에 담가서 부풀어 오르게 한다. 그 다음에 화학 약품 처리를 하여 탈색시킨 뒤 여러 번 세척한다. 이어서 가마솥에 넣고 끓인 다음 응고, 건조, 분쇄 등의 공정을 거치면 산뜻한 모양의 담황색 또는 남색의 캡슐로 재탄생한다. 이 제품에서 검출된 중금속인 크롬이 법정 기준치의 무려 20~40배에 달했다. 이 식용 캡슐은 주로 감기약, 항생제, 비염 치료제, 위장약, 소화제로 사용된다.
독성 캡슐에 대한 우려는 환자들 사이에 일파만파로 번져갔다. 많은 환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캡슐을 까서 안에 들어있는 가루약만 먹는다고 한다. 이 뉴스를 접하는 순간, ‘과연 캡슐 안에 들어 있는 분말은 믿을 수 있을까? 혹시 이것도 공업용 유독성 가루는 아닐까?’라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중앙 정부, 국무원도 발 벗고 나섰다. 공안, 감찰, 위생 등을 담당하는 정부 부서에서 합동 조사반을 구성하였다. 처음에는 문제가 된 일부 제품에만 단속을 하였으나, 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약용 캡슐 전반에 걸쳐 전면적인 재조사에 나섰다. 불법의 현장에는 어디나 할 것 없이 어두운 공생 관계가 존재한다. 지방 정부 관료와 제조? 유통업자와의 유착관계도 참으로 공고하다. 법은 멀고 돈은 가깝기 때문일까. 아무리 ‘목’을 쳐도 부패의 고리는 끊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위에는 정책이 있고, 아래는 대책이 있다(上有政策,下有?策)’는 말이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단속반의 눈을 피하기 위해 온갖 협잡과 음모가 판을 친다. 제품의 은폐? 은닉 외에 검사 과정 비협조, 사실 기만, 견본 바꿔치기 등 수법도 실로 다양하다.
폐가죽을 원료로 약용 캡슐을 제조하는 목적은 한 마디로 말하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원가를 절감하는 데 있다. ‘불량 캡슐’ 제품 가격은 정품 캡슐 가격의 3분의 1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과도한 이윤추구를 위해 눈먼 상혼이 전 국민을 상대로 ‘참극’을 벌인 것이다. 동네 우물에다 독극물을 집어넣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 탓일까. 연일 유사한 보도가 뒤를 잇고 있다. 지난 4월 29일, 산시(山西)성에서 소독수(消毒水)를 혼합한 코카콜라 12만 상자가 유통돼 비상이 걸렸다. 그 순간 또 한 번 강한 의구심이 생겼다. 그렇다면 사이다와 맥주는 마셔도 될까? 식용유도, 감기약도, 소화제도 온통 믿을 수가 없으니 무엇을 믿고 무엇을 먹을 것인가. 불량 식품의 끝은 도대체 어디인가. 대한민국의 그것들은 과연 안전한가.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