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이야기] ‘닭장차’에서는 ‘대변 절대 금지!’

중국 서민들은 주로 기차를 이용한다. 기차를 타고 예사로 서너개 성(省)을 넘나든다. 오후에 기차를 타면 다음 오전에 도착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열 시간 정도를 이동하는 코스는 비교적 단거리에 속한다. 상하이에서 쿤밍까지는 33시간 정도 걸리고 신장성 우루무치까지는 두 배 이상 걸린다. 기차 안에서 꼬박 하루 이틀 밤을 보내야 한다. 기차야말로 서민들의 발이자 여관인 셈이다.

기차표를 구입하지 못했을 경우 부득이 이층 침대버스를 이용한다. 버스에 오르면 일단 운전기사가 신발을 담도록 비닐봉지를 한 개씩 나눠준다. 침대라야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의 높이에 덩치가 큰 사람은 몸을 눕히기도 쉽지 않다. 비좁은 공간에 침대가 위, 아래로 놓여 있다. 한 줄에 일곱 개씩 ‘삼렬종대’로 늘어서 있다. 운전기사들을 포함하여 45명 정도가 탈 수 있다. 통로를 지나갈 때는 왜소한 사람조차도 몸을 옆으로 약간 비틀어야 한다. 차라리 ‘닭장 차’라 부르는 게 제 격일 것 같다.

어느 해 이맘 때 쯤, 장쑤성 옌청(鹽城)을 출발해 안휘성 허페이(合肥), 후베이성 우한(武漢)을 거쳐 후난성 창사(長沙)로 가는 이층 침대버스를 탄 적이 있다. 1500km는 족히 되는 거리다. 수년 전부터 ‘안락한’ 이층 침대버스를 꼭 한번 타 보고 싶었던 ‘숙원’이 마침내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 악취가 진동해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후회막급이었다. 순간 쿤밍에서 한국인 여행자를 상대로 여행 알선 숙박업을 하는 조용칠(49)씨 부부 말이 떠올랐다.

“이층 침대버스는 절대 타지 마세요. 발 냄새가 지독해서 한국인들은 적응하지 못해요. 특히, 여름철에는 견디기 힘들 거예요.”

아래층 맨 앞쪽 중간 좌석을 배정받았다. 한 번 누워보았다. 조금 과장하자면 왼쪽 발가락이 운전기사의 오른 쪽 어깨와 닿을락 말락했다. “이 ‘생지옥’을 언제나 벗어날꼬.” 타는 순간부터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주위 승객들은 오랜 여행 끝에 집에 돌아오기나 한 듯, 익숙한 자세로 신문을 보기도 하고, 휴대폰으로 잡담을 하며, 가져온 과일이며 오징어와 삶은 계란을 맛있게 먹어댄다. 깔끔한 차림의 한 아가씨는 일 년 내내 한 번도 빤 것 같지 않은 얇은 이불을 반쯤 덮고 ‘쌔근쌔근’ 코를 골며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든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 남자가 좌석 발끝에 설치해 놓은 깡통에 담배를 피우다 말고 연신 가래침을 뱉어댄다. 좌우에서 경쟁하듯 담배를 빨아댄다.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다. 뒤에서는 젊은 여자 승객이 목소리를 높인다. “TV 화면이 안보이니 눕든지 고개를 낮추든지 하세요.” 중간에 내리고 싶었으나 380위안(한화 67000원 정도)이나 되는 차표가 아까워 그럴 수도 없었다.

이층 침대버스는 보통 두 명의 운전기사와 한 명의 남자 차장이 따라 붙는다. 차장은 중간 중간에 휴대폰으로 연락하며 끊임없이 사람을 태운다. 중도에 올라 탄 짧은 치마를 입은 처녀가 차장과 요금 흥정이 끝나자마자 단숨에 이층 침대에 오른다. 속옷이 보이건 말건 모두들 소 닭 보듯 관심이 없다.

한참 가다보니 작은 화물차에 물건을 잔뜩 실은 운전기사가 불쑥 나타났다. 버스 차장과 ‘운송료’ 흥정을 마친 후 짐칸에다 벽돌크기의 쇳덩어리를 가득 싣는다. 한 몫 단단히 잡은 것 같다. 중간 중간 사람도 태우고 화물을 실으면서 이렇게 3000여 km를 오가는 동안, ‘의외의 수입’이 적지 않을 듯싶었다. 대충 헤아려보니 후난 창사에 도착하기까지 승객을 태우려고 무려 20회 이상은 차를 세웠던 것 같다.

목적지까지 22시간 정도를 달리는 데 익숙해진 운전기사들은 차 안이 이미 ‘편안한 숙소’가 돼 버렸다. 이들은 이곳에서 동승한 동료기사들과 떠들다가 양말을 벗고 익숙한 자세로 잠을 청한다. 텁석부리 기사들은 휴게소에서 수염도 깎는다. 밤 열두시 경 교대를 하면 졸린 눈으로 핸들을 잡는다.

이튿날 새벽, ‘닭장 차’에서 죽다 살아나면서 어금니를 깨물고 다짐했다.

“ 내 평생 이런 차를 타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만사 뜻대로 되는 일이 어디 있을까.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 돌아오는 길에도 자포자기하며 낡은 이층 침대버스에 몸을 실었다. 출발 시간이 아직 멀었는데도 일부 승객들은 먼저 차에 올라 달게 잠을 자고 있었다. 이래저래 씁쓸한 마음을 달래가며 관(棺)짝 만한 침대칸에 지친 몸을 누였다. 누워서 보니 붉은 글자로 선명하게 쓴 몇 글자가 한 눈에 들어왔다.

“경고! 대변 절대금지!” 간이 화장실 윗부분에 적힌 글자였다. 그 화장실을 남녀노소가 수도 없이 들락거렸다. 급해서 화장실에 갔을 텐데 과연 몇 명이나 이 ‘법규’를 지켰을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오른쪽 승객에게 말을 건넸다. 동일한 목적지인데 옆에 탄 한 회사원은 280위안에 차에 올랐다. 출장길에 이 차를 자주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창구에서 정식으로 표를 사면 380위안이다. 그러나 물정 모르는 사람들을 빼놓고는 대부분 창구에서 표를 구입하지 않고 직접 차에 오르고 나서 차장과 요금을 흥정한다. ‘바보’나 창구에서 표를 산다는 것이었다. 스스로에게 푸념하였다. “바보는 바보짓만 골라 하는구나!”

이 후에도 닭장차와의 질긴 인연이 계속됐다. 저장성 사오싱(紹興)까지 500여 km 남짓한 거리를 갈 일이 생겼다. 비교적 짧은 거리여서 침대버스를 이용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일반 장거리 버스에 올랐다.

이 버스는 약 서너 시간 동안 시골 바닥을 누비며 5~10분 간격으로 손을 든 사람들을 모조리 태웠다. 잠시 후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더니 갑자기 필자에게 손짓을 하며 내려서 앞에 대기하고 있는 버스로 갈아타라고 했다. 문제의 닭장차가 ‘반갑게’ 기다리고 있었다. 수갑을 찬 채 몸을 맡기는 ‘죄수’의 심정으로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침대버스에 올랐다.

모든 것은 적응하기 나름, 어느새 익숙해 진 탓일까. 이불을 몸에 걸치고 두세 번 뒤척이다 이내 곯아 떨어졌다. 다음 날 이른 새벽 목적지에 도착했다. 7~8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무려 15시간 여 만에 도착한 것이다. 동안(童顔)에 스포츠머리를 한 맘씨 좋은 지창푸(季昌夫, 35)가 휴대폰으로 ‘불법승객’을 태우기 위해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소리가 귀행길에는 자장가처럼 들린다.

5월6일, 허베이성 스자좡(石家庄)시의 온도가 섭씨 36도까지 치솟았다. 폭염에도 침대버스에 올라 발냄새를 ‘오징어’ 냄새 삼아 단 잠을 자고 있을 중국 서민들의 모습이 다시금 그립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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