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이야기] 개미족(蟻族)의 비애와 꿈

난징 산씨루(山西路) 군인구락부 부근에 위치한 도서시장은 25% 가량 할인해준다. 숙소와 가깝기도 하고 산보도 할 겸해서 자주 들르는 편이다. 난징 최대의 도서 할인시장으로서 3층 건물 안에 크고 작은 수많은 점포들이 꽉 들어찼다. 이곳에는 온갖 종류의 책들이 망라돼 있다. 사회과학 책을 전문으로 파는 3층의 한 서점에 ‘의족(蟻族)’이라 적혀있는 책이 눈에 띄었다. 중국에 존재하는 56개 소수민족 중 하나 쯤으로 여기고 몇 번을 무심코 지나쳤다. 그러다 문득 수년 전 한국 TV에 소개된, 베이징 외곽의 빈민굴에서 개미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떠올랐다. 책 몇 쪽을 뒤적거리다가 TV에 소개된 사람들이 ‘개미족’임을 곧 알아차리게 되었다. 이들은 지하 쪽방이나 침대 한 칸을 얻어 고된 하루를 시작한다. 도시 한 복판으로 출근을 하고 저녁이 되면 지친 몸을 이끌고 쪽방촌으로 돌아온다.

물론 중국에도 오렌지족이나 캥거루족이 있다. 도시나 농촌을 막론하고 대부분 외아들, 외딸이라서 부모들은 자녀들을 왕자나 공주처럼 애지중지한다. 그래서 이들에게 붙여진 별명이 ‘소황제(小皇帝)’다. 부모를 잘 둔 덕에 호의호식하며 지낸다. 취직도 안하고 부모에게 손을 벌리며 하루 종일 빈둥거리며 부모 곁을 떠나지 못하는 ‘캥거루족’도 있다. 활기찬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이들의 미래는 결코 밝지 못하다. 다시 개미족 이야기로 되돌아가보자.

중국 인터넷사이트 ‘바이두(百度)’에 따르면, 개미족은 ‘대학필업생저수입취거군체(大學畢業生低收入聚居群體)’로 간략히 풀이돼 있다. 부언하자면, 개미족이란 주로 농촌이나 지방 중소도시에서 대학을 갓 졸업하고 꿈과 희망을 안고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대도시로 일거리를 찾아 무작정 뛰어든 젊은이들을 말한다. 이들은 소득이 없거나 아니면 임시로 좋은 직장을 찾을 때까지 허드렛일을 하면서 적은 임금으로 고달픈 삶을 꾸려 나간다. 대도시의 비싼 방세를 절약하기 위해 도시외곽 가장 저렴한 곳에서 쪽방이나 침대 한 칸을 얻어 개미처럼 한 곳에 모여 살고 있다.

2010년 11월 출간된 <우리들의 미래 ‘我們的未來-蟻族再調査-’>라는 책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2년간에 걸쳐 북경 교외에서 분투하는 개미족을 취재한 생생한 실태 보고서다. 2011년 3월 출간된 <중국팔령후조사 ‘中國八零後調査’>도 앞의 책과 대동소이하다. 주로 인터뷰 형식을 취하였으며, 당면한 생계문제와 미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청년들의 현장고백이다. 80년대 이후 출생자들이 개미족의 주류를 이루면서 ‘빠링허우(80後)’로 칭하기도 한다. 이들은 배우지 못해 공사판이나 공장, 식당 등 3D 직종을 전전하는 ‘농민공(農民工들)’과는 그 위상과 성격이 사뭇 다르다.

우리나라에도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개미족이 존재한 적이 있었다. 60년대, 70년대에 농촌 청소년들의 ‘무작정 상경’ 열풍이 일었다. 이들은 생계를 위해 공장직공과 식모살이도 불사하였다. ‘공순이’, ‘공돌이’라는 소리를 무릅쓰고 희망찬 미래를 위해 서울로 몰려들었다. 봉천동, 금호동 판자촌을 비롯하여 중랑천 가에도 뚝방촌이 길게 늘어섰다. 종로 등 중심가를 제외하고는 서울 전체가 거대한 하나의 판자촌, ‘개미촌’을 형성하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개미족 양위(楊雨)가 거주한 곳의 모습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녀는 베이징에 온지 2년 되었다. 이 기간 동안 무려 8번이나 이사를 하였다. 변두리에 월세 3백위안(한화 약 5만5천원) 짜리 이층 침대 한 칸(床鋪)을 세 내 살았다. 기차의 비좁은 침대 칸을 연상하면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대학을 갓 졸업한 양위의 형편으로는 보증금과 더불어 한 번에 석달치 방세를 치르기가 여의치 않았다. 최근 상하이나 베이징 방세는 서울의 그 것을 상회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의 인간 생지옥 같은 삶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양위의 유일한 사적인 공간은 이층 침대 안이 전부였다. 나머지 공간은 모두가 공동으로 사용한다. 화장실이나 주방 등은 무려 20명이 사용해야 했다. 70년대 금호동 달동네 친척 집이 생각났다. 아침에 볼일을 보러 공동화장실로 나가면 이미 여러 명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베이징의 개미족이 사는 곳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녀는 2층 침대를 사용하였는데, 아래 침대에는 부동산회사에 출근하는 한 여자가 사용하고 있었다. 출퇴근 시간도 각기 달라서 제대로 잠을 청할 수도 없다. 매일 침대를 오르내릴 때도 신경이 쓰였다. 아래 층의 여자가 한 숨을 쉬면서 불평불만을 쏟아내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어떤 사람은 여섯 시에 일어나서 밤 열두 시에 들어온다. 월 2000위안(약 36만원) 안팎의 월급으로는 방세와 교통비, 식비를 해결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이 곳을 떠날 수가 없는 형편이다. 고향 부모님은 베이징에서, 상하이에서 취직 아닌 취직을 한 아들, 딸들을 대견해 한다. 사정도 모르고 입이 마르도록 이웃을 찾아가 아들 딸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정작 이들의 삶은 고달프기만 하다. 지방의 명문대학을 나오고도 적절한 일자리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2009년 하얼빈에서 대학을 졸업한 전이(田怡)는 우선 숙소 문제를 해결하고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발마사지센터로 향한다. 그녀는 학력도 속이고 이곳에서 낯선 남자의 ‘더러운’ 발을 주무르고 있다. 명절에 고향에도 가지 못한다. 떳떳한 일자리를 찾지 못했을 뻔더러 고향에 돌아갈 차비며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마련할 돈을 모으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차로 하얼빈까지 왕복 4박5일은 꼬박 걸릴 것이다. 외딸로 자란 ‘귀하디 귀한’ 손으로 ‘외간 남자’의 발을 주무르며 눈물겹게 번 한달치 월급을 부모님께 보낸다. 전화통 붙잡고 회사일이 바빠서 명절에 고향에 가지 못한다고 허세를 부린다. 부모님의 체면을 한껏 세워준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비애의 눈물을 흘린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어찌 주체할 것인가.

천신만고 끝에 6000위안, 9000위안의 월급을 주는 ‘이상적인’ 직장을 찾은 개미족도 가끔 있다. 이들은 보란 듯이 지긋지긋한 개미족 생활을 청산하고 ‘정든’ 쪽방촌을 떠난다. 종종 좋은 회사에 취직하여 ‘개미굴’을 떠난 사람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이들의 마음도 설레인다. 지금은 비록 굼벵이처럼 꿈틀거리고 있지만 이들도 언젠가는 매미가 되어 활짝 날아오를 것이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웃나라 개미족 청년들에게 송대관의 노래처럼 ‘쨍하고 해뜰 날’이 돌아오기를 기대하며 힘찬 애정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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