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운전하는 여성 기사, 중국의 힘 ‘빤삐엔톈(半?天)’
예나 지금이나 부녀의 몸으로 힘든 일을 하기란 쉽지 않다. 중국인들은 ‘빤삐엔텐(半?天)’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하늘의 반(半)은 여자가 떠 받치고 있다’는 말인데 ‘여성이 사회의 반을 감당한다’ 또는 ‘남자가 하는 모든 일은 여자도 다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말은 빈 말이 아니다.
인구 900만명이 넘는 허난성 정저우(?州)시나 820만 여 명에 이르는 장쑤성 옌청(鹽城)시의 대중버스 운전기사는 두 세 명 중 한 명이 여성이다. ‘빤삐엔톈’이란 말이 실감난다. 도시 한복판을 가르는 이층버스를 타보았다. 선글라스를 끼고 ‘나름대로 멋을 낸’ 여자 버스 운전기사가 한 눈에 확 들어온다. 담배 한 모금을 멋지게 빨았다가 뿜어낸다.
짝 달라붙는 청바지에 귀고리를 한 날씬한 몸매가 이방인의 시선을 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일부러 말을 걸어보고자 길을 물으니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층 맨 앞자리에 앉아서 밖을 내려다 보았다. 연탄을 가득 실은 마차, 전동차, 오토바이, 인력거 비슷한 삼륜차(택시 대용), 자전거, 행인 등이 뒤섞여 도로는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보기만해도 짜증나는 도심을 20대의 예쁜 여자 운전기사가 유유히 누비고 다닌다.
털털거리는 시골길을 달리는 마을 버스도 예외는 아니다. ‘홀쭉이’ 처녀가 모는 낡은 시골 버스에, 머리가 벗겨지고 배가 불룩 튀어 나온 늙수그레한 ‘뚱땡이’ 남자 차장이 요금을 받기 위해 분주하게 버스 안을 오간다. 승객이 적을 때는 다정하게 얘기를 주고 받으며 시골길을 달린다. 정겨운 장면이다.
이들의 근로 시간은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12시간 정도다. 지역과 경력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이지만, 중소도시 운전기사의 기본 급여는 월 2000위안(35만원)이 채 안 된다. 박봉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거친 핸들’을 잡으며 열심히 살아가는 여자 버스기사들에게 존경심이 절로 인다.
허난성 핑딩산(平?山)이 고향인, 모델 뺨치게 예쁘고 늘씬한 양 류쓔즈(?柳秀子,21살) 학생에게 물었다. “류쓔즈야. 너도 버스 운전을 할 수 있겠니?” 라고 묻자,? 대뜸 “그럼요. ‘빤삐엔톈’이라고, 남자가 할 수 있는 직업은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요” 라고 당당하게 얘기하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전업주부’라는 말을 찾아보기 힘들다. 부부가 모두 생업 전선에 나선다. 오토바이와 비슷한 전동차에 ‘말 장화’를 신은 여성들로 아침 출근 행렬은 장관을 이룬다. 순간, 앞치마를 두른 채 애교 섞인 목소리로 “여보! 잘 다녀오세요”라고 말하는 한국의 새댁들이 떠오른다. 온실의 화초와 들의 잡초, 누가 과연 진정한 생명력을 가진 것일까?
가스가 떨어져서 가스통을 주문하니 애 엄마가 애를 오토바이에 태운 채 가스통을 싣고 한 걸음에 달려온다. 여자가 애를 데리고 ‘위험한’ 가스통을 들고 왔다고 아내가 질겁을 한다. 애 아빠는 다른 곳에 가스 배달을 나간 모양이다.
중국은 목하 공사중이다. 흔히 ‘노가다’라고 하는 농민공(?民工,농촌 출신 도시 노동자)의 세계에도 ‘빤삐엔톈’은 존재한다. ‘무등산 수박’ 만한 얼굴에 어거지로 안전모를 눌러 쓴 아주머니가 팔자걸음으로 벽돌을 나른다. 이들 ‘여 전사들’에게서 다시금 ‘떠오르는 용’ 중국의 힘을 느낀다. 초강대국으로 급부상하는 중국의 배후에는 ‘빤삐엔톈’이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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