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이야기] 꿈 잃은 9억 농민의 ‘출애굽기’

2011년 창간한 아시아엔은?11월11일 창간 3돌을 맞아 그동안 보내주신 성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시아엔은 창간 1년만에 네이버와 검색제휴를 맺었습니다. 하지만 제휴 이전 기사는 검색되지 않고 있어, 그 이전에 발행된 아시아엔 콘텐츠 가운데 일부를 다시 내기로 했습니다.?독자 여러분께 좋은 정보가 되길 바랍니다.<편집자>?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다(不管黑猫白猫, ?住老鼠就是好猫).”

개혁개방의 총 지휘자 오뚝이 등소평이 한 말이다. 중국은 2년 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머지않아 미국을 따라잡을 기세다. 그러나 개혁개방은 중국에 풍요와 더불어 빈부격차를 ‘선물’로 가져다주었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처럼, 인구의 대다수를 점하는 농민들은 여전히 가난의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농업부에서 발표한 <2005 중국 농업발전 보고>자료에 의하면, 2003년도 농촌 인구를 9억 3천만 명으로 추산하였다.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한 농민의 물결이 해를 거듭할수록 거세지고 있다. 우리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농촌 공동화 현상’ 이란 용어가 매스컴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매년 천만 명에 달하는 농민들이 ‘농민공’이라는 이름으로 도시를 향해 질주한다. 소는 누가 키우나?

이들이 하는 일이라곤 사회 저층의 고된 일뿐이다. 이른바 건설현장 노무자, 발 안마사, 때밀이, 파출부, 식당 종업원 등이 주류를 이룬다. 비인간적인 대우, 저임금과 힘든 육체노동에 시달려 심신이 피폐해진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가난에 찌든’ 고향에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도시에서는 열심히 몸을 움직이면 몇 푼이라도 돈을 만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농민공은 대략 3억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며 2015년까지 2억 이상이 농촌을 더 빠져나갈 것으로 전망한다. 이들은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뿐만 아니라 아프리카를 포함하여 전 세계로 발길을 돌린다. ‘젖과 꿀이 흐르는 도시’를 향해 이어지는 농민들의 ‘출애굽’은 과연 축복인가? 재앙인가?

우리나라 공사현장, 돼지 농장, 양계장, 양어장, 굴 양식장, 식당, 고랭지 배추밭에도 이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심지어 강원도 화천읍 버스터미널 부근의 김밥집이나 심마니가 기르는 장뇌삼 밭에서도 허난성, 쓰촨성 등에서 ‘흘러들어 온’ 농민공들이 억척스럽게 일한다. 작년에 용인터미널 부근에서 만난, 푸젠성(福建省)에서 온 40대 초반의 ‘뚱보’는 9년 째 한국에 불법 체류하며 본국에 돈을 송금한다. 중국 농민의 이탈 행렬이 강원도 양구, 화천을 거쳐 경북 봉화에까지 이어진다.

젊은이가 떠나간 들녘을 노인들이 지킨다. 한반도 면적의 열배는 족히 넘고도 남을 광활한 네이멍구(?蒙古) 땅. 대부분의 농가들이 지금 일손 부족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네이멍구 자치주 우란차부(??察布)시 외곽의 조그만 농촌마을. 이곳은 지금 감자 수확이 한창이다. 넓은 들녘에 나이든 농민들이 열심히 감자를 거둬들이고 있다. 대부분이 60~70대에 이르는 노인들이다. 광활한 대지에 뼈만 앙상한 노인들이 호미와 괭이를 들고 연신 허리를 굽힌다. 감자를 가득 담은 망을 들어올리기조차 힘에 부친다. 허난성 뤄양에서 온 젊은 삯군 두 명이 열심히 감자수확을 거들고 있다. 이들의 일당은 100위안(약 1만8천원)이다.

이 마을에? 40대라곤 단 두 명뿐이다. 이들도 틈만 나면 호미를 집어 던지고 도시로 나가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고생, 열악한 교육? 문화 환경, 죽어라 일해도 이들을 반기는 것은 지긋지긋한 가난뿐이다. 삼대가 꿈에서라도 농촌을 떠나는 것이 소원이다.

『농민은 왜 토지를 떠나는가, 農民爲什?離開土地』(인민일보출판사, 2011,주치전·자오천밍<朱啓臻? 趙晨鳴> 공편) 에 보면, 황폐한 농촌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이 책은 농대교수들이 2009년 5월부터 2010년 11월까지 18개월에 걸쳐,? 베이징·허베이·산시·충칭·안휘·헤이룽장 등 20여개 지역의 농촌 현장을 발로 구석구석 누비며 농민의 목소리를 담은 현장 보고서이다. 농민이 농촌을 떠나 대도시로 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소득이 보잘 것 없고, 고된 노동에 시달리며, 도무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내용 일부를 인용해본다.

“부모가 자녀에게 훈계한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농사나 지을 수밖에 없다.’ 교사도 제자들을 부추긴다. ‘대학에 못 들어가면 농민밖에 될 수 없다.’ 모두가 농촌 생활을 한탄한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누가 농촌에 남아 있으려 하겠는가. ”

정부 당국에서도 보조금을 주어가며 농업을 장려하고, 기계화·과학화를 위한 교육서비스 제공 등 규모의 농촌 경제 달성을 위해 사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농촌을 떠나지 않아도 농사는 결코 짓지 않겠다’는 당나귀 같은 농민의 완강함은 어찌할 수 없다.

자식들을 자의 반 타의 반 도회지로 떠나보내고 나서 노인들의 탄식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가 죽고 나면 이 땅에 누가 씨를 뿌리나! ”

흙에서 나와서, 흙을 밟고, 흙 속에서 땀을 흘리다 흙속으로 돌아가야 할 인간이, 흙을 등진다면 흙은 말없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보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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