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이야기] ‘한족 파출부’가 담가주는 김치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

가수 정광태가 부른 김치를 주제로 한 노래다. 중국 땅에서 김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 같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비슷한 속담이 중국에도 존재한다. ‘루썅쑤이쑤(入鄕隨俗)’란 말이 그것이다. 중국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옷도 음식도, 사고방식도 그리고 행동양식마저도 철저히 현지화해야 된다고 말한다. 중국말을 잘 하려면 한국어를 잊어버려야 한다고 충고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먹는 것만큼은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노린내 나는 양고기 샤브샤브를 현지인처럼 잘 먹는 한국인들이 많다. 향채(香菜)의 냄새는 너무 역겨워서 많은 한국 사람들은 잘 적응하지 못한다. ‘처우떠우푸(臭豆腐,일명 똥두부)’에 이르면 할 말을 잃는다. 우리의 청국장보다 열 배 이상은 ‘구린내’가 나서 코를 막기가 일쑤다. 음식이란 중독성이 있는 법, 현지 입맛에 적응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음식의 현지화 대신 오히려 우리 한국 사람들은 김치와 고추장 덕에 타국 땅에서 거뜬히 살아간다.

중국 음식은 짙은 향료 냄새며 인공 조미료를 과도하게 사용한 탓에 하루 이틀만 먹어도 물린다. 중국에 겨우 며칠 관광하는 사람들조차도 고추장을 필수품으로 준비하여 여행길에 오른다. 중국에서 장기간 생활을 해 본 사람은 누구나 그렇듯 김치 없이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

중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김치를 담가 먹고 있다. 한국에서는 주방에 얼씬조차 하지 않았어도 어쩔 수 없다. 가끔 출출하고 입맛이 없을 때는 신김치와 김치 국물을 마시면서 향수를 달랜다. 김치를 담근다는 것 자체가 비용은 물론이고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배추 고르는 것부터 재료 배합이며 온갖 정성을 다 들여야 제 맛이 난다. 몇 번 시험 삼아 담가보니 제법 요령이 생겼다. 제일 간편한 깍두기에서부터 포기김치, 오이소박이까지 담가서 냉장고에 넣어두니 은행에 돈을 쌓아둔 것처럼 흐뭇하다.

사무실 안팎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나 경비 아저씨들이 좀 친해지자 말을 걸어온다. 한국 김치 맛을 보고 싶은 모양이다. 하루는 청소하는 아주머니들 대여섯 명이 모여서 작심하고 지나가는 나를 불러 세운다. 김치 담그는 법을 알려달라는 것이다. 나는 빈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열심히 설명하였다. 천연소금에 배추를 푹 담가서 장시간 숨을 죽여야 하는 것부터, 고춧가루, 생강, 젓갈류, 마늘, 양파, 심지어는 배까지도 준비해야 된다고 열변을 토하였다. 마치 김치 세계화에 나선 ‘아줌마 홍보대사’ 같다.

난징시 상하이루 뒷골목에 ‘미다래’라는 조그만 한국식당이 있다. 사장은 40대 중반 정도 돼보이는 얼굴이 길쭉한 아저씨다. 그의 얼굴은 수호지에 나오는 흑선풍 이규나 옛 카이펑 시장 포청천처럼 아주 새까맣다. 한국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느냐고 묻자, 중국인들의 비율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한족들도 김치, 고추장, 된장 맛을 알아서 주기적으로 찾는다고 한다.

한국인이 모여 사는 베이징, 상하이, 칭다오 등을 제외하고 내륙 지방에서 제대로 된 김치 맛을 즐기기란 쉽지 않다. 김치를 담그려고 뒷골목 재래시장에서 탐스럽게 보이는 배추를 세 통 집어 들었다. 이곳의 배추는 보통 한국 배추의 절반 내지 3분의 2 크기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 돈으로 한 통에 1400원 정도 주고 샀다. 며칠 지나서 다른 시장에 똑같은 배추가 800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가지를 쓴 것이다.

한국에서는 배추값이 폭락하여 배추를 갈아엎는 해묵은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가정주부들은 김장하기를 꺼려하는 모양새다. 배추값은 떨어졌으나 고춧가루, 천일염 등 부대비용이 만만치 않게 비싼 것 같다. 김치에 들어가는 각종 재료가 비싸서 김치를 담그기를 꺼려하는 것도 있지만 젊은 주부들이 김치를 담그는 방법을 모르거나 게으른 탓도 있을 것이다. 사서 먹는 것이 간편하고 시간도 아끼며 수고를 덜기 때문에 오히려 경제적일 수도 있다. 친정이나 시집에서 가져다 먹는 재미에 김치 담그는 방법을 아예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어느 모임에서 주기적으로 점심을 같이 먹을 일이 생겼다. 김치 맛을 보니 도무지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알고 보니 그 곳에서 일하는 한족 출신 파출부 아주머니가 담근 김치였다. 인건비가 싼 탓에 현지 사람을 고용하여 청소며, 허드렛일 그리고 밥하는 것은 물론 김치 담그는 것까지 시킨 모양이다. 그렇다면 손수 팔을 걷어붙이고 김치 담그는 방법을 제대로 알려줬어야 하는 데, 정작 자신들조차도 제대로 김치를 안 담아봤으니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 꼴이다.

주재원 부인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에 사는 상당수 한국 가정주부들은 유유자적한 삶을 누린다. 기초 생활물가가 한국의 1/4~1/5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저렴한 임금으로 파출부나 전용 가정부를 두고 있다. 가정부에게 집안살림을 맡기고 배드민턴이나 테니스를 친다. 사우나도 하고 오후에는 고상한 곳에서 ‘베이징카오야(北京??)’를 즐긴다. 고된 이국생활에서 저마다 위안을 찾을 수 있는 방도를 모색한다. 여행 겸 ‘짝퉁 사냥’에 나선다. 이런 생활을 몇년 즐기다 보니 한국에 돌아가기가 싫어진다.

젊은 새댁들이 한국에서도 시집이나 친정에서 김치를 가져다 먹었는데 중국에서 김치를 담글 턱이 없다. 그러니 김치를 담그는 것 같은 귀찮은 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된다. 한국의 김치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김치는 그래도 양반이다. 시간 때우다 돌아가는 중국 아주머니가 무슨 정성을 쏟겠는가. 이들이 김치를 담가서 한국 애들에게 먹이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무슨 제대로 된 김치 맛이 나겠는가. 정성과 손맛을 잃었으니 ‘죽은 김치’를 먹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TV를 켜니 기네스북 관계자들이 나와서 기네스북에 오를 사람들의 묘기를 검증하고 있었다. 중국인 사범이 어린 아이 수십명과 함께 각종 태권도 묘기를 선보였다. 그러고 난 후 그 자신이 수십 회에 걸쳐 두 발을 들어 올리고 머리를 아래로 향한 채 공중격파를 하고 있었다. 그는 기네스북에 오르기 위해 태권도 묘기를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김치나 태권도처럼 우리 것을 우리가 잘 보전하지 않는다면 한 세기 뒤에는 종주국이 뒤바뀔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나라 안에서도 젊은 주부든 늙은 주부든 김치를 담그기 싫어하고, 김치 맛이 더욱 그리운 중국 땅에서도 김치 담그기를 싫어한다. 한족 여인네가 담가 준 김치를 히죽히죽 웃으며 나누어 들고 돌아가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까. 지나친 비약일까? 노파심일까? 김치 종주국의 여인네들이여, 크게 각성하고 각성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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