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중국에 불어오는 ‘문사철’ 바람
최초의 유학(儒?) 학과, ‘이산학당’의 도약을 기대하며
역사 드라마 ‘손자(孫子)’의 후반부에 보면, 백발이 성성한 오자서(伍子胥)가 초평왕의 시신에 대고 미친듯이 채찍을 휘두르는 섬뜩한 장면이 나온다. <<사기(史記)>> <오자서> 열전에 의하면, 무려 300번이나 시체에 매질을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부친과 형님을 살해한 철천지 원수, 초평왕에 대한 골수에 맺힌 한을 마침내 푼 것이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君子?仇十年不?)’는 중국 속담은 아마도 이러한 고사들에서 유래한 것 같다.
햇볕이 따사로운 늦가을 어느 날 오후, 대학 내 조용한 찻집에 앉아 신보(辛博), 쑨옌(孫姸) 등 ‘학구파’ 남녀 학생 몇 명에게 ‘오자서의 시신 매질 사건’을 들려주자 반응이 전혀 없다.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생전 처음 들어 본 얘기라고 한다. 대학 본관 좌측에 사마천의 조각상이 버젓이 놓여있고, 사마천을 모신 사당(韓城市)이 지척에 있는 데도 ‘사기열전’에 수록된 역사적 인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한국에서 ‘문사철(문학 사학 철학)’을 대표로 하는 이른 바 인문학이 오래도록 푸대접을 받아온 것처럼, 중국에서도 ‘돈’과 관련이 없는 고전분야는 고사 직전에 놓여 있다고 한다. 취업에 유리한 금융· IT·경영 등 실용적인 학과가 인기가 높다. 중국에서도 ‘문사철’은 ‘렁먼(冷?, 비인기 분야)’으로 통한다.
빈사상태에 놓인 고전과 유학을 장려하기 위해 북경사범대, 청화대, 산동대 등이 발벗고 나섰다. 2012년 10월 19일, 이들 세 개 명문 대학이 연합으로 ‘유학 및 중화문화부흥 협동센터’를 설립하는 의식을 거행한 것이다.
이에 앞서, 공자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산동대학에서 최초로 유학(儒?)학과가 개설돼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학과의 이름도 공자의 고향인 곡부(曲阜)의 ‘이산(尼山)’을 본따 ‘이산학당’이라 지었다. 화상보(華商報), 2012년 10월 31일자에 소개된 이산학당의 면모를 더듬어 보자.
2012년 10월 8일, 산동대학 유학고등연구원 산하 이산학당에서 유학학과 신입생 24명이 첫 수업을 시작하였다. 이것의 의미는 실로 크다. 2400개도 넘는 중국 대학 가운데 고전문화를 부흥시키려는 최초의 시도이자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신입생 선발은 대학 1년과정을 수료한 산동대학 2학년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고전 탐구에 열정과 기본 소양을 갖춘 학생들만을 엄선하였다. 전공과목으로는 시경·주역·예기·좌전·사서·사기·자치통감·사고전서 등 중국 고전을 대표하는 작품들이 망라돼 있다.
모집 규모는 매년 20명 정도이고, 앞으로 한국·홍콩·대만·일본 등지의 학생에게도 개방할 계획이다. 교육과정은 학부 석사 통합과정으로 이루어졌으며 모두 6년 동안 진행된다. 필수 과목으로는 30여 개의 경전이?해당되며, 선택과목은 <<세설신어(世說新語)>> 등 44개에 이른다. 매 학기 성적 불량자는 경고하며 2회 연속 경고를 받은 자는 자동 제적 처리된다.
유학고등연구원을 대표하는 당위원회 서기 바진원(巴金文, 55)은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산동대학은 유학의 발원지로서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할 것이며, 본 대학의 유학고등연구원을 장차 세계 유학연구센터이자 국제적인 중화고전문화 부흥의 요람으로 육성해 나갈 것이다.”
산동대학 유학고등연구원은 기존의 유학고등연구원, 유학연구중심, 문사철연구원, <<문사철>> 편집부 등 4개 기구가 통합된 것이다. 이산학당의 실질적인 운영 책임자이자, 저명한 문헌학자인 뚜쩌쉰(杜??, 49)은 학생 선발에 직접 참여한 소감을 이렇게 피력하였다.
“중도탈락자를 방지하고 면학 분위기 형성을 위해 고전에 기본 소양을 갖추고 열정과 관심이 남다른 학생 위주로 선발하였다. 이들을 중국 고전문화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고급 학술인재로 길러낼 것이다.”
그러나 학과 개설 및 추진 의욕에 비해 이산학당의 학습 환경은 매우 열악하여 안쓰러운 생각마저 든다. 고정적인 강의실도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오래된 수학관 건물 1층 빈 강의실을 활용한다. 동영상 시청 장비도 없다. 그러나 학습 열기는 어느 강의실 못지 않게 뜨겁다. 신입생들의 목소리를 한번 들어보자.
팡차오(方超)는 다부지게 말한다. “앞으로 다시는 취직을 위한 공부는 하지 않을 것이다.” 후징(胡?)은 “내 자신의 적성에 맞는 공부를 해야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고 제법 철든 소리를 한다. 이들의 말에서 어렵고도 힘든 인문학을 잘 극복해 내리라는 미더움이 엿보인다.
이산학당은 한국, 일본 등 인접 국가들과 교류와 협력을 희망하고 있다. 이 기회에, 산동대학 유학고등연구원과 한국학 중앙연구원, 성균관대학교, 국립 고전번역원 등 두 문명국의 관련 교육기관들이 솔선하여, ‘동양 문명’의 진수를 세계에 전파하기 위해 교류와 협력의 폭을 넓히기를 기대한다. 척박한 토양에서 갓 출범한 이산학당이 깊이 뿌리 내리도록 힘찬 지지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