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이방인 눈에 비친 中 ‘황금연휴’
9월 30일부터 10월 7일까지 여드레 동안 길고도 지루하게 이어졌던 중추절·국경절 연휴도 마침내 끝이 났다. 한국 사람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낯선 도시에서의 명절은 더욱 적막하다. 로프를 타고 아파트 벽을 수리하는 젊은 농민공이 창 너머로 힐끗힐끗 쳐다본다. ‘창밖의 남자’나 창 안의 남자나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신세는 마찬가지다. 한 사람은 책상에 앉아 있고, 한 사람은 로프에 몸을 맡긴 채 허공을 맴돌고 있다. 나지막이 감정을 넣어 ‘꿈에 본 내 고향’을 불러본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저~하~늘 저 산~아래 아득한 천~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몸,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이번 황금연휴에는 7 억 명 가량이 움직인 것으로 추산한다. 대부분 학생들은 고향 집으로 돌아갔지만 일부 학생들은 집에 가지 않고 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섬서성 한중(?中)에서 온 류양(劉楊)은 공부도 별로 하는 것 같지 않은데 수시로 도서관을 들락거렸다. 아마 집에 가는 고속버스 차비가 없어서 못가는 것 같다고 그의 친구가 들려준다.
남단의 하이난다오가 고향인 거무튀튀하고 왜소한 여학생 천샤오슈(陳芍秀)나 네이멍구에서 온 양솨이(楊帥)도 비좁은 기숙사에서 빈둥거린다. 오고 가는 여비와 시간이 만만치 않게 소요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제 나름대로 무료함을 달래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러나 주머니가 가난한 학생들이 시간을 때울 거리는 별로 없다. 불쑥 기숙사를 둘러보니 몇몇은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자고 있다. 그 동안 못 잔 잠이나 실컷 자려는 것 같다.
기숙사를 나와 풀밭 사이를 거닐었다. 풀숲에서 기어 나온 커다란 지렁이 한 마리가 햇볕에 핏자국을 드러내며 비틀거리고 있다. 발로 살그머니 밀어 풀 속으로 집어넣어 주었더니 어느 새 땅을 파고 기어들어가 버렸다. 보도블록 위를 바삐 움직이는 커다란 거미 한 마리가 눈에 띠었다. 개구쟁이 끼가 발동하여 작은 막대기로 살살 건드려 보았다. 몸을 공처럼 둥그렇게 움추리고 천연덕스럽게 한동안 죽은 척하고 있다.
무료함을 달래려고 장바구니를 들고 뚜차오(杜橋) 재래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재래시장은 늘 활기가 넘친다. 키가 1미터도 채 안돼 보이는 뚱뚱한 아주머니가 좌판을 벌여 놓고 뒤뚱거리며 서서 고무줄이며, 신발창 등을 팔고 있다. 인생을 달관한 듯한 사람처럼 얼굴 모습이 온화하다. ‘한강 철교 위를 배회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의욕으로 충만한 시장바닥을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무료함을 달래기도 지쳤다. 마침내 험하기로 유명한 화산(華山)에 오르기로 작정하였다. 화산은 태산, 숭산, 항산, 형산 등과 더불어 5악 중의 하나이다. 화산은 밤에 오르는 것이 낫다는 말을 듣고 혼자서 야간 산행 길에 올랐다. 매표소에 7시경 도착하였다. 요금은 180위안(3만2천원), 적지 않은 돈이다. 그러나 진입로에서부터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세 살짜리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 뚱보 청년, 양장을 잘 차려입은 중년 여인, 비대한 체구의 아주머니에 이르기까지 온갖 사람들이 다 몰려들었다.
가파른 돌계단이 가고 가도 끝이 없다. 허리를 들라치면 몸이 천 길 낭떠러지로 곤두박질 칠 것 같다. 애 엄마의 악다구니가 밤의 정적을 깨뜨린다. 우는 아이의 뺨을 손바닥으로 “찰싹” 때리며 정상까지 어린아이를 ‘견인하는’ 매몰찬 엄마가 뭇 등산객의 시선을 끈다.
4시간 가량 걸려, 마침내 해발 2000미터가 넘는 산 정상에 올랐다. 북쪽 봉우리 정상에 다다르니 조그마한 매점 앞이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돈 냄새에 천재적 감각을 가진 상인들이 침낭과 외투를 갖다 놓고 대여해 주고 있었다. 어렵사리 국방색 두툼한 외투를 45위안에 빌려 입고 바위에 기대 누우니 서울역 노숙자 신세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케이블카는 아침 7시에 움직인다. 정상 부근에 달랑 하나 있는 화장실 앞에는 부글거리는 배를 움켜잡고 있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화장실에 가기 싫어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밤을 지새웠다. 그 고생을 하고 집에 왔는데 며칠도 안 돼 갑자기 또 화산이 가고 싶어진다. “아! 마력을 지닌 바위 산, 화산!”
중국 정부가 연휴 동안 고속도로, 국도 등 요금소를 통과하는 모든 자가용 차량에 한해 무료 통행이라는 통 큰 결단을 내렸다. 10월 8일 CCTV 8시 종합뉴스, 뚱팡스쿵(東方時空)의 보도에 의하면, 여드레 동안의 통행료 총액이 무려 100억 위안(1조 7600억) 가까이 된다고 한다. ‘양잿물도 공짜로 주면 마신다’는데, 너 나 할 것 없이 차를 끌고 고속도로로, 국도로 향한다. TV 뉴스 시간에는 도로 교통 정보를 제공하느라 분주하다. 어떤 아저씨는 “1800위안(32만원)이나 절약했다”며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차라리 돈을 내는 것이 낫다. 차가 너무 막혀서 미칠 지경이다”라며 기자 앞에서 볼멘소리를 하는 ‘부자 청년’도 있다.
공짜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닌 듯하다. 공짜 나들이 탓에 차가 밀려 고속도로가 몸살을 앓는다. 한 마디로 거대한 주차장, 야영장과 흡사하다. 삽시간에 쓰레기·오물 천국이 되었다. 화면에 비친 천안문 광장, 만리장성은 그야말로 쓰레기 밭이다. 천안문 광장에 9톤의 쓰레기가, 하이난다오 백사장에는 50톤의 쓰레기가 버려졌다고 방송국 앵커가 통탄한다.
만리장성에서 쓰레기와의 전쟁을 치르는, 미화원 아저씨의 말이 애처롭게 들린다.
“쓰레기를 줍기 위해 하루 8000번 가까이 허리를 굽혀야 합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마세요.”
중앙TV 기자가 연휴 내내 나들이객을 향해 동일한 질문을 던졌다. “지금, 행복하십니까?”라고 묻자 반응이 가지각색이다. 한 청년은 “여자 친구와 막 헤어져서 불행하다”고 하였다. 어느 젊은 가정주부는 “팡누(房奴), 처누(車奴), 하이즈누(孩子奴)에 시달리는데 행복할 겨를이 있겠는가”라고 반문하였다. 우리의 하우스 푸어, 렌트 푸어처럼, 집과 차를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육아에 시달리는 현실을 ‘삼누(三奴)’로 꼬집어 표현하였다.
공원에서 커다란 붓을 들고 물통에 물을 적셔가며 보도블록 위에다 열심히 한자를 써 대는 83세 노인의 대답이 인상적이다.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행복은 별 것 아닙니다. 행복을 멀리서 찾으면 결코 다가오지 않아요. 현재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라며 ‘지족상락(知足常樂)’이라는 말을 힘주어 강조했다.
우리는 과연 행복한가. 돈, 권력, 명예를 향한 본능이 마음 깊은 곳에서 또 다시 꿈틀거린다. 돈, 권력, 명예로부터 진정으로 초연해질 날이 그 언제일까.
중국의 중추절 에세이 잘 읽었습니다. 도로통행료를 깍아줬다니 중국 정부가 대단한 결정을 내렸네요. 그런데 그게 또 독이 되다니. 정책 결정의 어려움을 보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