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영혼 없는 스님, 영혼 없는 공무원
중국에 드리워진 대한민국의 어두운 그림자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간에 빈대, 파리 새끼 하나 찾아볼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 스님들이 돈 맛, 술 맛 담배 맛에 취해 요즘 ‘속인’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동방시공(?方?空)’이라는 저녁 뉴스 프로그램에 우리나라 ‘저질 스님’들이 도박판을 벌인 모습이 중국 시민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더 이상 중국산 저질 먹을거리를 화제 삼아 웃고 즐기며 비방할 처지가 못 된다. 오래 전, 스님들이 ‘밥그릇’을 놓고 고무호스와 각목을 들고 난투극을 벌이던 기억이 새롭다. 엊그제, 새벽 염불을 드려야 할 스님들이 ‘하우스’에서 13시간이나 억대 포커 도박판을 벌였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흰 실에 검은 물이 들면 다시는 희어질 수 없다(墨悲絲染)’고 묵자는 탄식하였다. 아! 온통 거꾸로 가는 세상이다.
‘빈도소승(貧道小僧)’이라는 말이 있다. 도와 덕을 갖춘 스님들이 자신을 낮추어 표현하는 말이다. ‘견아형자 득해탈(見我形者 得解脫)’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할망정 시정잡배(市井雜輩) 보다도 못한 짓을 해서야 되겠는가. 술과 매캐한 담배 연기 속에서 충혈된 눈으로 ‘그림공부’ 에 몰입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그 중에는 신분이 꽤 높은 지도층 스님도 있다고 한다.
사이비 스님들이 ‘법계(法界)’에 똬리를 틀고 앉아서 ‘고스톱 판’을 벌인다면 심신이 지친 갈급한 서민들은 갈 곳이 없다. 누구를 믿고 누구를 따르겠는가. “당신들이나 잘해!” 탄식하며, 정화수 떠다 놓고 새벽마다 혼자 빌 수밖에 없다.
우울한 소식은 이 뿐만이 아니다. 명동 일대 화장품 판매장이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채운다. 잠시 후 바가지를 쓴 중국 여행자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그리고 여자 앵커가 ‘한국 화장품을 살 때는 바가지를 씌우기 때문에 조심하라’고 일러준다. 중국 여성들에게 한국 화장품은 최고의 선물이다. 누구나 한국 화장품을 구하지 못해 안달을 한다. 한국의 악덕 상인들이 ‘대장금’ 이영애의 뽀얀 피부를 보고, 자나 깨나 한국 화장품을 바르고 싶어 하는 중국 여인들의 가슴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어두운 보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최시중 씨의 구속 보도에 이르면, 우리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어두운 그림자가 얼마나 짙게 드리워졌는지 실감하게 된다. 최시중 씨의 구속 소식이 중국 중앙방송에도 여과 없이 보도됐다. ‘대통령의 정신적 스승(導師) 최시중, 뇌물 사건으로 구속 수감’이라는 선명한 글자와 더불어 화면에 비친 그의 추한 모습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최시중 씨가 언론인 출신이라는 것 밖에는 아는 것이 없다. 언론에서도 ‘대통령의 멘토’로 소개하여 그저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어둠의 실력자’였던 것이다. 정론직필의 정신과 기개로 거악(巨惡)과 맞서 싸워야 할 인물이 거악의 상징이 돼버리고 말았다. 나라에 큰 스승이 사라진 오늘, 다시 도산 선생과 만해 선생에게 가르침을 청해야 할 것 같다.
지난 정부 시절 국정홍보처 직원들은 질타를 당했을?때 대통령 중심제에서 국정홍보는 불가피하다며 스스로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라고 자조 섞인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 때부터 이 용어는 한 시절을 풍미하였다. 요즘 다시 ‘영혼이 없는 공무원’ 얘기가 화두로 떠오른다. 그저 상사가 시키는 대로만 하고 봉급만 받아 챙기는 ‘영혼 없는 공무원’들로 가득찰 때 우리나라는 ‘영혼 없는 대한민국’이 되고 말 것이다.
고결하게 영혼을 지키며 사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어려운가 보다. 악과 타협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가려는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사회에서 누가 고집스럽게 정도를 가려고 하겠는가. 정치판에 발을 들여 놓고 나서부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대쪽 이회창’ 씨가, “평생 학처럼 고고(孤高)하게 살고 싶었는데···” 탄식하며 뱉은 말이 여운으로 남는다.
다행히 신선한 소식도 들린다. 여성가족부 3급 부이사관 직에 있던 공무원, 김은정(48)씨가 정든 ‘철밥통’을 걷어찼다. 제 목을 제가 친 것이다. 그리고 겨우 4년이 보장되는 4급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본인의 자유의지로 ‘강등’과 고난의 길을 택한 것이다. 그는 이제 안일한 공무원 신분을 접고 꿈에 그리던 자유를 찾아 나섰다. 이 여성이 이전투구(泥田鬪狗) 현장에 매몰돼, 자신의 영혼을 지키지 못하고 시키는 일에 충실한 ‘영혼 없는 보좌관’으로 마감하지 않기를 희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