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이야기] 한중수교 20돌과 노파(老婆)의 유래
우리나라에서 자기 아내를 남에게 말할 때는 안 사람, 안 식구, 아내, 집 사람, 아내, 그리고 처(妻)라고 한다. 약간 비하하는 표현으로는 마누라, 여편네 등이 있다. 바가지를 긁을 때는 특히 경멸조로 “이 망할 놈의 여편네”라고 쏘아붙이기도 한다. 거기에 ‘년’자 대신 ‘놈’자는 왜 들어가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한 마누라와 오래 살다보면 가끔 싫증이 나기도 하는가 보다. 퇴직 후 아내 뒤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잔소리하는 남편이 미워서 아내가 ‘가출’을 한다는 우스운 얘기도 들린다.
중국에서 남의 아내를 부를 때는 존칭의 의미로 ‘부인(夫人)’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자기 아내를 지칭하는 용어는 다양하다. 치즈(妻子), 타이타이(太太), 씨푸얼(???), 라오포(老婆) 등이다. 이 중에서 중국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라오포, 즉 노파라는 단어를 주목해보자. 국어사전에는 노파란 ‘늙은 여자’로 간단히 표기돼 있다. 필요 이상으로 남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을 ‘노파심(老婆心)’이라고 한다. ‘심술궂은 노파’ 등의 표현에서 보듯이 이 말에는 다소간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처음 중국 생활을 시작했을 때 이 용어에 적응하느라 매우 혼란스러웠다. 스물 두 세살 정도 밖에 안돼 보이는 젊은 녀석이 “라오포!” “우리 라오포!”하면서 자기 부인 얘기를 늘어놓을 때는 듣기가 참 거북하였다.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왠 젊은 놈이 ‘노파! 노파!’ 하는 거야.” 시건방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한국도 중년의 여인네들이 이따금 남편에게 ‘영감!’이라고 호칭한다. 원래 노파는 나이 든 여자를 가리키는 표현이었으며, 아내란 의미는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그러면 언제부터 노파가 아내란 표현으로 변했을까?
정확한 출처는 확인할 길이 없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노파란 말은 당나라 때 처음 등장하였다고 한다. 당나라 때 과거 공부를 하던 서생 맥애신(麥愛新)은 과거에 합격하고 나서 그 아내를 보니 늙고 몰골이 초라하였다. 그래서 아내를 버리고 젊은 여자를 구하려는 욕심이 생겼다. 이리하여 침대 맡에 아내에게 보이고자 몰래 글귀를 적어 놓았다. “꽃이 시들고 잎은 떨어져 늙은 연 뿌리(藕根)만 남았네.”
그 처 역시 문자를 아는지라 남편의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도 침대 곁에 슬쩍 한 구절을 적어 놓았다. “벼가 누렇게 익어 비벼서 불어보니 그 속에서 새 알갱이가 나왔네.”
이 글을 보고 아내의 재기에 감탄하였으며, 옛 애정이 새롭게 솟아났다. 아내는 자신을 ‘늙은 연근’에 비유하자 잘 여문 ‘새 곡식 알갱이’로 응수한 것이다. 그는 크게 뉘우치고 처음 적은 글귀에 이어서 몇 글자를 다시 써 놓았다. ‘일편단심! 할매, 사랑해요(老婆一片婆心).’ 이 고사에서 유래하여 자신의 아내를 노파로 지칭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 호칭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노파라는 단어에는 ‘백년해로’라는 말이 내포되어 있다.
같은 한자문화권인데도 동일한 글자를 놓고 이처럼 의미하는 바가 사뭇 다르다. 중국인들과 섞여 살다보면 사소한 문제로 자칫하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많다. 사고방식, 행동 양식, 표현 방식들이 다르므로 인내를 가지고 서로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마음을 길러야 할 것이다.
서로를 너무나 잘 이해하는 친구로는 관중(管仲)과 포숙아(?叔牙)만한 이가 없다. 관중과 포숙아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다. 처음에 둘이서 장사를 하여 이익을 나누었는데 관중이 언제나 많은 몫을 차지했다. 그러나 포숙아는 그를 탐욕스럽다고 여기지 않았다. 관중 집안이 어려운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관중이 포숙아를 위해서 일을 할 때에 여러 번 실패를 거듭했지만 포숙아는 그를 어리석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에게 시운(時運)이 따르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관중이 세 번 벼슬하여 세 번 모두 임금에게 쫓겨났지만 포숙아는 그를 무능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관중이 전쟁터에 나아가 세 번 모두 도망쳐 왔을 때에도 포숙아는 그를 겁쟁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관중에게 노모가 계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후에 관중은 그를 알아준 포숙아를 두고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다(生我者父母, 知我者?叔牙).”
한-중간에 크고 작은 이해관계가 많이 얽혀 있다. 금년은 한-중 수교 20년이 되는 뜻 깊은 해다. 이를 계기로 양국이 관중과 포숙아처럼 절친한 이웃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