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책벌레, 증국번(曾國藩)

“정치를 배우려거든 ‘증국번’에게서 배워라.”

2003년 1만8000곳 가까이 존재하던 한국의 빵집이 지금은 4000여 곳이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빵집 자영업은 거의 ‘학살’ 수준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마침 집앞 크라운제과를 지날 때 ‘급매’라고 조그맣게 매직펜으로 쓴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잔뜩 만들어 놓은 빵이 팔리지 않아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빵집 아저씨 심정을 누가 알랴.

기다란 흰 모자를 눌러 쓰고 얼굴에 밀가루를 잔뜩 묻힌 채 17년 동안 빵을 구워왔다는 ‘기능장’ 출신 빵집 아저씨의 애잔한 목소리가 방송을 타고 흘러나온다. “대기업이 이곳에 들어오면 우리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어요. 그들과 경쟁해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어요. 제 주위에 가게 운영이 안 돼 그만 두고 막노동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여론의 눈총이 따가웠든지 모 대기업이 제빵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발표하였다. 사라진 것은 빵집 뿐만이 아니다. 동네 낚시가게도 없어졌다. 지렁이 한 통 사려면 버스터미널까지 차로 30분을 역행군해야 한다. ‘만사무심일조간(萬事無心一釣竿)’,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를 즐기기도 쉽지 않다.

서점도 사라졌다. 서점은 고사하고 만화가게, 도서대여점조차도 눈에 띠지 않는다. 인문학 책 몇 권을 사려면 집을 나와 고속버스를 타고 강남의 대형서점까지 60km를 가야한다. 예전에는 도수 높은 안경을 쓴 학생들이 만화나 책을 읽으면서 걸어가는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잊혀진 가수, 최희준의 노래 제목처럼 ‘옛이야기’가 돼 버리고 말았다.

길거리에서나 버스에서나 지하철에서 모두 ‘엄지족’들이 말없이 스마트폰과 대화하고 있다. 활자가 점점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공휴일에 방바닥에서 뒹굴며 리모콘을 만지작거릴망정 책을 들기가 쉽지 않다. 더우면 덥다고, 바쁘면 바쁘다고, 추우면 춥다고, 이런저런 핑계로 책은 점점 내팽개쳐지고 있다.

출판인 고정일의 칼럼, ‘한국인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조선의 유명한 책벌레, 이덕무(李德懋, 1741~1793)가 등장한다.
“실학자 이덕무는 추운 겨울 초가 단칸방에서 <논어>를 병풍처럼 늘어세워 외풍을 막았고, <한서>를 물고기 비늘처럼 잇대어 이불 삼아 덮고서야 얼어죽기를 면했다. 그가 21세 때였다. 사람들이 이들을 가리켜 ‘책 읽기에 미친 바보(간서치·看書痴)’라 했다.”? 책벌레는 엄동설한에도 얼어죽지 않는가 보다.

?‘일본의 심장’을 저격하여 중국 대륙을 뒤흔들었던 ‘광야의 혁명가’ 안중근은 만 30세를 살다 갔다. 안 의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국인들의 뇌리에 ‘한국의 민족영웅’으로 각인돼 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힌다(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그가 옥중에서 생을 마감하면서 쓴 유묵(遺墨)이다. 대한의 우중(愚衆)에게 책을 가까이 할 것을 권면한 글이다.

정도전, 이덕무, 박지원, 신채호, 안중근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선비들은 한결같이 책벌레들이었다. <한국선비지성사>를 펴낸 역사학자 한영우는 우리 민족의 저변에 면면히 흐르는 가장 특징적 문화로 선비문화를 꼽았다. 선비문화란 다름 아닌 책의 문화요, 독서의 문화이다.

문호 루쉰(1881~1936)은 1902년 광로학당(?路學堂)을 수석 졸업하여 받은 메달을 팔아서 평소 읽고 싶은 책을 사보았다. 이덕무와 마찬가지로 스물한 살 때의 일이다. 일본지폐 10000엔권 전면에 새겨져있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35~1901). 정한론자(征韓論者)로 알려진 그는 목숨같이 여겨 차고 다니던 칼을 팔고 붓과 책을 택했다.

동서고금의 위인 치고 책을 멀리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양무(洋務)운동의 주창자이며, 태평천국운동을 진압한 상군(湘軍)의 지도자 증국번(曾國藩)(1811~1872)도 예외는 아니었다. 증국번은 호남성 상향(湘鄕) 사람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자성(子城)이었다.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들어서면서 나라의 울타리가 되겠다는 뜻에서 스스로 이름을 ‘국번(國藩)’으로 바꾸었다. 당시 세인들 사이에 이런 말이 회자(膾炙)되었다.

“정치를 배우려거든 증국번에게서 배우고, 상도를 배우려거든 호설암(胡雪岩, 1823~1885)에게서 배워라.”
모택동은 같은 호남성 출신인 그를 구국의 지도자로 칭송하였고, 장개석 또한 유교로 무장한 탁월한 전략가로서 사표로 삼았다. 모택동과 장개석 두 라이벌이 모두 그를 흠모한 셈이다.

총샤오롱(叢小榕, 1954~현재)이 지은 <태평천국을 토벌했던 문신 증국번>이 양억관에 의해 번역·소개돼 그의 이름은 더욱 친숙해졌다. 이 책에 보이는 ‘책벌레’ 증국번의 일화는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는 북경에서 열린 회시(會試)에 두 번이나 낙방했다. 낙향하는 길에 동향 사람으로 강소성의 지사인 역작매(易作梅)라는 친구를 찾아갔다. 여비를 빌리기 위해서였다. 여비를 구해 남하하는 중 금릉(金陵, 지금의 남경)에 이르렀다. 금릉의 거리를 구경하던 차에 중심가에 커다란 서점을 발견하였다. 서점에 들어 선 증국번은 <이십삼사(二十三史)>를 발견하고 그 책에 눈독을 들였다. 돈이 부족하자 한참 망설이던 끝에 어머니가 손수 지어주신 옷가지를 전당포에 잡혀 그 책을 사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말 등에 실은 책이 집으로 운반되었다. 짐 보따리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책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심정을 이해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정말 좋은 사서(史書)로구나. 돈과 옷이 아까우면 사온 책을 열심히 읽도록 하거라.” 이로부터 증국번은 1년 가까이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새벽부터 깊은 밤까지 책을 읽었다. 결국 숙원하던 과거에 합격하여 승진을 거듭하며 청조를 부흥시킨 최고의 공신이 되었다.>

갈대밭이 장관이었던 구리시의 명물, 장자못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저수지가 매몰되고 갈대밭이 사라지고 물고기도 사라졌다. 산책로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도 황폐해졌다. 숲이 사라지면 새가 깃들 곳이 없어진다. 서점이 사라진 동네에 ‘책벌레’도 사라졌다.

새로운 정치판 짜기에 분주한 지금, 인재가 없어서 난리다. 이름 하여 새누리당에서 ‘메이퀸’을 사칭하고 학력을 위조한 가짜가 자진 사퇴한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정치참새’들이 ‘홍곡(鴻鵠)’을 자처하며 이 나라를 뒤흔들어 놓을 것인가! 애통하고 애통할 뿐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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