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정도전’이 기틀 닦은 조선왕조, ‘맹자 정신’ 잃으며 멸망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맹자>를 읽어보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소설처럼 <맹자>를 읽으려고 손을 대지는 않는다.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질 않기 때문이다. 맹자(BC 372?~BC289?)는 전국(戰國)의 난맥상을 한 몸에 체현하면서 왕도(王道)의 통일을 이룩하려고 노력했다. 맹자가 말하는 “왕도의 통일”은 진시황의 동정(東征)과 같은 무력통일이 아니었다. 도덕에 의한 자발적 통일이었다.

인류역사에서 순결한 도덕주의, 진정한 인문주의는 모두 맹자에 근원하고 있다. 서양의 도덕은 결국 신화적 뿌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21세기 도덕의 회복을 외친다면 <맹자>를 읽어야 한다. 이는 일방적인 말씀의 모음집이 아니라 치열한 쌍방적 대화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맹자의 희망과 좌절, 기쁨과 눈물, 회한과 절규가 절절이 배어있다.

조선왕조는 <맹자>로 일어섰고 이로 인해 유지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려 말, 삼봉 정도전은 <맹자>를 읽음으로써 새로운 혁명왕조의 구상을 완성할 수 있었다. 조선왕조는 유별나게 <맹자>를 사랑했다.

맹자가 말하는 호연지기(浩然之氣), 대장부(大丈夫), 사단(四端), 인정(仁政), 학교(學校), 선생(先生), 인의(仁義), 혁명(革命) 등의 어휘들은 한국인의 일상적 가치의 밑바탕이 되어왔다. 맹자는 군주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백성이 왕에게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왕이 백성에게 예속된다고 확언했다.

백성의 갈망을 구현하지 못하는 왕은 하시라도 갈아치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맹자에는 민주의 제도는 없지만, 민주의 갈망은 요즈음 보다 더 치열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인의 대의를 존중하는 지사적 기질, 권력에 불복하는 혁명적 기질은 맹자에 뿌리박고 있다.

<맹자>의 ‘진심하’(盡心下)에 ‘인품 완성의 길’ 6단계가 있다. ‘덕화만발’의 ‘운문 방’에 여포 취람님이 올린 것이다. 이 길을 밟아 올라가면 우리도 비로소 인격완성을 이룩할 수 있지 않을까? 인품은 계급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 됨됨이의 서열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제 1단계, 선(善)이다.

착한 사람을 누가 싫어하겠는가? 악한 사람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선인(善人)이다. 무엇이 선한 것인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可欲之謂善), 인간 본성에 양심이 깔려져 있는 사람이다.

제 2단계, 신(信)이다.

믿음 있는 사람을 누가 멀리 하겠는가? 사기꾼이 가장 두려워하는 자가 곧 신인(信人)이다. 착하고 신용 있는 사람은 어디서나 환영을 받는다. 무엇이 신용 있는 것인가?(何謂善何謂信). 자신에게 덕이 있는 것이 바로 신용이다.(有諸己之謂信)

제 3단계는 미(美)다.

미(美)는 충실하게 채워져 있는 것이 아름다움이다(充實之謂美). 잘 익고 잘 여문 열매처럼 인간도 그처럼 철이 들어 여문 인품처럼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제 4단계는 대(大)다.

인품의 대(大)란 충만하게 채워져 빛나는 것을 크다고 하는 것이다.(充實而有光輝之大). 봄에 싹 틔우고, 여름에 무성하게 자라 꽃을 피우며,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맺은 나무모습은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인간 역시 그러하며 또 그렇게 살아 온 사람이 위대하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제 5단계, 성(聖)이다.

인품의 성(聖)이란 위대해서 감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大而化之謂聖). 성은 덕이 충실하고 아름답고 위대하여 후광을 발휘하는 것을 성스럽다고 한다. 태어나게 하고 소생(蘇生)하게 하는 것이 곧 성이다.

제 6단계 신(神)이다.

인품의 신(神)이란 성스러우면서도 알 수 없는 것이다. (聖而不可知之之謂神). 성인의 경지를 넘어선 신비스런 인간을 신선(神仙)이라고 한다. 성인(聖人)이 인품의 절정이라면, 신인은 인품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성인과 신인은 모두 평범한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사람이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형인 셈이다.

성인과 신인의 경지까지 오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덕인(德人)은 될 수 있지 않을까? <법구경>(法句經)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꽃향기는 바람을 거스르지 못한다. 그러나 덕이 있는 사람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사방에 풍긴다.”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덕인이란 결백하면서도 남을 받아들이는 아량이 있다. 또 너그럽지만 분명한 결단력이 있으며, 총명하지만 남의 허물을 캐내지 않는다. 덕인은 강직하지만 남의 잘못을 바로 잡는데 너무 지나치게 간섭하여 상대의 반감을 사지 않는다.

아마 이런 정도의 인품을 가진 사람이라면 능히 덕인이라 칭송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뒤집어보면 청렴하면 포용력을 갖추기 어렵고, 어질면 시비를 잘 따지지 못한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불법(佛法)에서의 ‘보살의 덕’은 세속적인 것을 포괄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초월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덕인은 마치 허공이 온갖 것을 받아들이지만 그것에 집착함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온갖 중생을 이롭게 하면서도 집착하거나 보은을 바라는 마음이 없습니다. 조금 밑지며 삽니다. 무조건 베풀고 삽니다. 또한 세상을 위하여 맨발로 뛰고 헌신을 합니다. 그래서 덕인은 그 향기가 천지에 가득할 것이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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