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한국사 ⑧] 터키 알파고 기자가 ‘광해’에 빠진 이유
<동북아역사재단-아시아엔(The AsiaN) 공동기획>
로마제국이나 서구열강의 신대륙 발견은 전 세계적으로 누구나 아는 역사적인 사건들이다. 지금은 작은 나라이고,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는 나라이지만, 몽골의 칭기스칸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의 헝가리의 조상인, 흉노족으로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이주해 간 아틸라와 그의 서로마제국을 멸망시킨 역사적 사실을 그 지역과 아무 관계없는 동남아 사람들도 알고 있다. 역사적인 인물이나 국가가 세계사에 영향을 미친 일을 했다면, 이는 오늘날까지도 글로벌한 주제로 관심을 이끌 것이다.
역사적인 사건이 글로벌하면 그럴수록 재미있는 영화나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고 있다. 예를 들면, 제73회 오스카영화제에서 5개 부문을 수상한 <글래디에이터> 역시 이러한 줄거리를 담고 있는 전형적인 스토리텔링 소재인 것이다. 한편의 드라마틱한 소재는 훌륭한 영화로 거듭나는 것이다. 러시아, 중국, 일본 그리고 몽골이 합작해 만든 <몽골> 역시 그와 같은 과정을 거쳐 제작되고, 수많은 상을 받았다.
그러나 재미있는 역사는 오직 로마제국이나, 칭기스칸의 역사에만 있는가? 물론 아니다. 대부분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에 그들 나름대로는 재미와 의미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비록 승자의 기록은 아니더라도 한 지역이나 국가를 넘어 초국가적인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역사영화는 누구에게나 흥밋거리가 된다.
한국사는 동북아 지역의 중국, 일본, 몽골 등과 연관되는 사건들로 채워져 있다. 터키 출신 기자의 눈으로 봐도 한국사는 한마디로 드라마 그 자체다. 비록 로마제국이나, 대영제국 같은 규모의 글로벌한 범위는 아닐지라도 어느 국가 못지 않은 다양하고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는 바로 영화나 예술작품의 좋은 소재가 될만한 가치가 충분하며 실제로 1990년대 이후 수준 높은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다.
한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방인의 시각으로 보면 한국역사는 흥미롭고 국제적으로 관심을 끌 수 있는 요소들이 숱하게 많다. 10년 전 한국에 대학생으로 유학 와 특파원 생활을 하는 동안, 그리고 한국인 여성을 아내로 맞아 살면서 누구 못지 않은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보았다. 기억에 남는 것만 해도 이렇다. <역린>, <정도전>, <왕의 남자>, <대장금>, <용의 눈물>, <광해>, <기황후>, <황산벌>, <최종병기 활>, <이재수의 난>, <취화선>, <성웅 이순신>, <불멸의 이순신> 등 어느 하나 내게 스펙터클한 감동이나 통찰력 혹은 재미를 주지 않은 것은 없던 것 같다.
그러나 그때마다 필자에게 스치는 생각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어떤 역사물을 보더라도 역사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럴수록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역사는 말 그대로 팩션의 보물창고라고 나는 본다. 좋은 소재가 많은 만큼 주제를 잘 잡으면 흔한 말로 ‘대박’을 터뜨릴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역사적 사실을 ‘픽션화’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소재도 재미요소가 없으면 관심을 끌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이순신 장군의 경우, 극적인 생애로 인해 최소한 10편 이상의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됐지만, 신사임당의 경우 훌륭하고 모범적인 삶에도 불구하고 ‘극적인 요소’가 부족하여 5만원권 화폐의 모델로 등장할 뿐이다.
역사적인 인물이나 장소 즉, 역사 왜곡을 최소화하면서 시나리오를 쓴다면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작품이 될 것이다. 이러한 소재들이 영화나 문학작품으로 승화하여 한국을 세계에 널리 알리며 한국의 국격을 높이게 될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제 대한민국의 ‘팩션’을 바탕으로 한 문화융성이 ‘창조경제’로 이어진다면 외국기자인 내게도 좋은 기사 거리가 될 것이다.
필자는 <광해>라는 영화를 보면서 이같은 내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됐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어를 잘 한다고 해도, 옛날 말은 알아듣기 힘들어 한국의 역사영화를 피해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 등장한 배우 이병헌의 모습을 보고 내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 영화에서 왕의 신변안전을 위해 국왕과 외모가 비슷한 사람을 등장시키는 장면에서 필자는 “아, 이것이 영화의 상상력이고 창의성이군!” 하고 탄성을 질렀다. 바로 그 점에서 광해의 시나리오 작가를 마음 깊이 존경하게 됐고 한국영화, 특히 사극에 대해 집중하게 됐다. 이는 곧이어 광해시대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고, 조선의 왕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다. 영화 광해는 외국인으로서는 솔직히 처음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픽션과 팩션의 경계선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한국 역사물을 영영 가까이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