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화폐 탐구] 태국 지폐 ‘바흐트’에 실린 국왕들의 ‘찬란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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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알파고 시나씨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 저자, <하베르 코레> 발행인, <아시아엔> 객원기자] 관광대국인 데다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방문해서인지 웬만한 은행의 광고에 미국의 달러 및 유로와 함께 태국 화폐도 자주 보인다. 입헌군주제 국가인 태국은 역시 화폐 앞면에 현직 국왕의 초상화를 싣고 있다. 1946년부터 70년 넘게 태국의 왕위에 앉아 있는 라마 9세, 즉 푸미폰 아둔야뎃 왕에 대해서는 이야기거리가 많다.

태국 정부는 화폐 디자인을 바꾸고 2010년부터 신권을 발행했다. 신권과 구권 사이엔 2가지 차이가 있다. 하나는 푸미폰 국왕의 초상화가 달라지고, 젊은 시절 얼굴 대신 현재의 모습으로 변경되었다. 둘째는 화폐 뒤에 보이는 역대 왕들이 달라졌다. 예전 화폐에는 태국 왕국의 왕가인 짜끄리왕조의 역대 왕이 있었으나 현재 유통되는 화폐에는 역대 태국 왕국의 전직 국왕들의 초상이 있다. 신권에 실린 국왕들의 정치가 얼마나 잘 됐는지는 그들의 생애를 공부하기만 해도 태국 역사의 핵심적인 흐름을 따라잡을 수 있다.

20바흐트부터 살펴보자. 이 화폐의 뒷면에 람캄행 대왕의 사진이 있다. 람캄행 대왕은 수코타이왕국의 제3대 왕이다. 수코타이왕국은 타이족이 최초로 수립한 독립국가다. 타이민족은 본래 캄보디아와 중국 남부 사이에 살았다. 이들은 중국에서 남쪽 즉 현재 태국 북부로 이주했다. 13세기까지 타이 사람들은 강한 부족 중심으로 캄보디아의 크메르제국의 속국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 들 속국 중 프라루앙 부족이 크메르제국에서 1238년 독립하고, 수코타이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수코타이왕국을 세웠다. 태국의 역사는 이 왕국에서 시작한다.

독자들은 타이족 첫 독립국가인 수코타이왕국의 초대 국왕 대신 제3대 람캄행 왕이 화폐에 등장하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람캄행 국왕은 한국으로 비교하면, 세종대왕 같은 분이다. 타이 문자 개발과 독특한 타이 문화의 수립에 핵심 역할을 했다. 외교적으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해 영토를 확장시켰다. 현재 태국문학에서 거의 신격화된 람캄행 대왕은 불교를 태국 국교로 삼았다.

크메르제국이 약화되면서 14세기 초기 여타 타이 도시국가들이 잇따라 독립했다. 독립 왕국 중 제일 눈에 띄는 나라는 우통왕조에 의해 1352년 아유타야 도시에 건립된 아유타야왕국이다. 아유타야왕국은 시간이 흐르면서 수코타이왕국을 비롯해 기타 타이족의 도시국가들을 흡수해 타이족을 통일시켰다. 한때 잘 나간 아유타야왕국은 1564년 미얀마 침공으로 속국으로 전락했다.

타이족을 미얀마의 지배에서 해방시킨 영웅은 50바흐트 뒤에 초상이 있는 나레수안 대왕이다. 나레수안 대왕의 어머니는 원래 아유타야 왕의 딸이었으며, 아버지는 수코타이왕국 시대의 귀족 가문 출신이다. 아유타야왕국은 미얀마 지배에 편입되기 전 내부적으로 쿠데타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레수안 대왕의 아버지는 쿠데타 당시 왕의 편을 들어, 쿠데타 세력과 결혼관계를 맺었다. 이 결혼으로 태어난 나레수안은 자신의 가족과 어머니를 통해 아유타야왕국의 힘을 모아 미얀마와 한판 전쟁을 벌였다. 1584년 아유타야왕국을 미얀마로부터 해방시킨 나레수안은 아버지가 사망하자 아유타야왕국 국왕으로 즉위했다. 나레수안은 전쟁과 전투의 달인으로 그의 집권 시기 아유타야왕국은 영토를 대폭 확장했다. 말레이 반도와 캄보디아 정복이 좋은 예다. 나레수안 대왕은 타이민족의 역대 국왕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왕으로 꼽힌다.

하지만 미얀마는 태국 영토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1767년 미얀마는 다시 한번 태국을 점령했다. 아유타야왕국은 제대로 힘 한번 못 쓰고 무릎을 꿇고 말았다. 민족이 분단되고 강력한 지도력을 잃은 타이는 미얀마의 점령이 오래도록 계속될 것으로 비관했다. 하지만 이같은 침잠된 분위기 속에서 중국계 딱신 장군이 동쪽 지방에서 나와 타이족을 합병시키고, 미얀마를 타이 영토에서 몰아냈다. 100바흐트 뒷면에 실린 초상화의 주인공이 바로 그분이다.

아유타야왕국의 수도인 아유타야는 미얀마의 공격으로 거의 도시차제가 궤멸됐었다. 수도를 현재의 방콕에 가까운 톤부리로 옮긴 딱신은 톤부리왕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톤부리왕국의 초대 국왕이 된 것이다. 나레수안 대왕처럼 타이족을 미얀마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킨 딱신은 이전의 국왕들처럼 태국의 영토를 확장하려고 노력했다. 라오스는 그 시절 타이의 지배를 받았다.

딱신은 태국 역사에서 존경받고 자랑스런 존재이긴 했으나 결말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딱신은 가장 친한 친구이자 톤부리왕국의 강력한 장군인 챠오피아 짜끄리에게 살해당했다. 500바흐트 뒤에 초상이 올라있는 챠오피아 짜끄리 즉, 라마 1세다. 그는 국왕의 지시에 따라 캄보디아를 원정하기 위해 수도를 떠나 있었다. 그런데 당시 국왕 딱신은 정신착란에 빠지고 내정의 혼란은 극에 달하였다. 이에 챠오피아 짜끄리 장군은 수도로 돌아와서 딱신 대왕을 처형했다.

수도를 톤부리에서 현재 수도 방콕의 인근 라따나코신으로 이전한 챠오피아 짜끄리는 라따나코신왕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라마1세로 등극했다. 라따나코신왕국을 통해 짜르키 왕가는 1782년부터 현재까지 통일된 태국을 통치해 왔다. 오늘 태국에 가면 수도 방콕의 으뜸 왓 프라 깨우를 비롯한 많은 관광지는 라마 1세의 지시로 지어진 건축물들이다.

13세기를 담은 20바흐트에서 시작한 태국의 화폐역사는 1000바흐트를 통해 20세기에 일단 마무리된다. 1000바하트 뒷면에 보이는 사람은 현재 국왕의 할아버지인 쭐랄롱꼰 즉 라마 5세다. 라마 5세는 쉽게 비교하자면, 일본의 메이지와 비슷한 역할을 했던 지도자다. 태국을 현대화시키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계급제도를 상당 부분 폐지하고, 공공교육을 의무화했다. 그는 또 강대국과의 균형외교를 통해 태국을 외세 침략으로부터 보호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는 라오스와 미얀마 지역의 일부 영토를 잃었지만 자기네 나라가 서양의 식민지로 떨어지는 것을 막았다. 라마 5세는 태국 역대 국왕 중 가장 존경받은 3명 가운데 한 분으로 알려져 있다.

태국화폐로 통용되는 바흐트는 무슨 뜻인가? 바흐트는 실은 영국의 파운드처럼 화폐단위가 아니고, 질량단위이다. 약 15~16g을 나타내는 바흐트는 역사적으로 동전을 의미하다가 화폐단위로 변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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