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쿠르드분쟁지역 억류기⑦] 팬티차림 내게 ‘성적 수치심’ 주고 ‘조롱’

겁에 질린 저 어린이들이 기댈곳은 어디일까?

[아시아엔=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나에겐 늘 성욕, 아니 성적 수치스러움이 최우선이다. 하카리 현재 시각 2016년 2월16일 새벽 3시, 38시간째 굶는 중이다. 혹자는 인간의 욕망이 수면욕 또는 식욕이 가장 우선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성욕 아니, 성적인 수치스러움이 최우선이었다.

그날 나는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 처연한 심정에 잠은커녕 오래된 슬픈 팝송을 혼자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는 목소리로 웅얼거리고 있었다. 전날 몸수색을 당하며 신발을 벗고 진흙땅에 서있어야 했으며, 벨트가 풀리고 바지를 내려야만 했다. 팬티바람에 조롱섞인 그들의 웃음을 맨몸으로 받아야 했다. 소변이라도 보려면 세명의 대원이 지키는 가운데 화장실을 이용해야만 했다.

혹여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문을 닫으려고 하면, 나를 감시하는 대원은 소리를 지르며 문을 열어두라고 했다. 또 어떤 대원은 문을 열어둔 채 소변을 보려면 고함을 지르며 문을 닫으라고 했다. 볼일이 끝나고 손을 닦고 그의 얼굴을 쳐다보면 “넌 소변 보는 걸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수치스럽지 않냐”는 듯 비웃음이 그득하였다.

시리아, 이란, 터키, 파키스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의 공중화장실을 가면 개방된 소변기가 있는 곳은 거의 없다. 무슬림 남성 스스로도 노출을 금기시하고, 남성의 반바지도 혐오대상이 된다. 일부러 찢은 패션 청바지 사이로 보이는 살갗도 지적하는 이들이 무슬림이다. 내가 만약 신실한 무슬림이었다면 오늘 자결을 했어야만 한다. 무슬림이 아닌 나 역시 이날 나는 여지껏 가장 많이 수치스러운 날이었다. 오늘 당한 성적 수치 기억은 훗날까지 계속되리라..

대원들은 나를 위해 구석에 있는 의자를 내주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어느 정도 내 인성을 파악했는지 농담도 던져주고, 그들이 마시는 차도 권유한다. 창가에 서서 잔설이 덮인 높다란 산을 바라보고 서있자 제지한다. 산에서 PKK가 나를 저격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 보태지며 나를 창가로부터 물러서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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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군경과 쿠르드 민병대 사이의 전투 중 희생된 여성.

그들은 “PKK는 늘상 터키군경의 유무선 통신기를 도청하므로 당신 신상은 이미 노출되어 있다”고 이유를 설명해준다. 근무교대를 위해 쉼 없이 교체되는 대원들은 나에 대해서 대충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틀 후 한 대원이 얘기해주는 즉슨 “당신이 검문소에서 테러대응팀에 잡히는 순간 모든 대원들이 무전을 통해 상황을 파악하게 됐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토록 멀리 떨어진 한국의 기자가 어떻게 전쟁터인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들도 어안이 벙벙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한국으로 치면 비무장지대에서 발견된 민간인”과 같다는 서울주재 터키 <지한통신사> 알파고 시나씨 기자의 비유가 들어맞을 듯하다. 필자는 여러 검문소를 우연히도 너무 쉽게 통과해 마지막 관문에서 잡힌 상황이기에, 테러대응팀 및 검문소 담당자의 근무태도를 상부에서 질책했을 수도 있다. 조금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그후 필자를 취조했던 상황 및 결과를 대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국가정보국 요원에게 심문받던 날 오후, 아르펜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모습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한국이 터키의 형제국이며 자신들에겐 우방이고, 한류의 나라, 그리고 이미지 좋은 대한민국 서울에서 온 저널리스트가 왜 자신들에게 총구를 겨누는 쿠르드족을 찾아 이곳에 왔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비슷한 질문을 연신 퍼부었다.

서방언론에 대해 터키와 쿠르드 모두 적개심 꽉차

그들의 언론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다. 터키쪽이나 쿠르드쪽이나 매한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터키동부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어느 터키 언론매체도 사실대로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튜브를 통해서 상황을 짐작 하는 것이 최선의 해답이라고 말했다. 곧 이곳도 언론인을 보는 족족 저격 살해하는 이스라엘처럼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왜냐하면 자국 언론은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를 위해 편향된 보도를 일삼기 때문에 쿠르드인은 물론 일부 지식인을 중심으로 불신의 분위기가 팽배되어 있다. 이들은 ‘전쟁패키지’를 통해 ‘놀러온’ 서방의 대형언론사는 터키정부의 가이드라인 아래 주구 노릇을 하고 있으니 그 적대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터키의 서구언론에 대한 인식은 자신의 국가 존재를 뒤흔들고, 과거 오토만제국이 서구열강에 의해 멸망한 것과 오버랩되는 듯했다.

쿠르드족 역시 터키에 의해 말살당하고 있는 지난 1백여년 동안 어느 외국언론도 이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데 대해 불만이 가득하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내가 잡혀있는 하카리 합동수사본부에서는 나에 대한 신병처리가 좀처럼 쉽지 않은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애물단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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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되어 직원들과 함께 아르펜도 출근했다. 심문이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44시간째 한숨도 못 자고 굶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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