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IS가담 김군추적 현지르포②] 김군 구출한 ‘아저씨’ 되고 싶었다

설립 1년을 맞은 IS에 대한 전세계의 이목이 따갑다. 특히 한국사회에는 김모군이 작년 말 스스로 IS에 가담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충격을 줬다. 작년 11월 김군과 비슷한 시점에 킬리스의 한 호텔에 들렀던 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가 지난 4월 김군 행적을 좇아 다시 현지를 찾아 1400km를 달리며 샅샅이 뒤졌다. 아쉽게도 김군 행적 추적에는 실패했다. 이 전문기자는 “김군아, 미안하다”라며 “꼭 너를 구하려는 내 맘은 결코 변하지 않을 거다”라고 했다.<아시아엔>은 IS가담 김모군을 찾아 시리아-터키 국경지대와 인근을 한달간 횡단한 이신석?전문기자의 현지르포를 두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아시아엔=터키-시리아 국경지대/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필자가 터키-시리아 국경지대에서 만난 시리아인 및 터키 쿠르드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시리아는 무슬림이 아니면 죽음을 당한다.”

현재 킬리스에서 통하는 시리아 북부도시 알레포는 시리아내 약 8개 그룹 중 4개 그룹이 도시를 차지하기 위하여 전투 중이다. 그들은 시리아정부군, IS, 알누즈라전선, 그리고 FSA(자유시리아군)로 크게 구분된다.

만약에 김군이 자유시리아군에 합류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각국이 원조하는 인텔리와 시민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결합됐다. 그들은 무슬림이 아니라고 해서 참수를 하지 않으며, 서방에 대해 우호적이라고 한다.

일반인의 왕래도 부분적으로 허락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시리아 내에서 각축을 벌이는 그룹 중에 세력이 제일 약해졌다고 전해진다.

이러저러한 생각에 골몰하다가 어느 새 국경에 다다랐다. 이전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일본인 고토 겐지씨 참수 이후 몰려든 일본취재진 때문에 경비는 삼엄해지고, 군 초소는 철문과 철책으로 더욱 견고해져 접근이 훨씬 어려워진 느낌이다.

난민수용소도 평지에 위치하여 그 안의 사정을 전혀 알 수 없고, 터키정부의 언론인 통제도 엄격해졌다. 필자는 그저 입구 촬영만 가능할 뿐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수고가 무색해졌구나’ 하는 실망감이 들었다. 하다 못해 언덕도 없어서 멀리서 촬영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터키 여성 기젬
터키 여성 기젬

페미니스트이자 터키에서는 진보여성이라 불릴만한 기젬(30)은 “터키정부는 원칙적으로 수용소에 대한 언론취재를 허락하지 않으며, 유엔난민기구 외엔 어떠한 NGO활동도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무슬림국가와 힌두국가가 NGO활동을 원칙적으로 허락하지 않는다는 원론적인 입장 그대로인 셈이다.

이유인 즉, 난민에 관한 어떤 사진이든 그 모습은 불행해 보이기에, 터키정부가 이들 난민을 홀대한다는 인식이 서방에 퍼져나가길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되돌아서 김군이 IS 안내인을 따라 월경했던 베시레 마을로 가려 하는데, 갑자기 터키 경찰이 나를 에워싸는 게 아닌가?

경찰은 내게 여권을 요구했다. 나는 여권을 소지하지 않고 있었다. 일부 싸구려 호텔은 투숙객의 여권을 맡기라고 한다. 필자는 호텔에서 여권을 돌려달라며 실랑이 벌이기 싫어서 그냥 두고 왔던 것이다.

10여명의 사복경찰이 날 둘러싸고 경찰차에 태워 경찰서로 연행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황금의 초생달 지역에서 마약 딜러 또는 용병으로 오인되어 잡혀가던 일과 KBS 취재진이 이곳 국경마을에서 같은 경찰서에 연행되어 조사받다 앙카라 소재 한국대사관에 연락을 취했던 사건이 떠올랐다.

파키스탄 카라치에서는 구름처럼 몰려든 수백명의 구경꾼 앞에서 연행된 적도 있는데 이 정도쯤이야 얼마든지 참아주겠다 싶었다.

소란을 피우고 한국의 아시아엔 본사의 이상기 발행인에게 연락하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명색이 분쟁지역만 전문으로 다니는 사람인데’ 하고 참았다.

경찰서 주차장에 도착한 뒤 필자는 불필요한 행동을 자제해야 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아직 나를 모르기에 위험한 인물로 간주하는 상황이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 가령 빠른 동작이나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 것조차도 조심해야 한다.

나는 내 나름의 이런 사태 대처 매뉴얼을 무의식 중에 실행하는 순간, 그들은 갑자기 나의 온몸을 수색했다. 그리고 가방을 뒤지더니 위험한 흉기가 없는 것을 파악하고서도 이내 건물 안으로 범죄자 다루듯이 끌고 가 취조실에 집어넣는다.

내 머리 속에는 이제 2차적으로 나를 자극하는 질문과 겁박하여 날 이끌어 내리라 하는 매뉴얼이 발동된다. 아니나 다를까 10여명의 형사들은 내 가방을 아무렇게나 뒤지고 내 몸 이곳저곳을 툭툭 치며 질문을 한다.

그때, 한국 취재진이 당황해서 혼비백산 대사관에 연락을 취했으리라 생각되니 웃음이 나온다. 나는 짐짓 빙그레 웃으며 그들이 요구하는 질문에 차근차근 짧게 대답한다.

대답하는 도중에도 그들은 아무 예의도 차리지 않고 쏜살같은 질문을 퍼부었다. 전형적인 그들의 탐문과 압박 수법이다.

경찰서
필자가 연행된 경찰서

터키를 다니다보면 영어를 충분히 잘 할 만큼 학력을 소지한 사람조차도 영어를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이게 늘 궁금했다. 그런데 이곳으로 오는 도중 만난 어떤 교사로부터 해답을 찾았다. “전체 교육시스템이 잘못되어 영어는 물론 외국어에 서툴다”는 게 그 교사의 답이다. 그의 의견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취조실에 갇힌 동안 형사들의 단편적인 영어와 필자의 어수룩한 터키어로 간단한 대화가 이어졌다. 그들은 내가 묵는 호텔에 연락해 내 여권 카피를 팩스로 요구하고 확인절차를 밟는다.

어느덧 결말이 가까워지는 듯하다. 그들의 심드렁한 표정에서 드러난다. 내가 취조받는 동안, 운전기사 아키는 차량 전체를 수색당했다. 그리고는 나와 왜 만났는지, 어디 갔었는지 등등 여러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이윽고 결론이 난 듯 상관으로 보이는 형사가 얘기한다. “당신이 여권을 소지하지 않고 있는 게 문제였다”는 것이다.

자, 이제 내가 소리 지를 찬스가 온 것이다. 난 여태 참았던 화를 내며, “이것은 내 문제가 아니라 너희 나라, 너희 나라 호텔이 문제야!” 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왜 호텔에서 여권을 보관하게 하느냐고?

머쓱해진 그는 부하 앞에서 미안하다는 소리는 어려울 터, 이쯤이면 되었다. 한 시간 만에 취조를 마치고 아키의 택시에 올라타고 경찰서를 빠져 나왔다. 그런데 앗, 경찰서가 김군이 마지막으로 투숙했던 메르투르호텔 바로 옆이 아니던가?

김군이 묵었던 곳으로 알려진 호텔
김군이 묵었던 곳으로 알려진 메르투르 호텔

서둘러 김군이 마지막 묵었던 그의 흔적을 카메라에 담았다. 경찰서에서 당한 일도 있고, 워낙 건조한 날씨라 목이 탄다. 인근 휴게소에 들렀다.

경찰 조사로 인해 베시리에 마을에 가는 것을 깜박 잊었다. 너무 오래 지체하고 약속한 택시 대절 시간이 훨씬 지났다. 택시기사 아키가 휴게소에서 내게 말해준다. “경찰은 당신이 시리아에서 밀입국을 한 외국용병이나 마약딜러로 추정하고 택시 안에 무기나 마약이 있나 하고 샅샅이 뒤졌다.” 그 말에 헛웃음이 나온다.

어딜 가나 용병이나 마약쟁이로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내 운명인가 보다.

필자는 몇 년 전까지 자유시리아군 본부가 있던 서남부 안타키아에서 동남부 국경도시 실로피까지 장장 1400km를 왕복하며 터키-시리아 국경을 따라 수많은 도시와 작은 마을을 방문했다.

쿠르르드 민병대, 쿠르드족, 시리아 난민, 자유시리아군, 심지어 PKK(쿠르드인민노동자당) 게릴라 대원들을 만나 김군에 대해 수소문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모른다”고 일축했다. 수없이 총검으로 위협받고 폭행당하고, 때로는 납치와 살해 위협에 시달렸지만, 내겐 오직 김군을 찾아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필자는 영화 <아저씨>의 원빈처럼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IS로 넘어간 김군을 구출한 ‘아저씨’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내 바람은 영화처럼 현실로 이뤄지진 못했다.

빈손으로 허탈한 맘으로 귀국한 필자는 편안하게 누워 낮잠을 즐기며 여느 누구와도 같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김군에 대한 기억도 점점 희미해져 간다.

김군아,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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