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화약고 터키-시리아 국경지대의 비극②] 드니 빌뇌브 감독의 ‘그을린 사랑’을 떠올리다
[아시아엔=지즈레/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지즈레는 PKK-터키군의 최전선
Cizre(지즈레)는 쿠르드의 심장이라고도 얘기하는 쿠르디스탄의 수도 디야르바키르(Diyarbakir)는 물론 여타 도시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필자는 터키를 20여 차례 방문하여 쿠르디스탄의 거의 모든 도시를 다녀봤다. 하지만 적당히 터키정부의 압력과 타협하는 다른 도시의 쿠르드 시민과 달리 그들은 뼈 속까지 터키정부를 혐오했다.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공포를 쏘아대고 터키경찰의 장갑차가 지나가면 투석과 욕설 그리고 총질을 해댔다. 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것은 모두 우리들의 의무이며 할 바를 다 한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터키경찰은 단 한명도 길거리에서 본 적이 없고, 이동 때는 장갑차만 이용했다. 만일 장갑차량에서 내리면 곧바로 테러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기 때문이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서둘러 상인들은 낮 동안 벌려놓은 좌판을 철거하고 셔터를 내린다. 어둠이 깔리면서 인적이 없는 도시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가끔 테러공격을 피하려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경찰장갑차만이 지나갈 뿐 도시는 티그리스강과 더불어 어둠에 갇혀 버린다. 마치 태초에 빛이 생기기 전 모습같다.
이곳은 쿠르드노동자당(PKK)과 터키 무장경찰이 전쟁을 치루는 최전선. 최대 분쟁지역 가운데 하나로 노아의 후손들이 가까스로 살아남아 대를 이어가는 곳이다.
#시리아 국경지대에서
필자가 끊임없이 들리는 총소리에 어느 정도 적응할 즈음, 택시를 외곽 한적한 곳까지 대절하여 도착 후 차를 보내고, 시리아와 국경이 길게 늘어선 국경선을 두고 나즈막한 구릉으로 이어진 길을 홀로 걸었다. 터키쪽은 작은 초소 대신 높은 언덕에 위치해 경계가 유리한 중대급 기동타격대를 운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대편 시리아는 페시메르가(시리아 쿠르드족 민병대)가 소초를 운영하고 있어 멀지 않은 곳에 페시메르가 병사와 가끔 눈도 마주친다. 필자는 하염없이 걸으며 가끔 보이는 시리아쪽의 석유굴착기를 보며 상념에 빠진다.
터키의 쿠르드인이 거주하는 쿠르디스탄은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이 많이 매장돼 있는 광물의 보고다. 의도적으로 개발을 등한시하여 낙후지역으로 만들어 쿠르드 분리독립을 방해한다는 볼멘소리가 높다. 터키인은 또 여러 이유를 들어 쿠르드인을 불편해 하고 달갑지 않은 이웃으로 여긴다.
하지만 터키가 간절히 원하는 유럽연합(EU) 가입의 걸림돌은 표면적으로는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이라고 학자들과 언론은 말한다. 하지만 터키정부의 쿠르드민족 말살정책과 발칸에서 그리스, 보스니아,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코소보 내전의 배후라는 지적도 많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터키인들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는 오스만투르크 시절부터 발칸반도에 뿌리내리기까지 ‘피의 복수와 야만성’을 유럽인은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쿠르드인의 유목민 기질
홀로 국경선을 걷다가 피크닉 나온 쿠르드인들을 만났다. 중년쯤으로 보이는 쿠르드 남자들의 나를 자신들 소풍에 절반쯤 강제로 이끈다. 쿠르드인은 보편적으로 무슬림 수니파에 속하지만 애초에 이들은 산간에 터잡고 옮겨다니며 목축을 하는 이른바 ‘산간 유목민족’이다.
유목민족답게 외부인을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하고 호의를 배푸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알콜로 기분이 좋아지면 쿠르드 전통춤을 추며 여흥을 즐긴다. 이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익숙한 전통이자 관습이다. 필자는 음식을 맘껏 먹고, 맥주를 마시고 어울려 춤을 춘다. 여흥이 이어지면 그들만의 장소로 옮겨 헤시시를 즐기는 일도 흔하다. 물론 필자는 그들의 초대를 점잖게 사양한다.
시리아에서 탈출해 이곳에서 여러 쿠르드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재기중인 다웃(Davut, 가명)이란 젊은이를 만났다. 약삭빠른 쿠르드 비즈니스맨이다.?얼마 안 지나 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갱단으로 보이는 무리한테 권총 위협을 받은 것이다.
#지즈레 지한통신 지국장 만나 목숨 건지다
그날 밤 에딥(Edip, 42세)의 아들 프랏(Firat)에게서 다급하게 문자가 왔다. 건성으로 대답했더니 “지금 어디 있느냐”며 여러 번 되묻는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왜 그러냐고 물으니, “지금 도시 안에서 당신을 납치한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고 한다. 그러지 않아도 며칠간 총소리에 적응 못하고, 오후에 나에게 겨눠진 총 때문에 혼란스럽고 무서웠는데, 이제 납치한다는 소문까지 들으니 순간 질식할 듯 공포감이 몰려온다.
그들은 왜 나를 납치하려 드는 것일까? 왜? 왜?
IS에게 납치돼 처형된 서방기자들과 일본인들의 동영상이 오버랩되어 공포감이 깊어간다. 프랏은 “무서우면 같이 있어 주겠다”며 호텔로 오겠다고 한다. 나는 짐짓 별 일 아닌 척하며 “괜찮다. 올 필요 없다”고 답했다. 그는 재차 “아침에 데리러 호텔로 갈 테니 절대 그 전에 외출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한다. 그날 밤 필자는 무서움에 떨며 한잠도 못 잤다.
다음날 아침 프랏이 와서 말한다. “우리 아버지가 너를 납치한다는 정보를 들었다. 나더러 너의 신변을 보호하라고 하셨다.” 그의 아버지 에딥(Edip, 42세)은 터키 유력언론사인 지한(Cihan)통신사의 지즈레지국 지국장이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정확한 정보를 빠르게 입수해 필자를 납치로부터 보호해준 것이다. <아시아엔>을 통해 감사인사를 전한다.
#그을린 사랑
20세기 1, 2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알린 레마르크에 감명된 필자는 첫직장에 입사지원 양식에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으로 기입하여 제출했으며,
그의 소설 <사랑할 때와 죽을 때>을 생각하며 분쟁지역을 다녔다. 니힐리즘이 아니면 전쟁의 참혹함을 이해하기 힘들었고, 어디 있을지 모를 아름다운 사랑을 가장 인간의 존엄이 떨어진 전장에서 찾고는 하였다.
그러나 이란에서 천대받고 개종이 강요된 아르메니아 여인을 만나게 되었을 때부터도 그랬고, 오늘도 인류 최고의 문명 발상지를 흐르는 티그리스강가에서 노아의 후손들과 며칠을 보내며 문득 내 생각이 바뀌었음에 이르게 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남녀의 숨결에서 느끼는 이지적인 호흡과 눈빛 그리고 잡힐 듯 안잡힐 듯 느껴지는 그들 둘만의 에너지는 단언코 사랑이라 느껴진다. 히잡을 둘러쓴 여인과 반대편에 앉은 남성은 각각 무심하게 책을 읽는듯 보이지만 말이다. 종교와 관습 그리고 각자의 가정이 있을 법한 그들은, 세상과 등돌린 사랑을 하는 것이다.
필자는 21세기의 전쟁은 그을리고 뒤틀려진 드니 빌뇌브 감독의 <그을린 사랑>이 현재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랑할 때와 죽을 때를 대신하고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