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쿠르드분쟁지역 억류기①] 실탄장전 터키정부군 총부리가 겨눠지고···

지난 2월14일, <아시아엔> 이신석 분쟁지역 전문기자는 쿠르드족 거주지이자 쿠르드인에게 쿠르디스탄(Kurdistan, 쿠르드족의 땅)으로 불리며 연일 전투가 벌어지던 하카리(Hakkari)에서 터키 보안군에게 붙잡혔다. 터키정부와 쿠르드족 간에 극렬하게 전투가 벌어지던 이곳에서 반군으로 오인된 이 기자는 6일간 터키정부 산하 합동수사본부(합수부) 조사를 받았다.?당시 합수부는 이신석 기자에 대해 PKK(쿠르드인민노동자당)에 협조했다는 ‘테러리스트’ 혐의로 조사를 하다 강제 추방됐다.

이 기자는 2월20일 귀국 이후 자신도 이해하기 어려운 폭언과 이상행동으로 가족과 지인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거듭하며 자책감과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다.?이후 반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 이신석 기자는 당시 참혹했던 전투현장과, 테러리스트로 분류돼 강제구금됐던 기억들을 <아시아엔>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용기를 냈다고 했다.

‘분쟁지역’을 돌며 겪었던 일들은 이 기자에게는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다. 이 기자는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들며 주변의 강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작년 초 ‘IS로 넘어간 한국인 김군’을 찾아 나서던 것이 어제 일 같다”고 했다. 지난 10여년 전쟁과 분쟁을 겪고 있는 험지를 오갈 때마다 격려해준 분들과 해맑은 미소로 자신을 기다리는 눈망울을 잊지 못해 이 기자는 언제 또다시 그?길을 찾아갈지 자신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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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와 쿠르드간의 극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코바니(Kobane) 인근. 이신석 기자는 2015년 초 IS에 합류한 한국인 김군을 찾아 이 일대를 수소문하며 1달여 수색했다. 이 기자의 결연한 심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셀카로 찍은 모습이다.?
[아시아엔=글·사진 터키 동남부 하카리/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음력설을 며칠 전 지낸 2월 14일?마침 일요일이었다. 전날 저녁을 굶은 채 아침도 거르고 서둘러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미니버스에 올라탔다. 하카리행 버스는 이내 목적지 절반쯤 지나 온통 설경이 펼쳐진 산악지대로 들어간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터키 남동부 풍경은 너무 아름다웠다. 터키 뉴스에서 하카리 인근 유세코바(Yusekova)에서 경찰작전이 개시된다고 했는데 별 문제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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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터키 동부 산악지역은 PKK대원들이 터키군을 상대로 저항하기에 용이한 험한 지세를 띠고 있다. 터키정부군으로서는 PKK 저항세력을 힘들게 막아내야 하는 것이다. 사진은 PKK대원들이 숨어 지내는 동굴들.

터키에서 경찰작전이 개시된다는 것은 도시가 봉쇄되고 전투를 벌인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폐허가 되었지만 고색창연한 쿠르드족의 성을 지나며, 마침 뒤에 앉은 피부가 검은 여성이 유창한 영어를 하기에 아는 체 하며 말을 텄다.

그녀는 병원 의사로 하카리제너럴호스피탈에서 근무한다고 했다. 닥터와 얘기를 나누는 즈음 버스는 마치 힌두쿠시산맥에 묻혀있는 치트랄(Chitral, <왕오천축국전>에는 상미국으로 나옴)처럼 아름다운 계곡을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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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서핑을 하다가 하카리병원 의사의 사진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녀는 피부가 여느 터키인과 달리 그을린 편이라 많은이들이 자신의 국적을 물어본다며 웃음지었다. 그는 “나는 분명 터키 국적”이라고 했다.

하카리와 유세코바로 가는 갈림길에 버스는 멈춰, 헌병의 검문을 받았다. 별 문제가 없는지 헌병으로부터 탑승객 여권이 반환되고 버스는 출발하였다.

다시 눈 앞에는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고 멀리 하카리 시내가 보이는 마을을 지나는데 옹기종기 모여 있는 쿠르드 젊은이들이 눈에 띠었다. 갑자기 PKK가 생각난다. 동시에 하카리라는 지명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 2년 전 지즈레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그들끼리 장난으로 “이 친구는 하카리에서 왔다”고 놀리는 장면이 다시 생각난 것이다.

골수 PKK대원은 모두 하카리 출신이며 가장 극렬하게 전투를 벌이던 곳이 하카리라는 사실이 왜 이제야 생각난 걸까?

기자는 불안해지고, 마침 경찰검문이 시작되자 평상시 나답지 않게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한다. 미처 대비하지 않은 상황이 펼쳐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항상 다음 행선지에 대한 정보는 숙지하고 다니며, 적군과 아군에 대한 생각과 입장을 준비하는 편이다. 현지인들이 내게 질문을 해올 때를 대비해 답을 준비해왔다. 특히 이러한 준비는 밤새 머릿속으로 수십 번 상상하며 대비를 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뿔싸, 너무 늦었다.

바짝 긴장한 모습의 군경들은 실탄이 장전된 총을 들이대고 기자에게 하차를 요구한다. 뒤에 앉은 닥터는 문제가 생기면 자신의 병원에 연락하라며, “절대 긴장하지 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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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부분이 하카리 지역이다. 이 기자는 이곳에서 7일간 쿠르드족의 인권피해 상황을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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