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난행難行17] ‘폭풍전야’···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던 라브리오 난민촌
[아시아엔=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시리즈 16회에서 소개한 것처럼 사모스섬이 피타고라스의 고향인 탓인지 그곳엔 ‘피타고라스의 컵’이라는 것이 어딜 가나 흔히 볼 수 있었다.
술잔에 적당한 양의 술을 따르면 괜찮지만, 그 이상을 따르면 전부 다 넘쳐 컵 밖으로 흘러내리고마는 ‘계영배’다. 인간의 과욕을 경계하고 누구나 평등하게 나누어 마실 수 있게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사모스에 머무는 동안 그 뜻이 계속 기자의 머리 속을 맴돌았다.
사모스섬에서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까지는 페리를 타고 꼬박 10시간 걸렸다. 잠시 숨을 돌리고 바로 라브리오로 향했다. 라브리오는 아테네에서 약 30분쯤 떨어진 곳으로 2년 전에 찾아갔던 곳이라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갈 수 있었다.
라브리오는 그리스 공산당의 메카이기도 하다. 이유는 세계 제2차대전 이후 그리스가 영국의 힘을 빌어 독립한 이후 영국이 지원하는 우파정부가 독립활동을 전개했던 좌파들을 라브리오 앞에 있는 섬에 가두었다. 그들에게 전향을 요구하며 고문을 자행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스 현대사에 오점으로 남아있다.
가까스로 살아난 생존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면 부역자로 몰리는 이중의 고통을 안게 되어 라브리오에 그대로 머물러 살기 시작했고, 1970년대부터는 동유럽이나 소련에서 밀려나온 공산주의자들을 위해 망명처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이후에는 쿠르드노동자당(PKK) 출신들의 망명처가 되고 있다.
2년 전 필자가 라브리오 난민수용소를 방문했을 당시에 다수의 PKK 전사들이 이곳을 거쳐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하마스에 자원 입대하여 여러 명이 전사했다는 증언을 들은 바 있다. 그때 만났던 쿠르드족 출신의 건물 관리인, PKK 전사로 지즈레시전쟁 당시 주디산에서 이를 목격했다는 메멧, 그리고 사회주의 이념에 깊숙이 빠져 숭고함마저 느끼게 했던 무툴루 등이 주마등처럼 기억 속을 스쳐갔다. 어느 새 내 마음은 착잡해졌다.
또다시 그때의 긴장감과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나는 길게 숨을 내쉬고 더 깊게 들이켜며 몸과 마음을 바로잡았다. 그리고 PKK의 소굴로 발길을 옮겼다.
지난 2년 사이 달라진 게 뭐 없는지 이곳저곳 살피며 건물 2개 동 가운데 큰 건물의 1층에 있는 카페테리아로 들어갔다. 벽에는 전쟁에서 희생된 PKK 전사들을 추모하려는 듯 그들 사진이 여전히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존경하는 압둘라 오잘란의 깃발과 벽화가 걸려 있었다. 잠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압둘라 오잘란, 먼 훗날 체 게바라처럼 수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게 되지 않을까’
차이(차)를 한잔 달라고 하자 차를 팔고 있던 남자가 가슴에 손을 얹었다. 존경과 환대의 표시다. 이같은 그들의 따스한 마음에 반해 지난 세월 쿠르드지역을 종횡무진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차를 마시고 나서 마당에 나가 보니 아이들이 전보다 많이 보였다. 이유를 물어보니 2019년 에르도안의 터키군이 시리아의 쿠르드 도시인 아프린과 코바니를 점령해, 그곳에서 온 가족을 동반한 난민들이 이곳까지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