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쿠르드분쟁지역 억류기⑥] 터키군 요새 하카리 지역의 ‘소총’과 한국산 연막최루탄은 무얼 위해?

필자가 취조를 받던 군경 합동심문실 앞에 놓여있던 소총들. 이곳에선 한국의 연막최루탄도 종종 작전에 사용된다고 한 수사관이 귀뜸해줬다

[아시아엔=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날이 밝아 출근한 대원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나는 한잠도 못잤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경치에 넋을 잃었다.

하카리는 경사가 급한 산들로 둘러싸였고 산의 중턱까지 잔설이 남아있다.

내가 와보고 싶던 ‘노아의 방주’가 있다는 주디산에서 이곳까지 산맥이 이어져 있다. 쿠르드쪽에서 보면 산 정상에서 하카리 시내를 공격하기 좋고 터키쪽에선 공격은 어렵고 수세에 몰리기 쉬운 지형이다. 터키군은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산 중턱을 깎아 평평하게 만든 후 헬리콥터착륙장을 만들었다.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 대공포를 곳곳에 배치해 놨다. 탱크와 자주포로 공격이 예상되는 정상에서부터 방어를 하게 돼있다. 일반병사에게도 방탄복이 지급돼 모든 군경이 착용하고 있다고 한다. 한눈에 보아도 그들의 단독군장 상태는 우리 군을 능가하였다.

장갑 지프차는 군경의 단거리나 기동순찰시 이용되는데 차 안에는 각종 자동소총과 기관총이 상부의 해치를 열고 운용할 수 있도록 돼있다. 다량의 실탄과 수류탄 및 유탄이 적재되어 있다. 장갑지프에 타면 박스 또는 바스켓에 잔뜩 들어있는 조명탄 같은 것이 있다. 용도를 묻다가

한국에서 수입한 최루연막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장갑지프는 소요 진압이나 소규모 작전에 의한 전투 시 기동력을 제공하고, 웬만한 트럭이나 방해물도 헤쳐나갈 수 있도록 견고하게 설계돼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소형지프의 화력은 분대 이상의 화력과 놀라운 기동력 그리고 상황이 불리해지면 한국제 최루연막탄을 사용하여 은폐를 시도하여 신속히 현장탈출을 가능케 운용되는 것으로 짐작됐다.

아름다운 풍경의 하카리는 방어용 군사요새로 덮여있다. 또 곳곳에 완전무장에 안면마스크를 쓴 형형한 눈빛의 군인과 경찰들로 점령돼 있다. 포로로 잡혀 방관자가 되어 버린 나에게는 이 모든 풍경이 그로데스크하게 비쳐졌다. 전쟁의 방관자는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된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와서 말이다.

봄이 되어 눈이 녹는 한달 후에는 PKK가 산을 넘어와 전쟁이 또 시작된다고 한다. 아르펜이 급히 나를 부르더니 어디로 가자고 한다. 3명의 대원에게 이끌려 또다시 차를 타고 합동수사본부 건물을 나와서 장갑지프를 타고 어느 건물에 이르렀다. 그들은 나를 또다시 지하로 데려가는데 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언제나 그렇듯 지하에는 살기가 가득했고, 어디선가 들리는 고함과 신음소리는 날 얼어붙게 만든다.

열려진 방문 사이를 지날 때마다 방문 밖으로 나오는 살기에 숨이 막힌다. 복도 끝에 이르자 마치 X-Ray실처럼 생긴 방이 나타나고, 그곳 대원은 아주 딱딱하게 저기 가서 서있으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촬영이 시작돼 광선 즉 조도에 따라서 각기 3번 촬영했다.

미드얏 거리에서 발견한 쿠르드 소녀, 그는 어디를 향해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그들은 정면, 왼쪽, 오른쪽에서 촬영하더니, 이번에는 열손가락 지문을 모두 스캐닝하였다. 드디어 나는 기소되어 법정에 서고 곧 죄인이 되는 것인가? 될대로 되라는 심정이 들었다. 이어서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벌써 몇번째 방문인가? 이는 합동수사본부 수사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형식적으로 싸인만 하는 닥터에게 나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서슬퍼런 대원들 앞에서 말이다.

“얘네들이 날 마구 팼어. 심장이 이상해. 체크 좀 해줘.?도대체 몇 시간째 못 자고 아무 것도 못 먹었는지 당신이 알기나 해?”

닥터는 대꾸도 없이 싸인만 하고는 서류를 대원에게 넘긴다. 내가 물었다. “닥터 양반, 여기 얼굴 까만 여자 닥터 근무하지? 그에게 내가 고맙다고 하더라고 전해주소. 그러면 알 거야.”

전날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며 버스에서 포로로 잡혀 내릴 때 안타깝게 쳐다보던 그녀 말이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닥터가 말했다. “당신이 누구인지 이미 하카리 사람들은 다 알아. 당신 토니 맞지, 한국에서 온 미스터 리! 내 동료 그녀한테 당신 말 잘 전해줄게.”

내가 흥분한 끝에 병원에서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굴며 입에 담지 못할 한국어로 된 욕을 마구 해대자 대원들은 달려들어 나를 제압한다. 아니 내가 제압당해 주었다. 아르펜이 달려들어 내 눈을 쳐다보며 “제발, 토니!” 외친다. 그의 눈은 진심을 담고 있었다.

“난 어떻게 되지, 아르펜? 난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오고 싶었을 뿐이야. 꿈을 잃은 그들 쿠르드 어린이들에게 온정을 전해주고 싶었을 뿐이야. 너에게 수없이 말했잖아!” 울먹이며 절규하자, 그는 나를 바로 안아버렸다. 그의 눈에 물기가 흘렀다.

내가 무슬림 친구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정이 있기에 그렇다. 나를 토닥여주며 사무실로 돌아온 아르펜이 솔직하게 말한다며 내 귀에 속삭였다.

“내 경험상 토니 당신은 기소되어 처벌받던가 아니면 잘 풀려서 추방될 거야.” 그는 “아직 상부의 최종결정이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내가 말할 차례다. “아르펜, 너도 알잖아? 저 가방에 뭐가 들었는지. 이곳의 꿈 잃은 아이들에게 선물 주려고 준비해 온 것 다 알잖아?”

나는 거의 울부짖었다. “니들이 수사를 위해서 내 페이스북을 뒤졌을 때 내가 지인들과 학교 동문들에게 선물받은 사진들은 조서에서 다 뺐잖아? 이 나쁜 놈들아! 내가 왜 테러리스트야? 56시간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어. 밥 내놔!”

아르펜은 문을 연 식당이 있으면 먹을 걸 사오겠다고 한다. 배가 고프다고 소리지르며 엉엉 울고 있는 나를 남겨두고 아르펜이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그는 내가 좋아하는 라마준(피자의 기원이 된 음식)을 넉장 사왔다.

나는 절반은 먹고 절반은 남겼다. 아르펜은 퇴근하고 나는 북적이는 상황실에 남아 감시와 통제 속에 악몽같은 밤을 또 지새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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