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쿠르드분쟁지역 억류기④] “내일 아침 당신이 살아있을 가능성은 제로야”

[아시아엔=터키 하카리/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이곳에 억류된 후 잠시 사이지만 제법 정이 든 아르펜이 내게 다가왔다.

“토니! 당신은 지금 밖에 나가면 저격수에게 바로 사살당할 거야.”

“아르펜, 그게 무슨 말이지?”

“만약 토니 당신이 이 합동수사본부를 나가면, 내일 아침까지 당신이 생존할 확률은 거의 없어. 난 확신한다구!”

그가 계속 내게 떠들어댔다. “PKK 그들이 당신을 보면 산으로 납치할 것이고, 터키군과 대테러팀이 당신을 본다면, 미안하지만 저격할 거야. 요즘 들어 하카리에는 러시아와 러시아 연방에서 온 용병으로 골치가 아프거든. 그리고 당신은 러시아 사람처럼 생겼잖아! 거울을 봐, 토니.”

거울을 볼 필요도 없이 필자는 수없이 카자크족 또는 하자라족 몽골족 타타르조으로 오인돼 왔다. 그들도 나를 동족으로 여길 정도로 나는 북방유목민처럼 생겼다고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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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수부 근무 군인들이 건물입구에 세워놓은 총기.

시리아 내전 초기 궁핍했던 시리아 쿠르드민병대, 즉 YPG(페쉬메르가)는 IS에 대항세력으로 키우기 위해 미국등 서방과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아 지하자원과 물자 그리고 무엇보다 유전지대를 차지하여 전쟁에 필요한 자금이 풍부해졌다. 그런 그들이 터키 동남부 지즈레(Cizre) 내전에 동족 쿠르드를 돕고자 많은 병력과 장비를 내어준 것은 터키인들이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아르펜은 말을 이어갔다. “며칠 전, 지즈레 내전에서 자본이 풍부해진 PKK와 YPG가 세르비안 저격수를 고용하여 수많은 터키병사가 저격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터키병사들은 분노와 흥분에 최고조로 쌓여 있어 토니 당신은 병사들에게 노출되는 즉시 사살되어 하카리에서 시체로 발견될 거야.”

사실 그 지난 주 지즈레에서 사살된 테러리스트의 신원을 확인하던 중 여섯명의 신원이 세르비아 출신으로 밝혀졌고, 매스컴에는 두명의 세르비아 저격수가 터키정부군에 사살됐다고 보도됐다. 터키정부는 앙카라 주재 세르비아 대사에게 그 책임을 강하게 물었다. 발칸에 뿌려진 오스만투르크의 야만과 잔혹의 역사는 오늘도 되풀이되고 있다.

필자의 친구이기도 한 크로아티아인 찰리는 나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보스니아와 헤르체코비나가 항상 문제야. 그들은 전쟁이 나는 모든 곳에 용병으로 나갔다 돌아와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를 향해 테러를 일삼고 있어.”

서방이 발카나이제이션 즉 발칸을 제멋대로 찢어놓는다고 피와 복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상황실에는 근무교대를 마치고 추위와 밤새 허기를 피해 들어오는 대원들로 가득차고, 나는 이곳에서 또 새롭게 살아남아야만 했다. 아르펜은 퇴근하고 대원들은 나에게 수없이 질문을 던져온다. 때론 거칠게, 때론 친구처럼. 난 그들에게 엔터테이너가 되어야만 했다. 난 꿈을 잃은 아이들에게 온정을 전하는 휴머니스트이자, <CNN> <BBC>가 아닌 <아시아엔>이라는 그들에게는 ‘듣보잡’ 매체의 저널리스트일 뿐이다.

나는 강하게 다가오는 형사에겐 부드럽게 “난 PKK 테러리스트야”라며 겁없이 농담을 받아쳤다. 어쨌든 이 방 안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들이 던져주는 작은 분량의 과자를 우물거리며 마음 속으로 ‘제발 이 과자가 에너지가 되어 내 몸을 깨어 있게 하옵소서’ 하며 기도를 수없이 했다. 빠질 수 없는 그들의 야참에는 차가 등장하는데, 그들의 권유에 한번도 빠짐없이 받아마셨다.

대원들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나는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들은 연장자에게 공경하는 신실한 무슬림이기에, 그에 상응하는 품위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격을 잃으면 그들에게 벌레처럼 취급받는 이교도와 상스러운 서구인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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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수부에서 조사받는 동안 창밖으로 보이던 쿠르드족 거주지역. 내가 거기?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이제서야 주변이 보이고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푸르른 달빛에 잔설이 남은 처연한 산중의 도시는, 어릴 적 대중목욕탕에 가서 처음으로 온탕에 몸을 담그면 온몸에 일어나던 오한과 소름처럼 내 몸을 휘감는다.

‘난 어떻게 될까?’

아까부터 들렸지만 인지 못하던 기관총 소리와 소총 소리는 이제 점점 멈추어 오고, 새벽으로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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