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쿠르드분쟁지역 억류기②] 좌절감과 분노에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아시아엔=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나는 전쟁포로처럼 두 손을 머리에 얹고 초소로 끌려갔다. 이제 나를 안타깝게 동정하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가방은 땅바닥에 내팽겨지고 안에 든 내용물을 군경들이 샅샅이 뒤진다. 나는 뒤로 돌아선 채로 벽에 손을 붙이고 바지를 내렸다가 올리는 수모와 함께 온몸의 수색을 받아야 했다. 신발은 벗은 채 맨발로 서서 그들의 또 다른 지시를 따라야 했다.
이러한 상황보다는 지즈레 친구들의 “하카리는 수십년간 계속 전쟁 중”이라는 얘기를 새겨듣지 않고 ‘그냥 위험한’ 동네로만 여기고 찾아온 내 무모함과 무지함이 더 부끄러웠다. 나의 잘못된 선택과 무지가 가져올 결과에 온몸이 떨려왔다.
곧 호송차량이 도착하고 차량 두대에서 특수요원 10여명이 쏟아져 내린다. 그들은 보통 터키사람보다 기골이 장대했다. 얼굴과 턱선은 누가 봐도 강인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마치 오스만투르크제국이 각국에서 차출해 온 강력한 보병군단인 예니체리 병사를 보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하카리로 진입하는 첫 검문소에서 터키정부군은 나를 우측 바리게이트에 내리게 했다. 잠시 뒤 상부의 명령을 받은 듯 내 온몸을 마구 밀치며 차에서 끌어내렸다. 나는 짐승같이 취급받는다는 생각에 분이 치솟았다.
그들은 나의 미세한 몸짓과 눈길조차 통제하며 매처럼 날카롭게 온몸을 훑는다. 통증이 느껴질 정도다. 그들은 장갑차에 나를 태우고 한 건물에 이른 뒤 가방을 직접 들게 시켰다. 그들은 내게 3층으로 빨리 올라가라고 재촉한다. 곧이어 지하로 데려가 취조하기 시작했다. 전날부터 굶은 데다 고산지대여서 긴장한 기자는 숨이 가파오고, 믿어지지 않는 상황에 심박동은 미친 듯한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지하는 주로 취조를 하는 곳인지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살기 가득찬 구조는 숨을 더욱 멎게 만든다. 형광등이 점멸하며 내는 묘한 금속음과 을씨년스런 조명 그리고 바닥에 흥건히 고인 물과 거친 콘크리트바닥이 만나서 만들어낸 냄새가 불쾌한 느낌을 더해준다.
어느 방에선가 누군가의 피의 절규가 들려와도 이는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이윽고 취조실에 이르자 10여명의 특수요원은 기자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쉴 새 없는 단발성 질문들이 이어진다.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손을 들어 가격하려는 몸짓에 나는 점점 위축되어 갔다.
나는 그래도 웃으며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려 했다. 하지만 거세게 밀어붙이는 그들에게 절망감만 깊어간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자꾸만 땅으로 처박힌다. 가슴이 뛰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느껴지고, 가슴엔 통증마저 일어난다. ‘죽을 거 같다. 이겨내야 한다, 이 고통을.’ 너무 지친 나머지 앞에 보이는 각설탕을 얼른 두개 집어 입에 넣으려 했다. 이 광경을 본 그들은 내가 독약을 먹으려는 것으로 알았는지 달려들어 내몸을 심하게 부여잡고 뱉으라고 한다.
그들이 나를 붙잡고 입안을 벌려 각설탕으로 확인되자 이내 놔준다. 나는 책임자에게 손짓발짓하며 “나는 나이가 좀 들었다. 긴장하고 어지러운 건 나이 든 사람들이 당이 떨어져 그러는 거”라고 했다. 기자의 나이를 확인하기 전 그들은 20년 정도 아래로 본 듯했다. 여권을 펼쳐보이며 내 나이를 밝히자 그들도 수긍했는지 각설탕 박스를 내 앞에 놓아준다.
하지만 계속 바뀌어 들어오는 형사들은 각설탕을 집어먹는 기자의 행동을 매의 눈으로 쳐다보며 저지하려 들었다. 그래도 나는 실신하거나 탈진하지 않으려고 계속 각설탕을 입에 넣었다.
이슬람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쿠르드 출신의 살라딘은 ‘관용과 자비’로 십자군에 맞서며 기독교세계에도 커다란 영감을 주었다. 나는 하카리에서 붙잡혀 그들에게 강제 억류되며 수모를 당하면서 나도 모르게 살라딘이 생각났다. 사진은 2010년경 시아파 이슬람의 최대축제인 ‘아슈라’기간에 이란에서 촬영한 것이다.
좁은 공간의 공기는 기자를 실신하게 만들 정도로 압박을 가하고, 온몸에선 기운이 빠져나갔다. 그들 눈에 나는 테러리스트이고 테러협조자일 뿐이다. 실탄이 장전된 권총을 찬 특수요원들이 고문과 압박 그리고 구타를 할 것처럼 덤벼드는 시간이 흐르자 건장한 사내 한명이 들어왔다.
그는 함께 있던 특수요원들을 모두 방에서 나가라고 했다. 러시아 최고 격투기 선수 알렉산더 표도르처럼 생긴 사내는 어울리지 않게 유창한 영어와 상냥한 말투로 나를 대한다. 자신은 국가정보국 특수요원이며 아마도 내가 그동안 만났던 경찰 중에서 가장 친절한 경찰일 것이라고 했다.
그 앞에 앉은 나는 부끄럽게도 몸을 몹시 떨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서울의 내 방에서도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몸을 심하게 떨자 표도르처럼 생긴 요원은 밖에다가 소리를 질러 차를 갖다달라고 하고는 내게 담배를 권한다.
각설탕을 여러 개 차에 넣고 우물우물 마시며 담배를 피우지만 입술이 부르르 떨리고 몸은 저절로 앞뒤로 왔다갔다 흔들린다. 난 쇼크에 빠졌음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몸을 추스리려 사투를 벌여야 했다. 쇼크를 먹어 취조에 제대로 응하지 못하자 그는 나에게 다른 질문을 하며 주위를 환기시킨다.
이때 나는 앙카라 소재 한국대사관에 연락해도 되냐고 물었다. 분쟁지역을 다니며 수없이 경찰서에서 고초를 당하고, 마약상으로 오인되어 이란의 마약반에 끌려갔던 순간들, 그리고 IS 테러리스트로 오인되어 국경에서 치도곤을 당하던 순간들이 있었지만, 처음으로 한국대사관을 떠올리고 구조요청을 생각해낸 것이다.
그는 “일단 조사를 한 뒤 조치를 취해주겠다”고 했다. 이윽고 정신을 가까스로 차린 나는 조사에 응했다. 그 특수요원은 너무도 능숙했다. 누사빈(Nusaybin)에서 형사가 기자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 수천장을 훑어보며 조롱하고 비웃었지만, 표도르처럼 생긴 요원은 살짝살짝 보며 기자를 능멸하는 대신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고 캡처했다.
그는 자신의 일이 끝나자 특수요원들의 보스에게 나를 인계하며 캡처한 사진을 컴퓨터에 다운받게 시켰다. 컴퓨터에 능한 요원은 순식간에 포토샵을 이용하여 여러 사진과 프로필을 만들었다. 살짝 훔쳐본 내 프로필은 얼핏 봐도
‘테.러.리.스.트’로 인식되고 판별되었다. 포토샵이 끝나자 자신들의 취조내용을 덧붙이려는지 보스와 몇명의 요원이 컴퓨터에 들러붙어 수정, 보완하는 작업을 한다.
그들은 이내 나를 일으켜 세우고 정면사진과 측면사진을 찍는다. 속으로 생각했다. ‘절대로 저 조서에는 싸인을 하지 말아야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싸인을 하지 않으면 고문이 시작될 텐데 난 저들의 고문을 버틸 수 있을까?’ 고문에는 버틸 방법이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조서가 완성되면 나는 서명을 하게 되고 그러면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그리곤 테러리스트가 되어 다시는 햇빛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싸인을 하되면 대사관의 협조도 무용지물이 될 터. 빨리 대사관에 연락을 취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한번 요원들에게 대사관에 연락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들은 “안된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웬 전화를 받더니 그들은 어수선해지고 나더러 병원에 가자고 한다. 병원에 가자는 건 모든 조사가 끝났다는 얘기 아닌가? 난 싸인을 하지 않았는데 끝났다니.
하카리에 위치한 병원. 최근 인터넷서핑을 통해 발견한 병원 전경을 보며 알 수 없는 회한에 몰려왔다.
어느덧 밤이 되고 병원에 도착하여 닥터를 만나서 얘기했다. “맞은 덴 없다. 그러나 어제부터 아무 것도 못 먹으며 고강도 취조를 받아 너무 지쳤다. 그리고 내 심박이 심하게 뛴다. 혈압 좀 체크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닥터는 싸인만 하고 서류를 요원들에게 넘겨준다. 요원들은 기자를 태워서 다른 건물로 이동하더니 인수인계를 하고 사라진다. 취조는 또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