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용병이 되고 싶었다, 킬리스의 김군도 그 이유로 IS전사가?
[아시아엔=이신석 분쟁지역여행가] 20여년 전 필자는 군대를 제대하고 호주 시드니로 가 체류하던 즈음 얘기다. 당시는 일류대가 아니면 호주에서 대학 졸업 후 한국에 돌아와서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에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도 불확실한 미래에 우울해 하던 때다.
당시 같이 어울리던 한국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특수부대 즉 UDT(아마도 기억나기는 산악인 엄홍길씨 보다 한두 기수 후배 되는 친구들이었다) 출신들로 우리는 같이 미국 군사 관련 잡지를 보면서 용병 모집광고를 보고 한동안 용병의 세계를 꿈꿨다.
1980년대 후반이던 당시 우리는 용병에 지원해 아프리카에서 용병으로 활약하려던 꿈을 갖고 있었다. 나이 들어도 철이 들지 않는다고, 지금도 그런 로망에 사로잡혀 ‘밀덕’(밀리터리 덕후)처럼 지내기도 하지만.
필자는 2004년 쿠바 여행때 용병세계의 전설로 통하는 중국계 쿠바인 그레고리를 만났다. 당시 55세였던 그는?쿠바의 벽촌 레메디오스에서 앙골라 내전에 1970년대 두번 용병으로 참전해 국가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첫번째 파병은 전투병으로, 두번째 참전은 취사병으로 갔다. 벌써 20년이 지난 지금 내게 남은 건 악몽 뿐이다. 연일 계속되던 야간전투, 적보다 아군의 오인 사격과 포격 그리고 안전사고로 인한 동료의 사망. 아, 나는 왜 그곳에 갔을까? 남은 건 지우고 싶은 것들뿐이다.”
서방세계에는 <체 게바라 평전>을 읽고 참전하는 젊은이들이 늘지만 이슬람세계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이 ‘지하드’라 불리는 성전을 수행하기 위한 참전을 한다. 80년대 러시아에 맞선 아프가니스탄 독립전쟁을 시작으로 나고르노카라바흐, 보스니아 내전, 체첸 전쟁, 그리고 현재 파키스탄 내 와자리스탄에서 미국 및 다국적군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또 이슬람국가(IS) 건설을 위해 여러 나라 특히 보스니아 내전, 체첸 전쟁 등에 참전했던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2011년 초 ‘아랍의 봄’을 꿈꾸었으나 실의를 맛본 젊은이들은 레바논과 터키 육로를 통해 시리아로 들어가 IS전사로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
며칠 전 터키를 통해 시리아에 밀입국한 것이 분명한 김군도 필자처럼 젊은 날 실의에 빠져 동경했던 용병의 세계를 꿈꾸며 나아간 것이리라.
용병의 세계에는 도덕성과 당위성이 없다.
<Man on Fire>라는 영화의 주인공 댄젤 워싱턴은 용병에 몸담았던 시절에 대한 후회와 악몽으로 몸부림친다. 체첸의 전사들이라는 그들의 멋진 용맹스러움도 결국은 북카프카즈 베슬란에 위치한 초등학교에서 1500여명의 어린 목숨을 인질로 잡고 800여명의 사상자를 낸 최악의 범죄로 귀결된다. 그들은 지금 IS에 합류해 있다.
필자는 철이 덜 든 탓인지 한번쯤 포연을 달리며 총을 갈겨대는 희열을 아직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분쟁지역을 다니며 전쟁에 피해를 입은 그들의 절망에 찬 가슴을 끌어안고 그들과 하나 되고.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면서 흘리는 눈물의 가치를 뒤늦게 깨닫고 있다. 이 눈물이야말로 진정한 희열이고 현실에서 절망을 떨쳐낼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분쟁지역을 다니며 그들을 가슴으로 끌어안아 주는 이유이자 그런 사연들을 여행기에 연재하는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