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터키 실종’ 김군같은 학창시절을 보냈다

 버스안에서 본 시리아 난민캠프.
<사진=이신석> 버스안에서 본 시리아 난민캠프.

[이신석=분쟁지역여행가] 지구촌 여러 곳에서는 인류최악의 범죄인 제노사이드(genocide) 즉 인종청소가 벌어지고 있다. 내가 늦은 밤 평화롭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각에도 시리아와 이슬람국가(IS) 등 어딘가에선 인종청소가 자행되고 있다.

필자는 10여년 전부터 분쟁지역과 인종청소가 휩쓸고 간 지역을 여행하며 남은 자들을 가슴으로 끌어안아주며 다니고 있다. 최악의 범죄에 피해를 입은 지역에서는 내가 찾아가는 걸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런 곳에서는 위협을 넘어 폭력이 내게 가해지고 목숨을 잃을 뻔한 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늘 위험을 달고 다녀야 한다.

이런 내게 지인들이 동행하고 싶다고 말한다. 얼마 전 김정운 교수가 쓴 글에 항상 등장하는 ‘내친구 귀현이’가 “너 여행갈 때 나도 같이 가자”고 해 “그럼 유서 써놓고 따라와” 했더니 소식이 없다.

필자가 그렇게 위험한 지역을 다닐 수 있었던 것은 필자의 어린 시절 경험에서 비롯됐다. 아마도 시리아로 밀입국하여 IS에 가담한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김군과 필자의 과거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은 김군이 페미니스트 혐오자, 게임중독, 왕따, 학교폭력 피해자,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은둔형 인간 등으로 보도하고 있다.

<사진=이신석>

 

나는 이런 보도를 보면서 내 학창시절을 되돌아봤다. 초등학교 시절엔 매년 새 학년에 여자 담임선생님만 만나면 여지없이 밥먹듯 구타를 당하고 여기 반항하던 기억이 새롭다. 6학년때는 담임선생님은 물론 학급 급우들에게 왕따를 당한 경험도 있다. 당시 서울에 몇 없던 미션계 남녀공학 중학교에 진학했을 때 일이다. 학교 교회에서 전교생이 보는 가운데 교감선생님한테 따귀를 맞은 적도 있다. 당시· 일은 내게 얼마나 수치스러운지 아직까지 상처로 남아 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건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일방적으로 당해야 했다.

그 사건 이후로 필자는 남들이 상상 하기 어려운 폭력적인 학생으로 변해서 결국 그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된 가슴 아픈 과거가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당시에 폭력에 자주 노출됐던 탓에 이후 폭력이 그다지 겁나지 않게 됐다. 아마 내가 위험천만한 분쟁지역을 겁 없이 다니는 밑천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터키 킬리스에서 시리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18살 김군은 살기 가득찬 이들에게 인계되고 또 다시 넘겨지는 공포 속에서 지금쯤 외로움에 떨고 있지 않은지···.

<사진=이신석>

 

실제로 필자가 터키 킬리스 등에서 시리아 출신 밀입국브로커는 단구의 중년남자로 보는 순간 측정키 어려운 살기가 느껴졌다. 한마디로 더 이상 상종하기 싫은 인상이었다. 그를 따라가는 길은 바로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더 김군 걱정으로 몸부림친다. 킬리스에서 시리아 국경을 넘은 김군은 그들의 끝없는 질문과 심문에 몸서리치고 있지는 않은지? 난방도 안 되는 건물 뒤로 나와서 차디찬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한없이 울고 있지는 않은지? 시리아에서 머나먼 동쪽, 섣달 대한민국 하늘에 떠있는 반달을 김군도 같이 바라보고 있겠지?

“힘내요. 엄마가 계시잖아요.” 내가 김군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이 말 뿐이다.? 그래서 속상하지만, 나는 믿는다. 조국 대한민국은 그를 잊지 않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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