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분쟁지여행]아제르바이잔, 국적 다른 세 남자의 포옹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거드가 차를 세워 달라고 하더니 자킷을 벗고 미친듯이 개울을 뛰어 다니며 물을 몸에 끼얹는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눈물을 흘리며 얘기를 한다. 거드는 오스트리아의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여기서 거주하고 있고 37살 미혼이며 제지회사에 근무 하고 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 사람이라 우리처럼 군대도 탱크병으로 다녀오고, 나처럼 분쟁지역인 중앙아시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서아프리카 등을 다니다가 어느 날 시리아 다마스커스에서 이슬람으로 개종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아제르바이잔 바쿠에 사는 이슬람을 신실하게 믿는 친구를 사귀게 된다. 친구는 원래 고향이 아르메니아에 뺏긴 이곳 이었다. 그 친구는 거드에게 이제는 너무나 변해버린 이곳의 사진을 봤으면 하는 부탁을 하게 되었고

거드는 승락을 하게 된다.

또한 거드는 매일같이 발칸반도의 인종청소와 전쟁 얘기로 가득한 뉴스를 접하는 1990년 전후, 들어 보지도 못하고 유럽인 누구도 관심 없던 이곳 전쟁을 관심 있게 보았던 것이다. 기실 그에게는 이곳을 방문 하기 전에 많은 관심과 계획이 뒤따랐으나 이제야 그의 행동이 이해가 가고 그의 눈물의 의미를 알겠다고 했다.

놀라운 사연, 더 놀라운 비밀이다. 나는 아제르바이잔 친구 때문에 스파이로 몰릴 수 있다는 충고를 잊지 않는다.

그리고 며칠동안 그가 그냥 카톨릭 문화의 유로피언인 줄 알았다가 무슬림이라는 사실에 경악한다. 세상에는 모르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차에 내려 전적비로 보이는 곳에 다가가는데 저쪽에서 차 한 대가 멈추더니 두 남자가 내린다. 쓰러질 듯 몸을 가누지 못하며 위령비로 다가온다. 우리는 그들에게 자리를 비켜주고 그들은 위령비에 입을 맞춘다. 그렇다! 그들은 그날 그 전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며 앞서간 전우를 추모하러 온 것이다.

나와 거드는 예를 표하며 그들에게 사진 촬영을 요구하자 기꺼이 응해준다. 그들은 20년 전 바로 오늘 전투에서 살아 남았다고 하며 앞에 놓여진 생화는 먼저 왔다간 전우와 그들의 혈육이리라. 이 지역에서 남자들은 사진 촬영에 거의 응하지 않는다. 사진은 정치 민족 종교 갈등에 휩싸인 이곳에서 하나의 단서로 남아 훗날 문제로 남을 수 있기에

다디방크수도원의 내부에 놓인, 작은 기도하는 곳.

로버트와 거드는 헤어졌다. 거드는 며칠 더 고르노카라바흐에서 지내고 그의 여정은 로버트가 책임진다.

난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국적이 다른 세 남자는 깊은 포옹을 한다. 버스 차창을 통해 사람들은 우리의 포옹을 보며 환호하고 우린 눈물을 흘린다. 서로의 미래와 안위를 걱정하는, 그리고 헤어짐의 아쉬움에

버스 맨 뒤에 자리가 남아 뒤로 이동하는 중에 우리의 포옹을 보았던 승객들이 연호를 한다. 그들 중 한 부부가 나에게 앙증맞게 작은 감을 건네고 난 한입 깨물어 본다. 떫을 거라 예상하고 말이다.

떫은 맛은 없고 그저 달다. 향도 좋다. 참 이해하기 어려운 건 이 지역에서 나는 감들은 나무에 열려 있는 상태에서 따 먹어도 떫은 맛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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