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화약고’ 터키-시리아 국경지대의 비극 ①] 쿠르드족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 제2의 넬슨 만델라가 될 것인가?
터키-시리아 국경지대는 ‘중동의 화약고’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는 지난 4월부터 약 한달간 전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이곳에서 체류하며 이들의 비극을 목격하고 왔다. <아시아엔>은 이신석 기자의 경험을 토대로 터키-시리아 국경지대의 생생한 현장을 연재한다. – 편집자
‘중동의 화약고’ 터키-시리아 국경지대의 비극
[아시아엔=터키-시리아 국경지대/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필자는 2015년 4월 터키의 동남부 지역을 방문했다. 이 지역은 터키, 시리아, 이라크, 이란과 국경을 이루며, 분리독립을 외치고 있는 쿠르드족의 근거지다. 이에 따라 하루도 평안한 날이 없는 분쟁지역으로 극도로 위험한 순간이 일상화된 지역이다. 개인여행이나 선교 목적의 방문은 매우 위험하니 절대 자제하기 바란다.
터키의 지즈레(Cizre, 터키식 발음)라는 도시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티그리스문명의 발상지다. 도시 중앙을 티그리스강이 관통한다. 티크리스강은 곧 댐 건설이 완공되면 수몰될 아시리아 문명지인 하산케이프를 거쳐 시리아 북부 코바니에 이른다. 코바니는 쿠르드민병대와 IS의 혈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즈레 동부에 위치한 주디산(Cudi Mt)은 코란과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있었던 곳이라 명기돼 있는 점이다. 구약성서에도 이곳의 태초 원주민을 쿠르드족이라 하였으며 지즈레 시민은 자신들을 ‘노아의 후손’(Cizre Nuh)이라고 믿고 있다.
쿠르드족은 주디산을 자신들의 시원(始原)이라 여기며 정신적 요람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1980년대에 서구의 탐사가들이 이곳에서 600km 이상 떨어진 아라랏산(Ararat Mt)에 노아의 방주가 발견되었다고 발표했다. 이를 토대로 노아의 방주는 이슬람과 쿠르드족을 배제한 채 기독교 역사로 편입됐다. 필자는 헛웃음이 안 나올 수 없었다.
이는 터키정부의 쿠르드족 말살정책과 더불어 서구기독교 세계에 주는 하나의 선물이라 여겨지며,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뒤덮으려는 제스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지즈레에 이르는 길은 시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심지어 어떤 지역은 길가에서 50m도 안 되는 가까운 곳에 철조망으로 국경이 연결돼 있다. 버스 안에서는 밤새 정치 얘기로 떠들어대는 중년과 청년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내가 그들의 얘기를 이해하는 듯한 표정을 지을 즈음, 청년 하나가 누군가의 사진을 보여준다.
그는 내게 “압둘라 오잘란을 아느냐?”고 묻는다. 주저없이 “그래!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는 “오잘란은 테러집단 PKK(쿠르드인민사회주의당) 총수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번엔 그들이 내게 물었다. “터키인들이 존경하는 케말 아타튀르크 즉 케말 파샤가 저지른 쿠르드족 학살을 알고 있느냐?” 그러면서 그들은 “우리한테 케말이야말로 테러리스트이고 압둘라 오잘란은 우리의 영웅”이라고 거침없이 얘기한다.
나는 그때 정신이 버쩍 들었다. ‘그래 드디어 터키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쿠르디스탄에 들어왔구나’.
프랑스 유력지 <르 몽드>는 21세기 넬슨 만델라의 위치에 오를 만한 인물로 테러리스트 압둘라 오잘란을 꼽았다.
오잘란은 PKK 총수로 은밀하게 러시아의 지원을 받으며 무장투쟁을 하다가 1999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CIA와 터키 정보국에 잡혀 아직까지 16년째 옥살이를 하고 있다.
오잘란 생각에 사로잡힐 즈음 어느덧 버스는 지즈레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그들은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시리아와 이라크 국경을 넘기 위해 차에 오른다. 나만 혼자 남았다. 새벽 도시는 적막하고, 셔터가 내려진 가게 벽과 셔터에는 시리아 코바니에서 쿠르드민병대와 IS의 전투를 응원하는 문구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여타 도시와는 달라도 많이 달라 보인다.
갑자기 어디선가 낡은 오토바이를 탄 청년이 나타난다. 상처투성이 몰골에 낡은 군복을 아무렇게나 걸쳤다. 청년이 슬그머니 내 모습을 빤히 쳐다보더니 사라진다. 나는 유령과도 같은 모습에 화들짝 놀라 몸이 움츠러진다. 꿈인지 생시인지 가늠도 못할 상태에 잠시 빠져들었다.
새벽의 파아란 안개는 마치 포연처럼 느껴졌다. 전쟁터의 한가운데로 내몰렸다는 공포가 나를 휩싸고 있다. 어디선가 날라올지 모를 총탄에 바짝 긴장하여 발을 내딛는 순간마다 공포 또 공포가 엄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