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분쟁지여행]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이야기②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의 도시와 거주지는 10월이 되면 안개에 갇히게 된다. 한치 앞도 가늠하기 힘든 안개는 그들의 잔악했뎐 전쟁의 역사와 그로 인해 변해 버린 추악한 인간의 삶을 일거에 감추게 만든다.

그렇다. 그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이방인에게는 치부를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난 그들이 보여 주고자 하는 것들만 보고 돌아가는 여타 관광객들처럼 오래된 기독교 초기교회와 조악한 물건이 드문드문 놓여 있는 박물관에나 가야 할 것이다.

수도 스테파나케르트 중심에 있는 박물관의 모습. 공화국이 국가로 인정받기 위한 당위성을 부여받기 위해 조악한 물건을 드문드문 전시해 놓았다.

들어가서 사진을 몇장 찍었지만, 역시나 진본을 의심케 하는 고서적과 청동기 유물들이 널려 있었다. 난 이런 곳이 싫다.

만들어진 연대를 알 수 없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라는 박물관의 조악한 유적을 떨쳐버리고 다른 박물관 입구에 닿았는데 여긴 입구부터 심상치 않다.

플라스틱 욕조에 담긴 썩은 빗물과 낙엽들이 체르노빌을 연상시킨다.

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니 좀 분위기가 이상하다. 여긴 박믈관이 아니다.

모든 게 부족한 이곳에 골동품을 수집한다는 것은 사치 스러운 취미거늘, 집 주인은 오랜 세월 수집에 많은 시간을 보냈음이 감지된다. 부족한 공간은 호두 배 감 등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치장을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나빠지는 게 인생 아니던가?

난 이곳을 꾸민 주인이 궁금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하여 인생을 거의 다 허비한 사람 말이다. 그는 나와 같은 부류이고 나랑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잘 통할 것이라고 느껴진다.

러시안 스타일의 니들 포인트를 의자에 얹은 의자.

우리가 수집하는 앤틱 가구나 소품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도시화와 핵가족의 탄생으로 필요했던 도시형 가구와 소품이 주를 이루다 보니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서유럽에서나 발견할 수 있고, 대부분 농노의 신분이었던 러시아의 농촌에서는 이런 물건조차 구경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 정도 물건이면 굉장한 안목과 수집 열망이 만들어낸 것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위의 밑이 뚫린 역피라미드형 돌에 물을 부으면 한나절 지날 즈음 아래에 정제된 물이 모아진다. 그들은? 이를 ‘광천수’라고 부르며 “건강에 좋다”고 말한다.

드디어 이곳 주인장인 그를 만나게 되었다.

예고한 대로 그는 나를 보고? 한 눈에 친구임을 직감한다.

그는 나에게 커피와 과일을 내어주며 자기 얘기를 한다.

그는 어릴 적 이곳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따라서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타타르계 여인을 만났다고 했다. 그녀와의 사이에 아이를 낳고 키우다 이혼하고 두번째 결혼을 러시안계 여성과 했다가 또 이혼을 하였다고 한다.

카자흐스탄에서는 공장 노동자로 일하다 그만두고 선대의 집이 있는 이곳으로 돌아와 혼자 살고 있다. 예전 소비에트연방 시절에는 자유로이 이곳 저곳을? 왕래하였는데, 이제는 여러 나라로 쪼개져서 갈 수 없음이 안타깝다고 했다.

커피와 과일을 얻어 먹고 뭔가 사례를 해야 하는데, 그에게 돈을 건네는 것은 드문드문 찾아오는 여타 관람객과 다름이 없고, 이미 우리는 마음 속 깊이 친구가 되었기에 난 그에게 준비해간 아이팟을 선물로 건넸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그가 집안 가득찬 앤틱과 소품을 정리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오버랩 되었기에 선뜻 건넬 수 있었다. 그는 이런 물건을 본 적이 없다며, 어디에 쓰는 물건이냐고 여러 질문을 퍼붓는다.

대충 사용법을 일러주고 나는, 그에게 다시 한번 말을 한다.

“난 당신이 모은 아름다운 수집품과 더불어 클래식 음악에 묻혀 사는 모습은, 그전보다 더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삶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잘 있어 친구!”

그가 따라 나오며 손님을 위한 방을 보여주며 내년 여름에 여기 와서 묵으라며 분주하게 말을 붙인다.
그렇다. 그는 헤어지기 싫은 거다. ‘나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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