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분쟁지 여행] 그루지아에서 아르메니아로
이 그루지아 아주머니의 이름은 이르마이다.
법대를 나와 경찰에서 검사로 재직하고 있는 파워우먼이다.
지난 번 방문 때는 어울리지 않게 나에게 애교를 부리더니 이번에는 긴 여로에 지쳐 더럽고 병들고 힘없이 나타나서인지 냉대(?)를 한다.
역시 남자는 힘이 좋아보여야 하나 보다. 이젠 나와 친구가 되어 세상 사는 얘기를 하던 중 그루지아 남자들의 평균수명이 너무 짧다는 얘기가 나왔다.
특히 보드카를 대낮부터 들이키는 음주문화가 그 원인이기도 하고, 마피아가 아니면 돈을 벌기 힘드니 그렇기도 하단다.
실례로 그루지아 북부의 흑해에 위치한 포티라는 도시에서는 핵원료인 플루토늄과 세슘 등이 제3세계로 수출되는데 그 한몫을 마피아가 담당하고 있다.
이제 며칠 지나니 몸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떠날 때가 되었나 보다. 친구들이 며칠 더 있다 가라고 하지만 너무 편한 곳에 있으면 여행이 종료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떠나기로 작정한다.
출발 원점인 아르메니아로 다시 돌아가자.
케티 기요르기 이르마의 만류를 뿌리치고 아르메니아 귬리로 들어섰다.
귬리는 러시아 102기갑여단이 주둔함으로써 남카프카즈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지역이다.
이곳은 과거 러시아가 오스만투르크, 페르시아, 영국 등과 끊임없는 전쟁 끝에 우위를 확보한 지역이기도 하고 현재도 군사도시 역할을 하고 있다.
숙소 구하기가 어렵다는 정보가 있어서 동분서주했건만, 곧 포기하고 만다.
날이 어두워지면 유령의 도시처럼 사람도 구경하기 힘든 칠흑같은 도시가 된다는 정보가 있었기에 터미널로 서둘러 발길을 옮긴다.
수도 예레반으로 향하는 길에 역시 아르메니아인 특유의 거짓말에 속아 차삯을 두배나 주어야 했다.
내가 짊어지고 있는 가방삯을 내라는 거다. 승객들도 한통속이 되어 나를 몰아세우는 바람에 거의 뺏기다시피 돈을 주고 만다.
나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아르메니아에 온 것이다. 교회에 가서는 오직 자신만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 그 땅에 도착했다.
수도 예레반에 도착하여 하릴없이 길거리를 걷는데 보기 드문 일본인처럼 보이는 동양인 아가씨가 보이기에 먼저 아는 척했더니 오! 한국인이란다.
사진은 일본인인 줄 착각했던 한국인 자매가 다니는 대학 건물.
수도 예레반에는 다섯명의 한국교민이 살고 있는데 그들을 만난 것이다.
영희와 보희는 잠깐 길거리에서 대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통했다. 아르메니아 및 전체 카프카즈의 역사와 지정학적 위치에 기반한 국제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필자가 이곳에서 1인 NGO역을 수행하는 사실을 긴 설명 없이도 곧바로 이해해준다.
매우 총명한 한국 아가씨들과 만나니 기분이 들떠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데, 갖고 있는 핸드폰을 보니 우리나라에선 십수년 전에 유행하던 것이다.
아르메니아 경제가 워낙 열악하고 수입 관세도 높고, 우리네 스마트폰은 매우 비싸 그렇단다.
그래 바로 너희들이다. 미국에 사는 D양이 협찬한 태블릿PC를 자매에게 건넨다.
길에서 만난 아저씨가 건넨 선물을 기꺼이 고맙게 받아준 영희 보희 자매에게 감사인사를 전한다.
그렇다. 봉사는 내가 베푸는 것이 아니라, 봉사를 통해 내가 배우는 것이다.
며칠 후 김장을 담근다는 자매의 연락을 받고 그녀들 집에 초대받아 오랜만에 겉절이 김치에 수육을 곁들여 한잔하는 호사도 누렸다.
시간은 지나서 모험은 없어지고 안락함만 존재하는 여행이 되고 있다.
다시 떠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