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분쟁지 여행]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 이야기
아제르바이잔 vs 아르메니아 갈등이 씨앗
구소비에트연방 해체 후 아제르바이잔 내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는 많은 수의 아르메니아인이 살고 있었다. 그들의 독립을 지원하는 정교를 믿는 아르메니아와 이슬람을 믿는 아제르바이잔 간의 지역 갈등이 일어 이것은 국가간 전면전으로 확대되었다.
1990년대 초반 막을 내린 전쟁에서 수적으로 우세한 아제르바이잔은 구소비에트 시절 석유 시추와 관련된 공병 출신들이었다. 반면 아르메니아는 숫자는 적었지만 보병 출신의 전투병이 대부분이라 전투력에서 우위를 점하였다.
이에 불리함을 극복하고자 아제르바이잔 내무장관은 특명을 갖고 무자헤딘과 접촉하여 체첸과 아프가니스탄에서 경험을 쌓은 무자헤딘 등 용병을 전장에 투입했다. 하지만 승기는 기울어지지 않았고 그대로 아르메니아가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빼앗고 승리하기에 이른다.
실례로 나고르노카라바흐 슈시라는 도시전투에서 무자헤딘이 슈시를 탈환하는데 성공하지만, 다시 반격하는 아르메니아와의 슈시 전투에서 300여명의 무지헤딘을 남겨두고 아제르바이군은 모두 줄행랑쳐 오합지졸 행태를 보인다.
종교 민족 정치 얘기는 절대 금물
전쟁 중 인종청소를 구실로 방화 약탈 살인 강간?학살을 했던 지역은 서로 상대방의 종교와 민족을 혐오하고 있다. 따라서 현지 방문시 이에 관련한 대화는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현재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을 인정하는 나라는 전 세계 국가 중 유일하게 우루과이 뿐이다.
카프카즈지역에 종교와 민족적 갈등을 유지하게 만들어 자국의 영향을 극대화하려는 러시아의 입김이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90년대 초반 유고연방 보스니아와 더불어 유럽에서는 각종 매스컴에 연일? 카라바흐공화국의 전쟁이 뉴스에 올랐으나 우리나라 언론은 이에 무관심해 이 사실을 아는 이가 거의 없다.
사진은 아르메니아 예레반에서 발급받은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 비자와 거주지 신고증이다.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의 비자가 여권에 있으면 아제르바이잔의 입국이 불허된다. 이스라엘 입국 스탬프가 있으면 이슬람 국가를 여행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항공편은 이용하기 힘들고 버스로 수도 스테파나케르트에 닿을 수 있으나 현지 여행시 대중교통으로는 불가능하고 전세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그 가격이 만만치 않다. 여행 때 민족, 종교, 정치 얘기는 극도로 삼가야 하는데, 자칫하면 매우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레스토랑이나 호텔도 없어,?민박 사전 예약 필수
나라 전체가 산악으로 둘러 쌓여 여름에는 피서로 좋겠지만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려 고립되는 지역도 있다. 숙박은 여행자로서는 구하기 힘드니 예레반에서 미리 민박을 예약해야?하고 호텔은 거의 없으니 유념하시길.
언어는 아르메니아어와 러시아어는 통용되지만 영어는 구사하는 이가 거의 없다.
레스토랑은 거의 없고 찾기도 무척 힘들다.
드디어 카라바흐 공회국 수도 스테파나케르트에 도착했다.
이곳은 남카프카즈 산맥의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는데, 필자가 도착한 11월은 안개가 걷히는 날이 드물고 비가 많이 와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사람들 얼굴은 경직되어 있고 차갑다.
스테파나케르트는 큰 대로 하나를 두고 상가와 주택들이 늘어선 형태로, 곳곳에 가벼운 무장을 한 경찰들이 지키고 있어 두렵기도 하지만 치안은 별로 염려가 안 된다.
도시를 둘러보며 행정관저가 몰려 있는 중심으로 이동하며 보니 경찰이 10m 간격으로 2인1조 짝을 이뤄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대통령궁은 촬영이 금지되고 국회의사당은 경찰에게 허락을 받아야 촬영이 가능하다.
오스트리아 나그네와 밤샘 무용담
하루 동안 너무 긴장하여 민박집에서 일찍 쉬기로 하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분쟁지역을 주로 여행하는 오스트리아에서 온 ‘거드’라는 이름을 가진 서른다섯 미혼의 친구가 동행이 되었다. 서로의 여행 무용담에 밤이 깊어 간다. 아프가니스탄 살랑그패스 그리고 투르크메니스탄 여행길에서 만났던 탈레반 민병대와 무자헤딘 얘기에 거의 새벽이 되어서 잠을 이룬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여정이 무탈하기를 빌며 어느새 꿈 속으로 빠져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