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분쟁지 여행] “가이드도 가디언도 없이 간다, 죽음의 땅으로”
다음 행선지인 나고르노 카라바흐 공화국을 가면서 이 두 사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좌측은 이븐 알 하타브 오른쪽은 샤밀 바사예프.
하타브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으나 뜻한 바 있어 당시 러시아와 전쟁 중이던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캠프에 합류했다고 한다.
무자헤딘캠프에서 그는 각종 화기술, 폭파, 테러, 게릴라전술을 교육받고 무자헤딘 전사로 거듭난다. 이후 그는 와하비(이슬람평화유지군)가 되어 타지키스탄 내전, 보스니아 내전, 나고르노 카라바흐 내전, 이라크 내전 등에 참전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이어 샤밀의 권유로 1, 2차 체첸 내전에 참전하여 러시이와의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다가 알 카에다와의 연계설로 러시아 정보부의 암살로 생을 마치게 된다.
샤밀 바사예프는 제2의 체 게바라라 불리는 체첸의 군인이자 총리까지 올랐던 잔인한 테러리스트다.
러시아 여객기 납치사건, 북카프카즈병원 인질사건, 모스크바 극장 인질테러사건 등을 배후 조종하고 하타브와 같이 러시아의 강력한 군사력을 비웃으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모스크바에서 자행한 열차 및 아파트 폭파사건 등 무려 400여 아이들 목숨을 앗아간 북오세티야 베슬란 학교 사건은 반인륜적인 범죄로 기록되어 체첸 내 그의 입지를 좁게 만든다. 그 역시 고인이 되었다.
용서할 수 없는 테러리스트이자 러시아에겐 불구대천의 원수이건만 그들에겐 모든 것이 지하드 즉 성전이었던 것이다.
바로 그들 샤밀 바사예프와 하타브가 처음으로 만난 곳이 지금 소개하는 나고르노 카라바흐 공화국의 슈시 전투에서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의 국지전에서 전면전으로 펼쳐진 나고르노 카라바흐 전쟁은 서로에게 인종청소라는 반인륜적인 범죄를 자행함으로써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카프카즈에서는 외국인을 납치하여 몸값을 요구하거나 응하지 않을 경우 손을 잘라 보내거나 그래도 응하지 않을 경우 참수를 하던 지역이다.
지금은 나아졌다고는 하나 어떤 상황이 닥칠 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 그래도 나는 내일 그곳으로 떠난다.
내 개인의 안전은 이제 물건너 갔다.
난 최소의 안전망도 없고, 가이드나 가디언도 없이 전세차량도 아닌 길거리에 팽겨쳐져서 고스란히 노출되는 어느 한 개인의 육신일 뿐이다. 모든 걸 몸으로 받고 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그때까지 부끄럼 없이 살겠다는 하늘에 대한 기도만이 있을 뿐이다.
눈물이 어느새 흘러 뺨을 적신다. 그것이 감격의 눈물이든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흘리는 눈물이든 자아도취의 눈물이든 눈물이 없으면 그건 여행이 아니다.
이제, 여행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