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분쟁지 여행] 아편 ‘헤시시’를 피하다가···

오래 전 캐나다 오타와에 있을 때입니다. 현지인의 파티에 초대 받은 적이 있었지요. 한참 와인과 맥주를 마시다가 여주인이 저를 방으로 이끌더니 약장을 열어 보입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대마초 오일 열매 등이 담긴 밀폐된 비닐팩이 수십개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랑스러운 미소를 짓습니다. 저의 너무 놀란 모습이 그녀에겐 경외의 모습으로 비춰졌겠죠.

그렇습니다. 마약 최대 생산지인 아프가니스탄의 아편 헤시시가 비밀루트인 이란을 통해서 유럽과 중동 지역으로 퍼져 나가고, 이는 다시 전 세계로 뻗어 나갑니다.

음주는 이슬람법으로 엄격히 금지되기에, 저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혹시나 누군가 마약을 권하지 않을까 내심 고민했는데, 어젯밤 여러 무리의 대학생들과 어울려 그들의 집에 방문했다가 그 일이 닥쳤습니다.?한번 권하고는 더 이상 권하지 않았기에 다행히 자리에 편하게 있을 수 있었습니다.

몽롱해지는 그들의 눈빛을 보며, ‘아, 더 이상 머무르면 안 되겠구나’?생각하며 일어서는데, 헤시시를 피우지 않은 친구들이 하나둘 옷을 입더니 저를 데려다 준다고 합니다. 괜찮다고 하는데도 손님에 대한 예의라며 한사코 그들은 저를 숙소까지 데려다 줍니다.

고마운 친구들입니다.

바히드를 찾습니다. 그와 만났던 찻집에 들러, 혹시라도 그의 친구들이?있을까 찾습니다. 내일은 이곳을 떠나야 하는데….

어젯밤에 자리에 누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다가, 찻집의 실내가 생각납니다. 100여명도 넘는 남자들이 빼곡히 앉아서 담배와 물담배를 연신 피워대는 통에 실내는?담배연기로?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습니다. 고함 지르는 종업원 등 모두가 입을 열어 얘기하는 광경 속에서 한사람의 모습을, 그의 동선을 끄집어냅니다.

단 것을 좋아하는 이란인들의 케이크 모습입니다.

그리고 늦은 저녁이 되어서 마침내 저는 바히드를 찾아냅니다. 저는 반가우면 욕을 합니다. “썬 옵”하면서 그를 반깁니다.

이 사진은 바히드와 관련이 없는 사람입니다.

울산 올림피아호텔 권상엽 대표가 건네준 태블릿PC를 전달했습니다.

이슬람을 열심히 믿는 바히드입니다. 3500만 아제르바이잔 민족이 사는 이란의 북부, 그들의 중심지인 타브리즈에서 만났습니다.

전날 그를 티하우스, 즉 몇백명이 빼곡히 앉아 차를 마시고 담배를 피고 열띤 토론을 펴는 곳에서 만났습니다. 여러 친구들과 합석한 저는 통역을 자원한 바히드와 많은 얘기를 하는데 이 친구, 예사롭지 않습니다. 아주 날카롭습니다.

날이 시퍼렇게 선 질문이 날아 와 답해주면 또 다시 질문이?오는데, 추궁이 아니라 내면 깊은 곳을 건드리고 흔듭니다.

이래저래 얘기하는데 몇 달 전 아버님을 여의고 마음이 무척 힘든가 봅니다. 마음 속에 뭔가 분노같은 것도 느껴지더군요.

그러다 민족 얘기를 하는데 자기네는 터키인 즉 오스만투르크의 후예랍니다. 러시아가 이렇게 갈라놓아 지금은 이란에서 제대로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며 산다는 겁니다.

즉 아제르인은 터키인이고 아제르바이잔은 북아제르바이잔이며 자기네는 독립하지 못한 남아제르바이잔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수백명이 떠드는 티하우스를 떠나 더럽고 불결한 숙소에서 낮 동안 일들을 생각하며 누웠습니다.

아 그런데, 제 뒤통수를 치는 뭔가가 느껴집니다.
티하우스 입구에 주로 앉아 있는 연장자들이 가끔 바히드를 불러 얘기를 나누고 또 원로들이 그에게?신뢰의 눈빛을 보낸 것. 그리고 나와 대화를 나눌 때?질문을 예의 경청하는 그의 자세. 그리고 뭔지 모르게 느껴지는 가슴에 품은 칼 그리고 분노.

바로 그런 부분이 제 뒷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어쩌면 이 친구가 큰일을 저지르겠구나. 어쩌면.
해서 그 다음날 수소문하여 천신만고 끝에 그를 찾아 태블릿PC를 건넸습니다.

가난한 스물다섯의 바히드는 상기되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저는 마음 속으로 얘기합니다. “난 네가 무슨 일을 할 지 안다. 난 네 가슴 속?분노가 느껴진다. 근데 돌아가신 아버님이 진정으로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라. 그리고 선물을 너에게 주는 것은 그냥 하나님만이 아실 것이다. 이것은 나의 결정이 아니다.”

놀라서 상기되어 있는 그와 몇 번의 포옹 그리고 너무 고맙고 애잔한 표정을 짓는 그의 눈빛을 저는 과감히 떨쳐내고 이란을 떠납니다. 나중엔 알게 되겠지, 이해하겠지 이런 나의 미친 짓을….

‘휴우….’
이제 이란을 떠납니다.

호텔에서 일하며 먹고 자는 두 소년의 사진입니다.

전주비전대 김인철 교수님이 협찬한 티셔츠 두벌을 주었습니다. 비록 작은 선물이지만 그들도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느끼기를 마음 속으로 기원합니다.

이란 여행의 단점은 깨끗한 숙소를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없다는 것. 또 하나는 길거리에서 음식점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저 정도면 콜라의 힘을 빌어 비위를 참아가며 잘 먹을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에 얼렁뚱땅 1인 NGO라 칭하며 왔기에 좋은 음식이나 침대 등은 바라지 않습니다.?낮은 자세로 현지인을 바라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높은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현지인에게 봉사를 한다면 좀 어울리지 않을 듯합니다. 길거리를 걸어다니며 그들보다 더 낮은 곳에서부터 그들을 바라보면 어느새 그들과 나는 하나가 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루미에로 이동했습니다. 이곳 우르미에엔 동방박사 교회 등 기독교 초대교회들이 있습니다. 또한 우루미에는 이스라엘의 사해처럼 유명한 ‘우루미에호수’가 있습니다.

교회를 가려고 했는데, 지금 이 더러운 차 내부에서 씻지 않아 냄새를 풍기는 택시기사가 그냥 지나쳐버리는 바람에 몇 년 만의 교회 방문은 취소됩니다. 더욱이 택시기사가 얼마 가더니 머리 아프다며 돈은 받아 놓고 못 간다고 합니다.

아무리 이란 무슬림들이 예의와 명예를 중시한다 하지만 이런 이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 잘 달래고 협박해서 돈을 일부 돌려 받고, 택시를 무려 일곱 번 갈아타고 이란과 터키 국경에 다다릅니다.

뭘 좀 먹고 국경을 건널까 합니다. 이란-터키 국경지대의 한 호텔에서 일하는 아이입니다.

낮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하였는지, 옷에서 쉰내가 진동을 합니다. 김인철 교수님이 협찬한 티셔츠 한 벌을 또 선물로 줍니다.

그리고는 저는 화가 납니다. 이건 명백한 아동노동력 착취입니다. 일부 힌두교 및 이슬람국가에서는 국제구호단체의 구호활동을 원칙적으로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가진 이슬람과 힌두교 안에서 그들을 구호하는 사회적인 시스템이 있다는 논리입니다. 조심스럽지만 전 감히 말합니다. 많은 아이들이 노동과 성착취에 인간성을 잃어간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의 종교지도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고 싶습니다.

짧은 이란여행을 마치고 터키로 넘어갑니다. 멀리 아라랏산이 보이는 터키의 국경도시 도우베야짓입니다. 이곳은 노아의 방주 흔적이 남아 있는 아라랏산의 트래킹 시발지이기도 하고, 아름다운 이삭파샤궁전이 있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사진에 멀리 아라랏산이 보입니다.

전 그냥 이 지역을 지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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