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분쟁지 여행] 그루지아서 만난 싱글맘
지난 밤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렸다.
장시간의 차량 이동으로 체력이 고갈되기도 하였지만 사실은 이곳 그루지아에서 겪은 기억이 악몽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때는 2008년, 그루지아의 남오세티야에 살고 있는 소수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러시아가 침공하여 전쟁이 발발했었다.
핑계야 그렇다지만 사실은 인근 아제르바이잔 바쿠유전에서 나오는 원유 송유관이 지나는 그루지아가 친서방정책으로 돌아섰기에 이를 응징하기 위하여 푸틴의 군대는 계산적으로 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당시 나는 수도 트빌리시를 여행하고 있었는데 길거리에서 느껴지는 그루지아인의 이방인을 향한 적의와 욕설 그리고 길거리에서 반복되는 경찰의 검문 그리고 잠시라도 방심하면 폭력으로 이어질 당시의 군경들에게 공포를 느껴야 했다. 그것이 악몽의 이유였던 것이다.
현재 트빌리시는 서유럽의 여타 도시만큼 아름다움을 뽐내며 평온한 나날의 연속이다.
그루지아는 경비가 충분치 않은 젊은 여행자에게는 최고의 선물을 선사한다. 훌륭한 음식에 전세계 최고의 와인을 터무니없는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도 있고 저렴한 숙박 및 교통비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인근 국가와는 달리 특별한 지하자원이 없는 농업국가이기에 정부에서 외국인관광 유치에 상당 부분 신경을 쓰다 보니 여러 부분이 많이 개선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가난한 여행자에게 권하고픈 최고의 여행지라 할 만하다.
현존하는 세계 최장수 지역은 카프카즈 지역이라는 것을 인지한 일본의 학자와 기업의 연구원들이 일찍이 뛰어들어 장수의 비밀을 알고자 했으니 오랜 연구 끝에 그들은 장수의 비결 중 하나인 유산균 음료 즉 카프카즈 장수 지역에서 음용하는 요구르트의 균주를 수입하여 상품화했다. 그것이 카스피 요구르트다.
그 외에 그루지아 보르죠미라는 지역에서 나오는 보르죠미 광천수는 풍부한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다. 실제로 감기 몸살과 알레르기, 류머티즘 및 신경통에도 효능이 좋아서 병원에 가면 의사선생님이 보르죠미를 많이 마시라고 한다. 필자는 여름날 짭조름한 보르죠미에 레몬을 띄워 마셨던 독특하고 상쾌한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당신이 와인 애호가라면 2차대전 직후 스탈린이 처칠에게 360병의 그루지아 와인을 선물로 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소량 생산되는 그루지아 와인은 러시아에서 전량 수입하여 소비되었으나 현재 양국간에 불협화음으로 수출이 중단되었으니 모스크바에서는 그루지아 와인을 수입해 달라는 애호가의 요청이 거의 폭동 수준이라고 한다. 모스크바 시민들은 체첸 마피아를 통해 암시장에서 고가로 매입하여 마시고 있다는 후문이다. 만약 독자께서 그루지아에 가신다면 반드시 드셔 보시길 강력 추천한다.
소년의 이름은 기요르기, 엄마는 케티라는 이름을 가졌다.
케티는 싱글맘이다. 현재는 조금 안정된 직업을 가졌지만 지난 번엔 월급도 제대로 주지 않는 회사를 다녔다 한다. 몇달째 월급이 밀려서 이를 사장에게 말하면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하는 것이 이곳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티는 기요르기를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소비에트연방에서 빠져나온 신생독립국인 그루지아에서는 젊은이의 실업률이 상당히 높다. 이는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농업국가이기에 그렇다. 젊은 남자들은 일자리를 찾으러 동분서주하지만 곧 실의에 빠지고 음주에 빠져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외견상 상당히 나이 들어 뵈는 특징이 있다.
그러다 보니 남자들은 한곳에 오래 정착하지 못하기에 자연스레 모계사회가 되어버린다. 스물일곱 나이의 케티가 그런 케이스다. 보기 드물게 영어도 잘하고 똑똑한 젊은 여성이건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어디 싱글맘이 고달픈 게 그루지아 뿐이겠냐마는….
케티는 대학을 졸업하고 영어와 러시아어를 능통하게 구사하지만 월급은 우리네 돈으로 20만원 가량 받는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하는 현실이기에 나는 태블릿PC를 건내면서 한마디 던진다.
“케티~난 말야, 네가 싱글맘으로 바쁘고 힘들고 가난하게 살아가지만, 너도 이런 물건을 갖고 멋지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보고 싶어. 넌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니까.”
내가 엄마와 이런 얘기를 주고 받는 모습을 본 기요르기는 나에게 안겨온다. 그리고 그렁그렁한 큰 눈으로 내 눈을 똑바로 보며 학교에서 배운 영어로 땡큐라고 하는 모습에 하마터면?눈물을 흘릴 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