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푸틀러’를 아시나요?
‘말레이기 피격’ 책임 회피 푸틴, 히틀러 닮으려나
스탈린은 절대적 독재자였다. 비밀경찰 책임자 야조프는 스탈린의 모든 악행의 집행자였는데 후임자 베리아에 의해 처치되었다. 베리아는 자신도 마침내 야조프의 운명이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스탈린이 죽던 마지막 순간은 베일에 가려져 있으나, 마지막 숨통을 끊은 것은 경호실장을 제외하고 스탈린에 접근이 가능한 자였을 것이라는 점에서 베리아를 지목하는 추정이 냉전시대에 유행하였다. 숙청 다음 목표는 베리아였다. 베리아는 모두의 공적이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말렌코프였다. 그 다음은 몰로토프, 카카노비츠, 쥬코프 등이 차례로 숙청되었다. 흐루시쵸프가 최종 승자가 되었다. 이 정치흑막은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절대자 스탈린의 숨통을 끊은 것은 가장 가까이 있었던 자였다는 것이다.
이는 박정희에게 ‘야수의 심정으로’ 총을 쏜 자가 정보부장 김재규였으며, 김일성이 김정일에 의해 운명이 앞당겨졌을 것이라는 음모설과도 맥락이 일치한다.
말레이시아 항공기 격추를 위요(圍繞)한 푸틴의 행보는 KAL기 격추를 둘러싼 안드로포프와 일치한다. 누가 보아도 명백한 일에 대해 오불관언(吾不關焉)으로 일관한다. 시간이 지나면 잦아들겠지 하며 딱 잡아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두고 서방측이 즉각적인 반격을 가하지 않은 데에 대해 ‘그러면 그렇지’라고 안심했겠지만, 유럽 제국은 권토중래, 장기전으로 푸틴의 명줄을 조르는 방법으로 나왔다. 이는 속도와 규모만 줄였을 뿐 레이건이 소련을 멸망시키던 전략 그대로이다.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이 공급한 스팅거 대공 미사일이 안드로포프에게 악몽이었다고 하면 러시아군에 의해 우크라이나 반군에 지급된 부크 미사일이 푸틴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 러시아 시민은 “(러시아)정부가 부끄러워서 이 자리에 나왔다. 이번 사건은 반군을 지원하는 국가가 주도한 테러”라고 비판하였다고 한다. 21세기 문명세계에서 푸틀러(푸틴+히틀러)가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영·불·독은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한 푸틴의 추가조치가 없으면 강력한 추가 재제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이 대러 공세의 중심에는 독일이 있다.
독일은 이제 양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이 아니다. 동독 출신의 메르켈 수상은 국내외적으로 확고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월드컵은 독일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브라질을 완파한 전차군단의 조직력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다수의 이주자 출신 선수는 독일 사회의 포용력을 과시하였다. 독일인은 영국을 제외하고는 같은 유럽인에 대해서도 우월감이 강하다. 이제 독일은 널리 유럽을 포용할 수 있는 대국이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베 류의 일본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우슈비츠에서 털썩 무릎을 꿇은 브란트는 나치에 저항하던 지식인이었으나 아베는 조슈한(長洲藩)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는 데서 아예 그 종자가 다른 것이다.
김정은이 고르바쵸프의 글라스노스트나 페레스트로이카는 아니더라도 냉전시대 브레즈네프의 동·서 데탕트라도 시도할 수 있는가는 주변국 모두의 관심사이지만 한국으로서는 대북정책의 목표가 된다. 2인자 장성택은 사라졌지만, 노련한 대남책략가 김양건이 아직 살아 있는 것이 주목된다. 그가 명목상의 국가원수 김영남 등과 더불어 스탈린 이후의 흐루시쵸프와 같은 과도시대를 열지는 두고 보자. 브레즈네프, 고르바쵸프는 그 다음이다.
통일준비는 무엇보다도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온 대북 경험, 인적 자원이 총동원되어야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의지, 책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