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분쟁지 여행] 아르메니아 예레반의 두 소녀
‘늙은 히피’의 여행기를 시작하며
연말에다 대통령선거로 어수선한 어느 날, 아시아엔(The AsiaN)?차재준 이사를 서울시내 허름한 일식집에서 만나 내 특유의 협박을 늘어놓았다.
“나 글 쓸 테니, 글 실어줘.”
순간 난색의 표정을 짓는 그를 놓치지 않고 재차 협박한다. “실어줄껴, 말껴?”
“그럼 이메일로 쓰신 것을 먼저 보내주십시오” 한다.
본디 글을 써본 적이 없는 내가 무슨 글을 쓴다고 그를 다그쳤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되지만 나름대로 항변을 늘어놓자면 좋은 일 하는데 많은 이가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 나의 희망사항이다.
글을 써본 적도 없고 사진은 조리개 노출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음식사진이나 멋진 와인을 소개하는 블로그를 만들 때도 난 워낙 금욕을 요구하는 부모님의 교육으로 인해 와인도 모르고 음식도 그냥 대충 먹는다.
여행기를 기고하려는데, 음식과 와인은 빠져야 하고, 그럴싸한 사진도 없고, 멋드러진 글도 쓸 줄 모르니, 이런 여행기가 읽히겠는가? 하지만 내가 잘하는 짓(?)이 있다. 난 그걸 쓸 것이다. 기대하시라, 그 짓이 뭔 짓인지.
나는 늙은 히피다. 25년 전부터 학업, 이민, 직장, 사업, 여행이라는 구실로 지구촌 곳곳을 다녔다.
물론 나는 극지 탐험가나 알피니스트는 아니다. 그저 그곳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생각으로 살아갈까 하는 궁금증에 많은 세월을 길 위에서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사랑하는 사람을 저 세상으로 떠나 보냈다.
그리고 나는 슬픔에 사로잡혀 정처 없이 세상을 떠돌았다. 돌아오려고 준비한 여행이 아니었건만 매번 제자리로 돌아와 또 다른 여행을 꿈꾸던 어느 날 무언가를 깨우치게 된다.
그후 나는 자칭 ‘1인 NGO’라 칭하고 조그만 선물을 준비하여 세상 끝에 가서 온정을 전하는 일을 시작하게 됐다. 다녀본 지역 중 역사, 종교, 정치, 민족적으로 가장 많은 갈등을 겪어 휴머니즘이 땅에 떨어진 지역을 선정하고 그 지역을 얼마 전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그 땅에 내 깊은 맘 속 온기를 전하고 싶어서였다.
그 지역은 코카서스 즉 카프카즈 지역이다.
코카서스(카프카즈)지역은 너무 복잡해 정의하기가 어렵다. 이 지역은 사용되는 언어만?50여 개에 이른다. 작은 자치공화국과 민족, 동방정교와?오리엔탈정교,?수니파·시아파 이슬람,?그리고 불교국가도 있다. 그들의 민족과 종교간 갈등으로 인해 균형있는 서술과 정의를 내리는 것은 내 역량을 넘는 일이다. 그점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더욱이 북오세티아, 다게스탄, 체체니아, 카라박공화국에는 아직도 분리 독립운동이 한창이기에 개인여행은 극도로 조심하고 자제해야 한다.
North Caucasus | South Caucas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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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프카즈 지역은 다음 번에 소개하기로 하고 이번 여정은 남카프카즈 지역이 중심이다.
참고로 나는 신생공화국 나고르노 카라박공화국을 다녀왔기에, 적대국인 아제르바이잔과 나흐체반공화국은 입국 허가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여정에는 포함시키지 못했다. 마치 이스라엘 입국 스탬프가 여권에 찍히면 여타 이슬람국가에 입국 못하는 경우와 같다.
아르메니아 예레반에 왔다. 그런데 왼쪽 이자와 마리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아르메니아 알라베르디에 살던 산골소녀 이자와 마리다. ?2008년 러시아가 그루지아를 침공했을 당시, 그곳에 있기가 두려워 아르메니아로 피신했다가 만났던 소녀들이다.
오른쪽 동생 마리는 오래된 피아노를 열심히 연습해 현재 수도 예레반 컨서바토리에서 피아노를 전공한다.
언니 이자는 사진에서 보듯, 8세기 경 처음 지어진 사나힌(Sanahin) 수도원 앞에서 순례객 들에게 알코올에 박쥐, 도마뱀, 곤충 등을 담아 팔던 소녀다. 그녀는 현재 예레반 의대에 진학해 의학도의 길을 걷고 있다.
산골마을에 인터넷도 안되고 컴퓨터도 없기에 내 노트북을 선뜻 선물했다. 그들과의 인연의 시작이다.
그루지아 트빌리시대학에 교직원으로 근무하는 쥬쥬(왼쪽)도 연락이 안 된다.
예레반 모 언론사에 근무하는 루진도 연락이 안 된다.
실망, 실망, 또 실망···.
늘 그렇듯이 이곳에 오면 인간관계에 많은 실망을 하게 된다. 이자와 마리는 2008년 처음 만난 이후 줄곧 도움을 주던 소녀들이었는데…. 배신감에 몸이 떨린다.
4세기 초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나라에서는 늘상 이런 일이 일어난다.
성 그레고리 일루미네이터 성당(Gregory the Illuminator Cathedral) 앞에서 하릴 없이 시간을 보낸다.
쉽게 마음을 가라 앉히지 못하고···.
Cascade(굳이 우리말로 ‘폭포’라고 옮기기보단 이 표현이 나을 성 싶다)로 자리를 옮긴다. 어서?이 동네를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고, 결정을 내렸다.
‘그래, 이란 비자 받고 어서 이란으로 떠나자. 여기 계속 있다가는 마음만 더 상처 입겠다.’
사실 출국 전 지인들에게 반협박(?) 해서 태블릿PC, 아이팟, MP3 등을 선물로 준비했었다. 이자와 마리를 만나면 선물로 주려고 했는데···. 미리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선물들은 길거리에서 만나는 다른 이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이번 여정은 이자와 마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만나기 위한 새로운 여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