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분쟁지 여행] 그루지아 국경을 넘다

터키 동부 끄트머리 도우베야짓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빠른 시간 내에 터키를 통과하여 그루지아로 입국할 예정입니다.

여긴 너무 안정된 나라라서, 너무 많은 방문을 해서 제가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거든요. 그렇다고 여행하기 안전한 지역만은 아닙니다.

이곳 터키 동부는, 삼천만 쿠르디시 민족이 스스로 쿠르디스틴이라 칭하며 곳곳에서 산발적인 분리 독립운동을 펼치는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들은 낙후된 교육, 사회적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매일 같이 시위를 하기도 합니다.

1년 전 제가 터키 동부 쿠르드족의 본산인 디야르바키르를 여행할 당시 사진입니다. 잘 보시면 붉은색과 노란색, 초록색이 섞인 스카프를 매고 있습니다.?저걸 매고 다니면서 쿠르드족에게 열렬한 호응과 환대를 받는 것은 물론 모든 식당에서 공짜로 밥도 얻어 먹습니다.

하물며?이스탄불에 들어와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탁심(Taksim)거리에서도 저 스카프를?매고 다닙니다. 터키에서 제대로 된 사회적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는 쿠르드족 출신의 젊은이들은 레스토랑과 바 등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탁심을 걸어다니며 그들의 환호에 직면합니다. 기분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기어코 사고는 터집니다.

그날 아침도 늘 그렇듯 블루모스크 주변 쿠르드족이 경영하는 식당에 아침을 먹으러?걸어가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덩치 큰 터키인이 나타나?죽일듯이 절 바라봅니다.

이유 없이 아시안을 배타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어딜 가나 늘 있기에, ‘난 너 따위의 그런 눈빛에 기죽지 않아’ 이렇게 생각하며 슬쩍 미소를 날리며?늘 앉던 자리에 가서 차(홍차)를 시켜 마십니다.

잠시 후 양복을 입은 나이든 신사와 아까 절?죽일 듯이 쳐다보던 덩치 큰 터키인이 제 옆자리에 앉습니다. 그리고 나이든 신사는 유창한 영어로 제게 말합니다. “그 스카프 좀 벗어주면 어떻겠소? 왜냐하면 그 스카프는 터키인 입장에서 보면 테러리스트의 표식이라오. 그리고 테러로 상처를 받은 이들이 있다면, 그것은 일종의 결례 아니겠소?”

순간 나는 객기에 의기양양하게 걸치고 다니던 스카프를 살그머니 벗어 가방 속에 넣습니다. 그러자 덩치 큰 친구는 인상이 약간 누그러집니다.

잠시 후 그들이 떠나고, 쿠르드족 식당종업원이 와서 그들은 비밀경찰이라고 귀띔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했던 스카프는 터키 전역에서 착용이 금지된 스카프였습니다. 제가 그동안 하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여행객이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그것을 바라보던 많은 이와 보안경찰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무리 여행을 많이 다니고 자신있다 했던 제가 자만에 빠져 제 안전에 큰 실수를 합니다.

맨 오른쪽에 있는 뚱뚱이는 저에게 버스요금을 두 배로 부풀려서 받아 챙기려다 실패합니다.

버스터미널, 식당, 찻집 등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늘 공손하고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는 것이 저의 여행 팁입니다. 그러면 분명히 그중에 한 사람은 내 편이 되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뚱뚱이가 저에게 두 배의 버스요금을 물리려는 순간 어떤 이는 저쪽 구석에 붙어 있는 요금표를 눈으로 가리키고, 또 다른 이는 뚱뚱이 뒤에서 손을 가로 젓습니다. 모두 내 편이 되는 순간입니다.

그렇다고 나를 속이려 든 뚱뚱이를 다그치는 것은 금물. 왜냐면 그는 좌석 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이죠. 그냥 놔두고 실실 웃으며 우애를 다지는 순간, 역시 그는 나를 저버리지 않고 맨 앞 편안한 좌석을 배정해 줍니다.

여러 번 버스를 갈아타고 카스(Kars)에 도착합니다.

터키 동부 끄트머리 카스는 쿠르드족이 많이 살고 있고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외국인에게 여행이 허락되지 않았던, 극렬하게 민족저항을 하던 지역입니다.

사진은 쿰베트(Kumbet) 이슬람사원에 포함되어 있는 아르메니아 교회의 모습입니다.

아르메니아가 이 지역에 잠시나마 세력을 뻗치던 10세기경의 교회입니다.

인근에 아르메니아의 유적지인 아니(Ani)라는 지역이 있지만 몇 년 전 트래킹을 하면서 보았던 지역이라서 그냥 통과했습니다.

나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은 폐허가 된 유적지일 뿐, 이런 유적지는 내 여정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내 여정엔 반드시 포함되는 동물들, 그중 가장 친근한 강아지 사진입니다. 아침에 먹다 남은 빵에 버터와 치즈를 발라서 가방에 갖고 다니다가 이렇게 길에서 만나는 배고프고 추운 아이들(강아지)에게 주는 일은 빠질 수가 없습니다.

사진은 흑해 연안에 있는 터키 트라브존(trabzon) 인근의 수멜라 수도원 사진입니다. 이곳은 박해를 받는 기독교인들이 산속 깊이 들어와 깎아지른 절벽에 세운 수도원이고 그리스정교 수도원이라, 많은 그리스인들이 이곳을 찾고 있습니다.

이곳을 지나 흑해로 나아가 그루지아로 입국을 해야 하는데, 내륙 깊숙이 숨어 있는 터키-그루지아 국경을 넘어보기로 합니다. 색다른 경치에 취해 볼 수도 있고, 여기를 건너는 몇 안되는 한국인이 될 것이라는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그루지아로 넘어 왔습니다.

터키 포소프와 그루지아 아할치헤 사이의 국경은 아름다운 경치도, 운치도 없는 한적하고 교통은 무지 불편하고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은 국경입니다.

론니플래닛 인터넷판에서 어느 외국인이 국경지역이 아름답다고 써놨던 글이 함정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루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로 가는 미니버스에 몸을 실고 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앞자리에 앉은 아빠와 소녀의 모습인데, 소녀의 모습이 좀 이해하기가 어렵군요.

그루지아에는 많은 교회가 산 정상에 있어서 차를 타고 지나가는 길에서도 교회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버스 승객들은 교회의 십자가를 멀리서 바라보며 성호를 긋고 모두 잠시 기도를 합니다.

꼭 그레고리안 정교를 믿는 신도가 아니더라도 코카서스산맥이 있는 나라 그루지아에 들어서면 누구나 신들을 만나게 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부탄과 그루지아를 천상의 나라라고 했다지요?

아빠의 무릎에 앉아 가던 소녀는 한 번도 불편하다고 아빠에게 칭얼대지 않습니다. 차창 밖을 내다보거나 아니면 아빠 얼굴에 시선을 집중하고,? 뭐라 말하니 아빠가 과자를 꺼내줍니다.

소녀는 과자를 먹으며 아빠에게 또 뭐라고 말하니, 아빠는 자신의 핸드폰을 열고 조그맣게 음악을 틀어줍니다. 닥터지바고의 ‘라라의 테마’를 아빠와 같이 듣습니다.

저도 아름다운 선율에다 여행에 지친 몸을 실어봅니다.

어느덧 수도 티블리시에 다달아 불현듯 생각이 나서, 아빠에게 허락을 받고 소녀에게 준비한 아이팟을 선물합니다. 소녀는 암팡지게 내가 준 아이팟을 놓치지 않고 사진촬영에 응해 줍니다.

그리고 꼿꼿한 자세로 저의 눈을 떼지 않고 응시할 때 저는 마음 속으로 기도합니다.

‘소녀야, 나는 네가 굉장히 집중력이 뛰어난 아이라는 걸 알 수 있겠어. 그리고 네가 좋아하던 음악은 네 나이에 아무나 좋아할 수는 없는 곡이지. 그건 네가 감수성이 뛰어난 아이라는 걸 말해주는 것이지. 아름답게 자라가는 너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나마 응원할게. 안녕~’

우당당탕 그루지아 중년의 여인 이리나가 운영하는 민박집에 도착했습니다. 여기는 여러 번 묵었기에 내 집이나 다름 없습니다.

지난 일주일간 줄기차게 차량을 타고 이동하여 몸이 천근만근, 갑자기 도착하여 밥 달라고 하니, 준비도 안 된 밥상에 파가 보입니다.

파에다 버터를 발라 빵 속에 넣어먹으니 허기도 가시고 맞지 않은 음식에 고생한 입이 호강을 합니다.

이 정도면 무척 고마워 할 일입니다. 그날 밤 나는 무리한 여정 탓에 고열과 헛소리 그리고 가위에 눌리는 밤이 보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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