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IS가담 김군 추적 현지르포①] 킬리스 국경지대 경비 한층 강화···”IS, 터키 마을에 총격도”

터키 킬리스 국경지대
터키 킬리스 국경지대

설립 1년을 맞은 IS에 대한 전세계의 이목이 따갑다. 특히 한국사회에는 김모군이 작년 말 스스로 IS에 가담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충격을 줬다. 작년 11월 김군과 비슷한 시점에 킬리스의 한 호텔에 들렀던 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가 지난 4월 김군 행적을 좇아 다시 현지를 찾아 1400km를 달리며 샅샅이 뒤졌다. 아쉽게도 김군 행적 추적에는 실패했다. 이 전문기자는 “김군아, 미안하다”라며 “꼭 너를 구하려는 내 맘은 결코 변하지 않을 거다”라고 했다. <아시아엔>은 IS가담 김모군을 찾아 시리아-터키 국경지대와 인근을 한달간 횡단한 이신석?전문기자의 현지르포를 두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아시아엔=터키-시리아 국경지대/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필자는 금년 초 IS에 가담한 것으로 밝혀진 김군을 행적을 찾아 지난 4월, 다시 터키와 시리아 인접 국경에 다녀왔다. 작년 11월, 한국인으로는 김군이 거쳐가기 가장 직전 그곳을 다녀왔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부담감을 갖고서 말이다.

4월 5일 출국해 5월 1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기까지 당시 필자의 일정은 다음과 같다.

△4월 5~9일 그루지아 트빌리시에서 아르메니아 예레반 방문 후 트빌리시 귀한

△4월 9일 야간버스로 터키 동북부도시 트라브존 향발

△4월 10일 트라브존 도착

△4월 11일 지즈레(터키 동남부 끝 지역) 도착후 숙박

△4월 13일 인근 국경도시 실로피 방문(이라크 국경이 있는 터키 국경도시)

△4월13일 산르우르파 방문

△4월14일 가지안텝~킬리스 방문 오후 2시경에 국경에서 킬리스 도시로 돌아오는 곳에서 경찰에게 연행됨. 그 지점은 상시검문이 이루어지지 않고, 필자가 탄 앞과 뒤차는 그냥 보내고 본인이 탔던 차를 바로 지목하여 여러 대의 경찰차와 20여명의 경찰이 본인이 탄 차량을 검문후 연행한 것으로 보아서, 5분 정도 떨어진 국경에서 필자가 사진 촬영 등을 할 당시 잠복경찰이 이를 지켜보고 본부에 연락한 것으로 보임.

△4월 16일 안타키아 방문(서남부 끝, 수년 전 자유시리아군 본부가 있던 곳임)

△4월 18일 비레직 방문(전투 중인 코바니와 가까운 도시)

△4월 19일 지즈레 재방문

△4월 20일 시르낙(주디산맥에 묻혀 있는 도시) 방문

△4월 21일 지즈레 다시 찾음(필자는 왕복 1400km의 터키-시리아 접경지를 다 돌았다. 교통은 야간버스 이용했다.)

△4월 23일 지즈레에서 항공편으로 이스탄불 도착

△4월 24일 이스탄불에서 야간버스 편으로 불가리아로 이동

△4월 28일 불가리아에서 야간버스로 루마니아 도착

△4월 29일 루마니아에서 불가리아 이동

△4월 30일 불가리아에서 야간버스로 이스탄불 도착

△5월 1일 인천공항 통해 귀국

김군이 IS로 밀입국한 사실을 안 올초부터 나는 김군의 행적을 좇아 그를 구하러 가려 했으나 이미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되고, 또 당시 일본 언론인 고토 겐지씨가 참수당한 터여서 잠시 중단했었다. 안 봐도 일본 보도진으로 북새통을 이룰 것이어서 목적을 이루기 어렵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지난 4월까지 근 넉달간 필자는 김군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을 가슴 속에 묻으며 참고 또 참았다.

필자는 현지 신문과 만난 사람들을 통해 IS의 반인륜적인 악행과 가지안텝, 킬리스가 주요 밀입국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이미 익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곳이 매우 위험한 지역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매체 등을 통해서 알렸더라면 하는 후회와 회한이 많았다. 그랬다면 김군의 밀입국을 막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지난 4월14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지난해 11월에 묵었던 가지안텝의 호텔에서 킬리스로 길을 나섰다. 킬리스는 시리아내전 이전에는 터키의 가지안텝과 시리아 북부도시 알레포를 이어주는 아주 작은 도시였다. 이후 이곳에 터키 내에서 가장 큰 난민수용소가 설치되고, 시리아로 통하는 몇몇의 국경지대는 전쟁으로 폐쇄된 까닭에 킬리스는 번잡하고 북적이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갔다.

킬리스까지 갈 차량은 작년 11월 이용했던 50살 난 아키가 모는 택시를 수배해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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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한국에서 가져가 선물한 아이패드를 들고 있는 아키

택시가 달리면서 건조한 바람이 콧구멍으로 들어왔다. 목구멍까지 매캐한 느낌이 전해지면 견디기 어려울 지경이다. 나더러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다”는 이란인 하메드는 “건조한 공기가 때때로 신경을 날카롭게 만든다”고 했다. 그렇다. 건조한 공기는 어떤 날은 폐부를 말라붙게 만드는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 전쟁의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연상되는 그 느낌은 그 지역을 떠날 때까지 악몽처럼 나를 괴롭혔다.

택시기사 아키는 “지난 번보다 감시 및 경계가 철저해졌다”고 했다. 아키는 또 “IS 대원들이 터키 내륙 마을에 침투해 와 자신들에게 비협조적인 마을에 총격을 가해왔다”고 했다. 물론 언어소통도 어렵고 해서 그 진위여부는 솔직히 불분명하다.

다만 분명한 건 터키-시리아-이라크와 맞댄 모든 터키의 국경부근은 위험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시리아-터키-이라크 국경이 맞닿아 있는 지즈레와 실로피를 방문했을 때 나는 피부로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가지안텝에 머물며 지난 번 보았던 시리아로 안내하겠다던 밀입국 브로커와,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할 것처럼 보이던 시리아 여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는 지난번 김군 사건과 일본인 고토 겐지씨 이후 터키정부와 경찰이 이 지역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다는 것으로 나는 알아차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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