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 분쟁지역 소년가장들의 아픔을 아십니까?
[아시아엔=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2015년 10월 터키 실로피 지역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실로피는 터키 동남부 도시로 이라크, 시리아 국경에 인접하며 인근에 주디산이 있다. 예로부터 무슬림 사이에서 노아의 방주가 있던 곳이라고 여겨지는 바로 그 주디산이다.
무슬림사회에서 가장인 아버지의 부재는 곧 가정의 경제가 붕괴를 의미한다. 그럴 경우 장남들은 어린 나이에도 생계를 책임지고 거리로 나서게 된다. 이때 장남들은 아버지를 대신해 거친 세파를 온몸으로 맞게 된다.
이들은 상당히 거칠어서 어른 1명 정도는 너끈히 주먹으로 제압할 정도의 완력을 갖고 있다. 기자가 분쟁지역을 다니며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끼니를 걱정할 정도의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는 PKK(쿠르드노동당)가 데려다 키우며 테러리스트로 양성하고 있다. 터키 정부가 가장 골머리를 앓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사회 저변에 깔려있는 불합리를 일찍 체험한 그들은 PKK 하부조직인 쿠르드족애국청년활동단(YDG-H)에 포섭되어 전사로 거듭나게 된다. 2016년 1월 실로피 인근의 지즈레와 더불어 도시 전체가 봉쇄되고 군경의 토벌작전으로 잿더미로 변하게 된다.
필자가 쿠르드 지역을 찾는 이유는 IS로 넘어간 한국인 김모군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IS의 최대 적은 쿠르드족이다. 반대로 쿠르드족의 최대 적 역시 IS다. 재작년 말 김군이 IS로 넘어갈 즈음, 코바니에선 전투가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코바니는 시리아의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도시로 쿠르드족과 IS간에 처절한 전투가 흔히 벌어진다.
내가 당시 쿠르드족 지역을 찾은 것은 김군이 코바니에서 쿠르드족에게 포로로 잡히면 그에 대한 정보를 얻고, 필자 스스로 한국인의 이미지를 쿠르드족에게 좋게 각인시켜 가혹행위라도 막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김군을 구출하거나, 구출협상이라도 벌일 수 있는 실날같은 희망도 있었다. 물론 김군의 소재조차 불확실한 지금으로선 답답하기만 하지만···.
터키의 쿠르드족 어린이들이 V자를 내보이고 있다. 찻길 우측으로 1백미터 전방은 시리아국경이다.
2017년 1월 이란의 시아파 성지순례 도중 ‘고나바드’라는 사막도시에서 필자에게 한없이 친절을 베풀어준 모하멧과 7살난 그의 딸. 시아 무슬림의 소녀는 10살부터 히잡을 쓰게 된다. 10살이 채 되지 않은 소녀는 좀처럼 외국인 남자와 사진촬영에 응하지 않고 모자조차 벗지 않으려 한다. 만약에 모자를 벗기려 든다면 그녀는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이다. 길에서 만나는 이란인 아버지들은 자신들의 딸이 외국인과 사진 찍는 추억을 사진에 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대개 울거나 도망 가기에 급급했다. 채 10살도 안 돼 소녀들은 이미 낯을 가리기 시작했다.
한편 이란의 사막 어느 도시에서 만난 소녀는 너무 발랄한 모습이었다. 소녀는 한국사람인 나를 만나 젓가락 쥐는 법을 배웠다. 소녀는 한류팬으로 이민우를 상당히 좋아한다고 했다. 그녀는 이민우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해 나는 웃고 말았다.
무슬림 소녀의 사는 곳과 나이·얼굴 등을 공개하면 소녀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아시아엔> 독자들은 충분히 그런 상황을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한국계 미국인 송혜련씨는 오랜 동안 파키스탄 소녀들의 교육을 위해 헌신한 분이다. 그는 파키스탄 북부도시 길깃에 여학교를 건립했다. 사진 중간에 반쯤 보이는 소녀는 숨어서 지켜보고 있다.
이슬람 종교는 여성 교육에 대해 폐쇄적이어서 대다수 파키스탄 소녀들은 학교 문턱을 가지 못한 채 청소년이 되어 버린다. 2014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를 떠올리면 상황은 쉽게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