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페르시아 순례길⑪] 이란 쉬라즈~마샤드 900km 구간 죽음 무릅쓰고 완주하니 기다린 것은?

1486961052484[아시아엔=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1월18일 필자는 이란 시아파 최대성지인 이맘레자가 있는 동북부도시 마샤드(Mashhad)에 마침내 도착했다. 해가 서쪽하늘로 지려던 오후 5시경이었다. 지난해 12월 20일 쉬라즈에서 첫 발을 디딘 후 한달만이다. ‘사람’이라는 동물이 도저히 걸을 수 없는 구간을 제외한 900km를 완주한 것이다.

스페인의 산티아고나 일본의 고사찰 등 성지순례를 끝내는 이들에게 당연히 제공되는 것들이 있다. 순례를 모두 마쳤다는 뜻의 깃발과 숙소제공 및 의료서비스 등이다. 순례자들은 이같은 것을 받으며 자신의 신앙을 확인하고 다름 순례를 다짐하곤 한다.

그런데 필자에게는 이 어떤 것도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순례 도중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얻은 눈병과 다리의 피부병 치료가 시급했다. 하지만 최종 순례 목적지인 마샤드에 도착하던 그날 밤 이맘레자 측에서 아무도 나를 마중하는 이는 없었다. 아마도 며칠 전 IS로 신고돼 합동수사본부에 끌려갔던 것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들은 나의 최종 목적지를 캐물었으며 영 못 마땅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솔직히 실망하고 지쳐 4차선 포장도로를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붐비는 거리에서 나 홀로 이방인인 것 같았다. 그때였다. 오토바이를 탄 젊은이 둘이 내게 다가왔다. 그들은 내 핸드폰을 잽싸게 채갔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칼을 내게 들이댔다. 어디든 닥치는 대로 찌를 듯할 태세였다. 나도 순간적으로 그들에게 달려들며 쥐고 있던 스틱으로 찌를 듯이 덤볐다. 그들은 오토바이를 멈춰 서더니 점퍼 안에서 양이나 짐승 등을 잡을 때 사용하는 칼로 나를 찌를 듯이 노려본다. 나도 지지 않고 스틱을 들고 추격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오토바이를 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들은 어느새 멀리 사라졌다. 핸드폰에 담긴, 그동안 찍었던 사진들이 그들 손에 넘어간 것을 생각해 내는데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뿔사~!

그로부터 10일 남짓, 1월29일 이란의 시아파 무슬림 순례길을 모두 마치고 나는 귀국 비행기표을 구했다. 설날 연휴로 티켓 사는 것도 쉽지 않았다. 표를 어렵사리 구하고 이스탄불공항에서 환승 도중 나는 또 다시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어야 했다. 터키 공항경찰에 체포된 것이다.

공항에서 나는 경찰의 무자비한 추궁과 모욕을 당하며 14시간 이상 감금돼야 했다. 꼭 1년 전 터키의 하카리~이스탄불 구간에서 겪었던 일들이 악몽처럼 내게 찾아온 것이다.

14869610503582016년 2월초 터키 동부도시 하카리(Hakkari)에서 쿠르드족 어린이들과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고통을 취재하던 중 나는 테러리스트로 몰려 터키 군경 합동수사반에 강제 연행돼 5일간 모진 고문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는 “더이상 터키 국경지대에 얼씬거리지 말라”는 명령 아닌 명령을 받고 강제로 추방조치됐다.

필자는 이보다 1년 3개월여 앞서 IS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김모군을 찾기 위해 터키 남부 시리아 접경구역인 킬리스 지역을 한달간 추적한 적이 있다. 그때도 국경 군경합동수비대에 잡혀 온갖 조사와 취조를 당한 바 있다.

형제국가라 생각하며 늘 친근감을 느껴오던 터키 땅에서 2년 3개월 남짓 기간 동안 도합 5번에 걸쳐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다니···. 이런 생각을 하니 내 눈에는 뜨거운 물이 흐르고 가슴이 턱 하고 막혀왔다.

귀국행 기내에서 위스키 두잔을 들이켜 마시니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국경수비대 군인과 대테러 경찰이 내 이마에 권총을 들이대던 일, 폭탄이 터지고 총알이 날아다니는 벌판을 이리저리 내달리며 카메라에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담던 순간, 내 옆구리를 찌르며 소지품을 빼앗아 가는 강도와 격투를 벌이던 일, 거리에서 어른들에게 구타당하던 그루지아 소년을 구하다 되레 봉변당하던 일 등등···.”

1486961048012그뿐 아니다. IS 대원으로 오인돼 구치소에 감금돼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성적 수치감을 참아내야 했던 순간들이 인천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 머리와 가슴 속으로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그 순간 내 가슴에 욱하는 게 올라왔다. ‘그래 내가 이같은 일들을 견뎌낸 힘이 어디서 왔을까?’ 하는 물음이었다. 그렇다. 담배를 피며 내게 환한 미소를 보이던 11살 터키 실로피 지역의 소년들, 대량학살을 피해 터키 지역으로 이사해온 쿠르드족 세살박이 소녀의 이쁜 보조개···.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인천공항에 도착했다는 기내 방송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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