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난행難行16] 그리스 사모스섬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나?

그리스 난민수용소 소재지

[아시아엔=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1월 8일 새벽 페리를 타고 히오스섬을 출발하여 사모스섬으로 향했다.

사모스는 수학자 피타고라스와 우화작가 이솝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아테네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터키에서는 가장 가까운 그리스 국가의 섬이다. 따라서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오는 난민들이 가장 많은 들어가는 섬으로 꼽히고 있다.

축구경기를 하는 아프리카 난민들 뒤로 난민수용소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이신석 기자>

사모스에 가기 전 들은 정보에 의하면 도시 뒤 산중턱에 난민수용소를 열어 놓았는데 난민들이 산을 오염시키고 황폐케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달 전에는 난민들이 캠프의 부족한 물자와 시설에 불만 품고 데모를 일으켜 경찰이 동원돼 최루탄을 쏘면서 이를 저지했다고 했다.

페리에 탑승하기 전, 사복경찰이 다가와 신분증을 요구했다. 그러더니 그들은 나를 파출소로 데려가서는 간단한 질문을 하고는 가도 좋다고 했다. 나는 곧바로 페리에 탑승했다. 그후 사모스섬에 도착한 나는 다시 무장경찰에게 검문·검색을 당했다.

유럽 여행객들이 가고 싶어 하는 이 아름다운 그리스 섬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사진 이신석 기자>

페리에 탑승해서 섬에서 섬으로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검문을 당하니 맥이 빠지고 스트레스는 점점 쌓여갔다. 난민캠프가 있는 곳을 찾아갔더니 먼저 보이는 것은 예의 극도로 나에게 적의와 경계를 품은 자원봉사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 중 스위스에서 온 청년이 그나마 친절하게 몇가지 정보를 주면서 “정문으로 들어가지 말고 우회해서 가라”고 내게 일러주었다.

소문에 의하면 사모스캠프가 그리스섬 중에서 최악이라고 하는데, 시설은 히오스섬의 비알캠프와 별반 다름이 없어 보였다.

깎아지른 언덕을 오르니 어느 정도 평지가 보이고 그곳에서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출신지를 물어보니 시에라리온, 부르키나파소, 말리, 가나 등등 여러 국가이름이 튀어나왔다.

정화조 청소 차량. 이곳 난민용 화장실은 대로변에 있어 움막에서 나와 한참 이동해야 사용할 수 있다. <사진 이신석 기자>

난민촌 옆쪽으로 들어가니 이곳도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간이화장실이 20여개 있는데, 청소차량이 정화를 하고 있었다. 히오스에서 만난 엔지오 팀장 토울라가 “다른 섬은 한달 청소비용이 한칸 당 70~90유로인데 히오스섬은 250유로나 받는다”며 “왜 그런지 도통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간이화장실을 정화시키는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드는 이유는 난민들이 화장실 안에서 그 물로 몸을 씻다 보니 자주 사용불가 상태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모스섬의 난민캠프는 2016년, 650명 수용규모로 문을 열었으나 현재 현재 6000명의 난민이 거주하니 무엇보다 화장실이 가장 큰 문제일 터였다.

그리고 시설에 다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언덕에 텐트를 치고 지내니 쥐나 뱀이 많아 세균 감염에 시달리지만 의료시설은 도통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들이 일컫는 정글에는 수도 시설도, 전기도 없이 길게 늘어선 배식 줄을 서서 겨우 끼니를 이어가며 겨울을 나고 있는 것이었다.

철조망을 설치하는 시리아 코바니 출신의 쿠르드족 YPG대원. 미국과 함께 IS를 격퇴했으나 이후 터키가 쿠르드 지역을 침공한 뒤 보트를 타고 이곳에 왔다고 한다. <사진 이신석 기자>

난민은 주로 같은 나라 출신 혹은 같은 지역 출신으로 뭉쳐서 가가호호 텐트를 지어 살고 있었다. 전직 페쉬메르가(YPG) 출신의 가장이 자신의 텐트에 철조망을 두르느라 바빠 보였지만 선뜻 사진촬영에 협조해주어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시리아 코바니와 아프린에서 왔다고 했다.

그와 몇 마디 나눈 후 떠나려는데 멀리서 무장경찰 4명이 필자를 응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대로 내려가면 또다시 검문을 받게 될 것 같아 일단 그들을 피하기로 했다. 새벽부터 이어지는 경찰의 검문·검색은 여간 성가시고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유달리 사모스섬에 경찰이 삼엄한 이유가 두달 전 난민들의 데모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모스섬 자원봉사단체의 건물과 스위스에서 온 봉사자 모습. 기자가 머무는 3일 내내 경찰의 검문검색과 자원봉사자의 신고로 기자는 쫓겨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사진 이신석 기자>

다음날 난민수용소에 가는 대신 해변에서 만난 난민들과 얘기하고 있는데, 미국 뉴멕시코에서 온 자원봉사자가 내게 다가왔다. 데이빗이라는 그 청년은 아침에 자원봉사자 사무실에 경찰이 와서 나를 찾으며 “혹시 발견하면 신고해달라”고 신신 당부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난민들을 찍은 사진들은 어떻게 보관하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클라우드로 다 넘기고 클라우드앱을 삭제한 후 숙소에 들어가면 다시 복원하여 사진을 옮기고 SNS 앱도 다 지우고 다닌다”고 답해줬다. 그는 “미스터리 그 정도면 절대 걱정 안해도 되겠다”며 “경찰은 조사를 시작하면 핸드폰을 압수하여 사진부터 지우게 만든다”고 내게 말해줬다.

혹시 경찰 조사를 받게 되고 그동안 찍은 사진들도 지워지게 될까 두려운 나머지 사모스섬 일정은 줄이고 아테네로 떠나기로 나는 결정했다.

사모스섬과 아테네를 오가는 페리를 통해 그리스 본토로 탈출하려는 난민들 시도는 끊이지 않는다. 페리 선착장에는 해안경비대, 경찰, 이민국 직원들이 섬을 탈출하려는 난민들을 색출해내고 있었다.

시리아 저항도시 다라는 알 아사드 정권의 공격으로 잿더미가 됐다. 주민들은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사드 정권은 젊은이들을 징집하여 정권의 ‘충견’으로 만들어 동족을 죽이는 역할을 맡겼다. 이런 상황을 참을 수 없어 두 친구와 탈출했다는 청년들. 안경 쓴 사람은 모쎔이라는 이름의 공학도이며, 맨 우측은 시리아 출신의 쿠르드 청년. 맨왼쪽 필자가 셀피로 찍었다. <사진 이신석 기자>

일단 피부가 까맣거나 수염을 길러 아랍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경찰 차량 뒷 트렁크에 설치된 컴퓨터에서 신분증을 체크하고 난민일 경우 배를 탈 수 없게 제지하는 모양이었다. 아프리카 여성 2명이 돌려보내지는 게 보였다. 이어서 아프리카 남성 3명이 경찰차 앞에 세워지더니 이내 차량에 태워졌다.

시에라리온에서 왔다는 두 청년은 가나 출신의 요란한 몸짓의 여자 친구들을 아테네로 보내는 배웅 길에 있었다. 시에라리온 출신의 그들은 이민국 인터뷰에 번번히 떨어져 신분증 발급을 못 받고 있었다.

집행관이 “너희 나라 분쟁도 없는데 무슨 목적으로 난민 망명 신청을 하냐”며 물으니 그들은 “8개월째 신분증 신청 심사에서 매번 탈락해 섬에 머물고 있는 중”이라고 답했다.

자신들은 시에라리온 작은 도시 출신이며 그곳에서는 매일 전투가 벌어지고 그 복잡하게 얽힌 상황 자체를 이해시키기가 너무 어렵다고 내게 토로했다. 그들은 “이미 신분증 발급을 받은 여자친구들은 아테네에 거주하며 섬을 오고간다”며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고 난민촌으로 올라가는 아프가니스탄 하자라족 난민 가족. 기자의 눈앞엔 “STOP”라고 쓴 사인포스트가 있다. 더 이상 오지말라는 말일까? 기자는 어머니에게 갖고 다니던 홍삼정을 건네드렸다. <사진 이신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