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난행難行⑪] 그리스 난민촌의 ‘모정’과 ‘아빠’
[아시아엔=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그리스 ‘레스보스’ 난민촌에는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멀리 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에서 온 난민들이 있다. 그 가운데 특히 하자라족이 많아 그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하자라족은 아프가니스탄 중부의 산악지대에 살고 있는 몽골족 후손이다. 그들의 거주지역인 바미안은 탈레반이 폭파한 바미안석불로 잘 알려진 곳이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소수 시아 무슬림으로 살면서 생김새 또한 달라서 차별을 받고 있다. 특히 탈레반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있어 살던 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모리아 캠프에는 하자라족 여성들이 유난히 많이 띄었는데 인터뷰 요청을 하면 먼저 독기 어린 눈빛을 보내며 경계를 풀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삶, 그리고 이곳 모리아 캠프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빡빡하고 고통스러운지 가히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그들은 여럿이 방파제에 나와 바닷 바람을 쐬며 자유로움과 젊음을 만끽하기도 했다. 험난하고 끝 모를 수용소생활에서 일탈하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레스보스 시내에서 만난 하자라 청년의 말에 따르면, 하자라족은 여성에게 부르카를 권하지 않고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교육을 시키는 등 아프가니스탄의 파슈툰이나 발로치 여성들과는 구분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런 상황을 벗어나 좀더 자유로운 삶을 찾아 난민의 길에 나선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원한 삶이 레스보스에서 멈추어 버리지 않고 제대로 꿈을 펼칠 수 있는 날은 그 언제일까?
두번째로 많아 보이는 사람들은 시리아 난민들이다. 시리아에선 알라위파인 알아사드 정부가 수니파 반군이 있는 알레포와 이들리브에 무차별 폭격하고 화생방 공격도 서슴지 않아 희생자가 속출했다. 이에 따라 난민이 대거 발생했다. 기자가 대화를 나눈 여러 난민들도 이들리브 출신으로 대부분 가족을 잃고 아사드정권의 보복을 피해 난민길에 올랐다고 했다.
그외 이라크, 이란, 예멘, 소말리아, 이집트, 콩고 등의 난민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생활고와 위험을 피해 이곳에 오게 된 것이다. 전날 밤에는 아프가니스탄 하자라족 청년이 칼에 맞아 죽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아프리카 청년들과 아프가니스탄 하자라족 청년들이 집단 패싸움을 벌였다. 처음에는 몇명이 사소하게 다투다가 급기야는 50명, 100명으로 불어나 집단 난투극으로 번졌다고 한다.
밤에는 전기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며 칠흑에 빠지기 일쑤다. 강도질과 성폭행도 빈번해 천막에 문을 달아놓고 꼭꼭 잠가야 맘이 놓인다고 했다.
기자는 난민수용소 밖의 노상에 새로이 천막을 짓고 있는 시리아 출신 가정에 들어가 물었다. “전기도 안 들어오고 밤에는 자동차 때문에 위험하지 않냐”고 물으니 이 집 가장인 아흐멧은 “강도나 딸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이곳이 더 안전하다”고 했다.
난민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난민수용소의 문제점은 △식수 부족 △오염된 환경 △화장실 부족 △의료·위생 불량 △전기 부족 등으로 압축되었다.
그리스 정부도 망명 신청을 더 신속히 처리하고 많은 난민을 섬에서 본토로 이주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끊임없이 들어오는 난민들을 보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여성과 아이들이 비위생적인 환경과 범죄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도 걱정됐다.
유럽에 난민들이 밀려들면서 그리스에도 난민이 많이 몰렸으나 적어도 난민 캠프 정도는 잘 운영되고 있을 거라는 기대는 모리아 캠프를 직접 찾으면서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