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난민촌 화재②] “터전 잃은 그들, 코로나19 공포까지”

그리스 본토 남동쪽 레스보스섬의 모리아 난민캠프관리소 철제 담 너머 지어진 비닐 숙소로 한 난민이 들어가고 있다. 그나마 이번 화재로 이곳도 잿더미로 변했을 것이다. 
그리스 최대 난민촌인 레스보스섬에서 지난 8~9일 화재가 발생해 여성과 어린이 6천명을 포함해 1만 1500여명이 거처를 잃었습니다. 이들은 쓰레기장이나 주유소 주변 등에서 간신히 몸을 뉠 공간을 마련해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음식은커녕 식수 공급도 원활치 않은 실정입니다. 일부 코로나19 확진자들의 행방이 묘연해 바이러스 공포까지 엄습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엔> 이신석 ‘분쟁지역’ 전문기자는 올 1월 초 모리아 난민촌을 현지 취재해 연속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신석 기자가 자신의 취재수첩에 담겨 있던 비망록과 사진을 바탕으로 현지상황을 3차례에 걸쳐 보도합니다. 이신석 기자는 “이번 화재 대참사는 예고됐던 것”이라며 “코로나사태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구호가 조속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안타까운 당시 기억을 다시 끄집어 내기로 했다”고 말합니다. <편집자>
이번 불로 타버린 그리스 난민캠프

[아시아엔=글·사진 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기자가 이 섬에 처음 도착한 것은 지난 1월 2일이었다. 기자는 레스보스에서 사흘 머문 뒤 히오스 섬과 사모스 섬을 거쳐 18일 그리스를 떠나왔다.

이들 섬에는 터키에서 배를 타고 에게해를 죽음의 항해 끝에 통과한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온 난민 수만명이 머물고 있다.

아이 손을 잡고 어디론가 급히 가는 엄마 일행을 한 아주머니가 바라보고 있다. 이 엄마는 두터운 외투를 걸쳤는데,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어 기자 눈에 얼른 띄었다.

레스보스는 그리스 에게해에 있는 섬으로 그리스 본토보다는 터키에 더 가까이 위치해 있다. 터키에서 가깝다 보니 그리스나 유럽으로 가려는 난민들이 에게해 섬들에 밀려 든다. 전쟁과 차별 그리고 경제적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살던 터전을 떠났지만 결국 기약 없이 그리스 섬에 갇혀 지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레스보스섬의 모리아 난민캠프의 한 숙소 부엌의 화덕에서 갓 구워낸 빵. 맛과 모양이 ‘난’과 비슷하게 생겼다. 아프카니스탄계 난민의 숙소에서 촬영했다.

그리스 정부는 본토로 들어오는 난민의 유입을 막기 위해 섬에 난민캠프를 만들었으나 엄청난 숫자의 난민을 받아들이기에 역부족인 상황이다. 게다가 2019년 난민의 수가 급증하였다. 2016년 터키-EU간 체결한 난민협약에도 불구하고 터키는 에게해를 건너는 난민을 모른 척 눈감아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레스보스섬의 모리아 난민캠프의 한 아이가 비닐 텐트를 배경으로 서있다

레스보스섬의 주도인 미틸리니에서 10km 떨어진 모리아 캠프는 수용인원이 불과 2천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곳에 10배에 이르는 2만여명의 난민이 거주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수용소와 주변 환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열악하고 충격적이다.

기자는 하자라족 출신의 자이라는 남성와 친분을 맺고 그의 도움으로 경찰과 경비의 눈을 피해 정문이 아닌 옆문으로 난민수용소 안을 출입할 수 있었다.

당시 그곳 하천은 쓰레기 더미로 메워져 난민수용소 근처에만 와도 오물과 분변 섞인 냄새가 진동했다. 원래 수용인원의 초과로 이미 기능을 상실하여 대부분의 난민들이 수용소 담벽 밖에 텐트를 치고 거주하고 있다.

레스보스섬의 모리아 난민캠프의 한 노인이 땔감으로 쓸 널판을 이고 걷고 있다

전기와 수도는 수용소 안에만 제공될 뿐이어서 텐트는 간신히 비바람만 막아 주고 있어 사람들이 지낼 수 있는 장소로 보이지 않았다.

곳곳에 간이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긴 했으나 난민 숫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여 항상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여성들이 줄 서 있는 화장실에는 수도가 연결돼 있어 간단히 몸을 씻을 수 있게 되어 있었지만 거주인구에 비하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레스보스섬의 모리아 난민캠프에서 중년 남성이 모닥불을 쬐고 있다. 그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보인다.

특히 밤에는 성폭행 위험이 있어 여성들이 화장실 사용을 제대로 못한 채 아침을 기다려야 했다. 전기공급도 하루에 많아야 두시간 정도에 그친다. 그나마 불규칙해 난민들은 전기가 들어오면 잽싸게 몰려와 콘센트에 핸드폰 충전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른바 ‘충전전쟁’을 벌여야 한다. <계속>

레스보스섬의 모리아 난민캠프 젊은이들이 모바일폰 충전을 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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