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난민촌 화재①] 금년 1월 현지취재 이신석 기자 “예고된 재난이었다”
그리스 최대 난민촌인 레스보스섬에서 지난 8~9일 화재가 발생해 여성과 어린이 6천명을 포함해 1만 1500여명이 거처를 잃었습니다. 이들은 쓰레기장이나 주유소 주변 등에서 간신히 몸을 뉠 공간을 마련해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음식은커녕 식수 공급도 원활치 않은 실정입니다. 일부 코로나19 확진자들의 행방이 묘연해 바이러스 공포까지 엄습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엔> 이신석 ‘분쟁지역’ 전문기자는 올 1월 초 모리아 난민촌을 현지 취재해 연속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신석 기자가 자신의 취재수첩에 담겨 있던 비망록과 사진을 바탕으로 현지상황을 3차례에 걸쳐 보도합니다. 이신석 기자는 “이번 화재 대참사는 예고됐던 것”이라며 “코로나사태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구호가 조속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안타까운 당시 기억을 다시 끄집어 내기로 했다”고 말합니다. <편집자>
[아시아엔=글·사진 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대형 화재로 전소된 그리스 레스보스섬 모리아 난민캠프는 기자가 지난 1월 2일부터 3일간 방문해 취재했던 바로 그곳이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지난 8, 9일 이틀 연속 모리아 캠프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1만1천여명이 거처를 잃고 노숙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모리아 캠프엔 주로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해 중동·아프리카 출신 난민 희망자 1만2600여명이 체류해온 그리스 내 최대 난민촌이다.
연초 기자의 현장취재 당시 이번에 불이 난 지역은 유엔난민기구가 제공한 비닐 텐트와 NGO단체에서 마련한 나무골재를 이용하여 임시거처(쉘터)를 만들어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당시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이곳 난민들은 정원(2757명)을 5배 가까이 초과한 최악의 거주환경 속에서 수년간 생활해왔다. 심지어 토굴을 파고 몇 식구가 보금자리로 삼는가 하면,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 더미 옆에서 비닐조각을 얼기설기 엮어 생활하기도 했다.
하지만 난민들은 그런 곳에서나마 고단하지만, 언젠가 찾을 자유에의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그마저 이번 화재로 송두리째 사라져 버진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상당수 난민은 캠프 주변 도로에서 사흘 밤을 지새웠으며, 일부 난민은 여기서도 밀려나 주변 폐기물장과 올리브 과수원 등에서 노숙하고 있다고 한다. 외신들은 “난민들은 음식과 식수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화장실이나 샤워실조차 없는 환경에 내몰려 있다”고 보도했다.
유엔난민기구는 이번 화재로 집을 잃은 이재민 수가 전체 체류자의 91%인 1만150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2200명은 여성, 4천명은 어린이로 파악됐다. 전체 70% 이상은 아프가니스탄 출신이다.
당국은 모리아 캠프 인근 언덕에 있는 군 사격장에 임시 거주시설을 건설하는 작업에 착수했으나 또 다른 난민캠프 설치에 반대하는 현지 주민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화재 후 레스보스섬에 비상사태를 선포한 그리스 정부는 EU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라고 있다. 당국은 불에 탄 모리아 캠프 주변에 특수 경찰 요원을 배치해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모리아캠프는 알려진 바와 다르게 수용인원이 10배 이상 초과해 식수, 생활용수, 화장실, 보건의류, 전기 등이 만성적으로 부족했다. 특히 밤에는 전기가 안 들어와 무법천지가 되어 민족간의 패싸움, 강도 절도뿐 아니라 여성들을 향한 성폭행이 자행되곤 했다.
설상가상으로 필자가 이곳을 다녀온 후에 창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공포도 늘어나고 있다. 불이 나기 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30명 이상의 캠프 체류자 가운데 현재까지 신병이 확보돼 격리된 수는 8명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행방조차 알 수 없는 상태다.
특히 많은 체류자가 무방비 상태로 노숙하는 상황이라 그리스 당국은 행여나 레스보스섬 내에 바이러스가 급속히 전파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레스보스섬은 지금 한쪽은 굶주림, 다른 한쪽은 바이러스 공포 속에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계속>